시뻘건 피, 돼지 비명 소리... 법정에 도살장을 옮겨온 이유
'도계장 락다운 시위'로 기소된 세 명의 활동가들... 동물 없는 동물권 재판 방청 연대기
다행스럽게도 나는 법원에 출입한 적 없는 삶을 살았다. 2020년 11월 12일 목요일, 나는 처음으로 법원에 출입했다. 내가 향한 곳은 수원지방법원이었다.
재판을 받는 당사자도 아닌데 괜스레 떨렸다. 재판 장소는 603호였다. 603호 앞에는 검은색 옷을 입은 60여 명의 시민들이 서 있었다. 나는 닫힌 603호의 문 너머 법정을 상상했다. 판사와 판결봉 그리고 높은 천장고와 우드톤 장의자 같은, 영화에서 봤던 법정의 배경을 떠올렸다.
드디어 문이 열렸고 603호 법정에 들어섰다. 영화에서 보던 재판장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일단 판결봉은 내 눈에 보이지 않았고 천정은 생각보다 낮았다. 현대식 등받침 의자와 화이트 톤의 깔끔한 인테리어. 밝은 조명과 하얀 벽은 꽤나 사무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피고인 석에는 내 예상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세 명의 활동가가 있었고 그 옆에는 변호인이 있었다. 건너편에는 두 명의 검사, 가운데에는 두 명의 서기가 있었다. 법정의 가장 앞쪽이자 가장 높은 곳, 법정의 모든 이들이 우러러보는 위치에는 세 명의 판사가 있었다. 그리고 방청석에는 재판을 지켜보는 약 60여 명의 시민들이 함께 했다.
"지금부터 피고인이라 부르겠습니다."
재판이 시작되었다. 세 명의 동물권 활동가는 피고인 신분으로 형사법정에 섰다. 죄목은 업무방해. 2019년 10월 4일 동물의 날, 그들은 용인의 한 도계장 앞에서 손을 콘크리트에 결박하고 드러누웠다. 이른바 '도계장 락다운 시위'였다.
트럭은 7000여 마리의 닭을 싣고서 사육장과 도살장을 기계처럼 오간다. 하지만 그날은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콘크리트에 몸을 결박한 활동가들을 밟고 지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트럭과 함께 닭들의 죽음도 '잠깐' 멈추었다.
하지만, '법의 언어'로 보자면 이는 도살을 늦추고 결국엔 고기의 생산을 늦추는 '업무방해'였다. 이는 명백한 불법행위였다. 이들은 기소됐고, 지난 8월 20일 1심 선고에서 시위에 참여한 활동가 등에게 벌금 300만 원이 내려졌다. 이번에 내가 참관한 재판은 항소심이었다. 변호인은 이번 재판에서 '누구나 불법시위의 목적을 공감할 것'이라며 선처를 요청했다.
"도살장에 진실이 있다"
마피아 게임을 통해서만 듣던 '최후의 변론'을 실제 법정에서 마주했다. 활동가 향기(활동명)는 학창 시절 내내 개근상을 놓치지 않았고 대학을 졸업하며 평범한 직장생활을 꿈꿨다고 말했다. 내 삶과 매우 닮아있다고 느꼈다. 향기는 졸업과 취업이 순조롭게 될 줄 알았는데 어쩌다 동물의 현실을 알게 되었고, 동물권 활동을 벌이다 결국 범법자가 되었다고 고백했다.
변론이지만 고발이었다. 고기는 언제 어디서든 쉽게 구할 수 있지만 도살장은 우리가 볼 수 없는 곳에 숨어있고 그곳에 동물이 있다고 외쳤다. 동물이 어떻게 사육되고 학대되고 살해되고 강간당하는지 변론을 통해 읊기 시작했다. 진실을 알게 된 향기는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고 이 현실을 알리기 위해 선을 넘었다고 고백했다. 향기 자신이 가해자가 아니라고 변론하기보다 우리 모두가 가해자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검사는 덤덤한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했고 서기는 모니터 화면을 응시했다.
법정에서 향기의 입을 통해 동물의 참담한 현실이 드러났다. 숨죽여 방청하던 시민들은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 여기저기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판사는 피고인과 방청석에 앉아있는 시민들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케이지 속 털이 뽑힌 닭, 성장촉진제에 주저앉은 닭, 사산된 새끼 돼지, 스툴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는 돼지, 강간당하는 젖소, 전기봉에 감전되는 돼지, 이산화탄소 질식에 의해 비명소리를 내지르며 죽어가는 돼지(심한 고통을 유발하는 이산화탄소 질식 대신 질소 안락사를 요구하는 단체들도 있다. - 편집자주), 날카로운 칼이 목을 관통해 온 몸의 피를 쏟는 닭과 돼지. 향기의 변론을 듣는 내내 이 모든 장면들이 내 머리를 관통했고 그 자리에 있던 나도 눈물을 흘렸다. 눈물밖에 흘릴 수 없는 현실에 분노했고 한편으론 무력감을 느꼈다.
지금까지 동물을 학대한 이, 즉 동물학대 가해자가 피고인으로 법정에 섰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이날은 도살장 업무방해로 세 명의 활동가가 피고인으로 법정에 섰다. 이들은 말할 수 없는 동물의 대변인이기도 했다.
진짜 피해자는 동물이다. 향기의 최후의 변론을 마치고 활동가 자야가 만든 농장동물의 영상이 재생되었다.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대한민국 사법 역사상 단 한 번도 도살장의 농장동물이 법정에 선 적은 없었는데 영상을 통해서나마 동물이 피해자로서 법정에 함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영상 속 그들의 모습은 처참했다. 닭은 거꾸로 매달려 날카로운 칼에 목이 관통된 채 시뻘건 피를 쏟았다. 전기봉에 감전된 돼지는 몸을 바르르 떨며 소리를 질렀다. 엄숙한 법정에 돼지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고 하얀 프로젝터 스크린의 벽은 시뻘건 피로 물들었다.
5분여의 영상이 끝나자 피해자도 사라졌다. 법정은 다시 고요해졌고 빨갛게 물들었던 벽도 하얗게 돌아왔다. 법정의 풍경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대변하는 듯했다.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인간을 인간답게, 동물을 동물답게
동물권 활동가는 동물이 인간처럼 살 수 있도록 시민권을 부여하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동물이 인간과 똑같아질 필요도 없거니와 동물은 인간처럼 살기를 원치 않는다. 다만 동물은 자유롭게 거닐고 편히 잠을 자고 진흙 목욕을 하고 땅의 냄새를 맡고 먹고 싶은 음식을 골라 먹고 싶을 뿐이다.
인간과 동물은 다르면서도 비슷하다. 그들은 인간처럼 느끼는 존재다. 고통을 싫어하고 잔인하게 도살되길 원치 않는다. 확실한 것은 끊임없는 동물 학살의 중심에 인간이 있고 그 현실은 인간이 멈춰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인간답게 살고 동물은 동물답게 살아야 한다. 나는 쉼 없이 진행되는 재판을 방청하며 동물의 현실에 슬펐고 분노했고 반성했고, 이 현실이 법정에서 논의될 수 있음에 기뻤고 벅차올랐고 감동했다. 그 순간에도 나는 방청석에서 그리고 법정 밖에서 매일 죽어가는 동물을 목도하는 '살아있는 인간'이었다. 이 사실에 형용할 수 없는 참담함을 느꼈다.
세 명의 활동가 역시 인간이라는 이유로 '잠깐'이나마 도살을 멈출 수 있었고 트럭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었고 법정에서 변호인과 함께 변론할 수 있었다. 그날 트럭에 실려있던 닭과 법정에 선 우리는 무엇이 다르기에 이렇게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걸까.
동물권에 대한 논의는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이번 재판은 동물권에 대한 논의를 법정으로 옮겨왔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이게 어쩌면 훗날 동물권을 보장하는 법 제정의 첫걸음이 될지도 모른다. 최후의 변론은 끝이 났다. 12월 17일, 항소심 선고가 내려진다. 이제 인간의 판결을 기다린다.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고 동물을 동물답게 하는가.
재판을 받는 당사자도 아닌데 괜스레 떨렸다. 재판 장소는 603호였다. 603호 앞에는 검은색 옷을 입은 60여 명의 시민들이 서 있었다. 나는 닫힌 603호의 문 너머 법정을 상상했다. 판사와 판결봉 그리고 높은 천장고와 우드톤 장의자 같은, 영화에서 봤던 법정의 배경을 떠올렸다.
피고인 석에는 내 예상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세 명의 활동가가 있었고 그 옆에는 변호인이 있었다. 건너편에는 두 명의 검사, 가운데에는 두 명의 서기가 있었다. 법정의 가장 앞쪽이자 가장 높은 곳, 법정의 모든 이들이 우러러보는 위치에는 세 명의 판사가 있었다. 그리고 방청석에는 재판을 지켜보는 약 60여 명의 시민들이 함께 했다.
"지금부터 피고인이라 부르겠습니다."
재판이 시작되었다. 세 명의 동물권 활동가는 피고인 신분으로 형사법정에 섰다. 죄목은 업무방해. 2019년 10월 4일 동물의 날, 그들은 용인의 한 도계장 앞에서 손을 콘크리트에 결박하고 드러누웠다. 이른바 '도계장 락다운 시위'였다.
트럭은 7000여 마리의 닭을 싣고서 사육장과 도살장을 기계처럼 오간다. 하지만 그날은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콘크리트에 몸을 결박한 활동가들을 밟고 지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트럭과 함께 닭들의 죽음도 '잠깐' 멈추었다.
▲ 2019년 10월 4일 락다운 현장 ⓒ 동물권리장전 한국
하지만, '법의 언어'로 보자면 이는 도살을 늦추고 결국엔 고기의 생산을 늦추는 '업무방해'였다. 이는 명백한 불법행위였다. 이들은 기소됐고, 지난 8월 20일 1심 선고에서 시위에 참여한 활동가 등에게 벌금 300만 원이 내려졌다. 이번에 내가 참관한 재판은 항소심이었다. 변호인은 이번 재판에서 '누구나 불법시위의 목적을 공감할 것'이라며 선처를 요청했다.
"도살장에 진실이 있다"
마피아 게임을 통해서만 듣던 '최후의 변론'을 실제 법정에서 마주했다. 활동가 향기(활동명)는 학창 시절 내내 개근상을 놓치지 않았고 대학을 졸업하며 평범한 직장생활을 꿈꿨다고 말했다. 내 삶과 매우 닮아있다고 느꼈다. 향기는 졸업과 취업이 순조롭게 될 줄 알았는데 어쩌다 동물의 현실을 알게 되었고, 동물권 활동을 벌이다 결국 범법자가 되었다고 고백했다.
변론이지만 고발이었다. 고기는 언제 어디서든 쉽게 구할 수 있지만 도살장은 우리가 볼 수 없는 곳에 숨어있고 그곳에 동물이 있다고 외쳤다. 동물이 어떻게 사육되고 학대되고 살해되고 강간당하는지 변론을 통해 읊기 시작했다. 진실을 알게 된 향기는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고 이 현실을 알리기 위해 선을 넘었다고 고백했다. 향기 자신이 가해자가 아니라고 변론하기보다 우리 모두가 가해자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검사는 덤덤한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했고 서기는 모니터 화면을 응시했다.
법정에서 향기의 입을 통해 동물의 참담한 현실이 드러났다. 숨죽여 방청하던 시민들은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 여기저기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판사는 피고인과 방청석에 앉아있는 시민들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케이지 속 털이 뽑힌 닭, 성장촉진제에 주저앉은 닭, 사산된 새끼 돼지, 스툴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는 돼지, 강간당하는 젖소, 전기봉에 감전되는 돼지, 이산화탄소 질식에 의해 비명소리를 내지르며 죽어가는 돼지(심한 고통을 유발하는 이산화탄소 질식 대신 질소 안락사를 요구하는 단체들도 있다. - 편집자주), 날카로운 칼이 목을 관통해 온 몸의 피를 쏟는 닭과 돼지. 향기의 변론을 듣는 내내 이 모든 장면들이 내 머리를 관통했고 그 자리에 있던 나도 눈물을 흘렸다. 눈물밖에 흘릴 수 없는 현실에 분노했고 한편으론 무력감을 느꼈다.
지금까지 동물을 학대한 이, 즉 동물학대 가해자가 피고인으로 법정에 섰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이날은 도살장 업무방해로 세 명의 활동가가 피고인으로 법정에 섰다. 이들은 말할 수 없는 동물의 대변인이기도 했다.
"재판받을 수 있는 장소를 선택할 수 있었다면 도살장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곳에 진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기 때문에 진실을 여기로 가지고 왔다."
- 최후의 변론 일부
▲ 트럭에 실려 도살장으로 이동하는 닭의 모습 ⓒ 동물권리장전 한국
진짜 피해자는 동물이다. 향기의 최후의 변론을 마치고 활동가 자야가 만든 농장동물의 영상이 재생되었다.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대한민국 사법 역사상 단 한 번도 도살장의 농장동물이 법정에 선 적은 없었는데 영상을 통해서나마 동물이 피해자로서 법정에 함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영상 속 그들의 모습은 처참했다. 닭은 거꾸로 매달려 날카로운 칼에 목이 관통된 채 시뻘건 피를 쏟았다. 전기봉에 감전된 돼지는 몸을 바르르 떨며 소리를 질렀다. 엄숙한 법정에 돼지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고 하얀 프로젝터 스크린의 벽은 시뻘건 피로 물들었다.
5분여의 영상이 끝나자 피해자도 사라졌다. 법정은 다시 고요해졌고 빨갛게 물들었던 벽도 하얗게 돌아왔다. 법정의 풍경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대변하는 듯했다.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인간을 인간답게, 동물을 동물답게
▲ 동물권리장전 내용ⓒ 동물권리장전 한국 www.facebook.com/roseslawkorea ⓒ 동물권리장전 한국
종차별반대주의는 인간과 동물 사이의 불평등은 차별이라고 주장한다. 인간과 동물의 평등은 다른 종을 동등하게 대우하거나 동등하게 취급하자는 것이 아니다.
- <동물주의 선언> p.28
동물권 활동가는 동물이 인간처럼 살 수 있도록 시민권을 부여하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동물이 인간과 똑같아질 필요도 없거니와 동물은 인간처럼 살기를 원치 않는다. 다만 동물은 자유롭게 거닐고 편히 잠을 자고 진흙 목욕을 하고 땅의 냄새를 맡고 먹고 싶은 음식을 골라 먹고 싶을 뿐이다.
인간과 동물은 다르면서도 비슷하다. 그들은 인간처럼 느끼는 존재다. 고통을 싫어하고 잔인하게 도살되길 원치 않는다. 확실한 것은 끊임없는 동물 학살의 중심에 인간이 있고 그 현실은 인간이 멈춰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인간답게 살고 동물은 동물답게 살아야 한다. 나는 쉼 없이 진행되는 재판을 방청하며 동물의 현실에 슬펐고 분노했고 반성했고, 이 현실이 법정에서 논의될 수 있음에 기뻤고 벅차올랐고 감동했다. 그 순간에도 나는 방청석에서 그리고 법정 밖에서 매일 죽어가는 동물을 목도하는 '살아있는 인간'이었다. 이 사실에 형용할 수 없는 참담함을 느꼈다.
세 명의 활동가 역시 인간이라는 이유로 '잠깐'이나마 도살을 멈출 수 있었고 트럭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었고 법정에서 변호인과 함께 변론할 수 있었다. 그날 트럭에 실려있던 닭과 법정에 선 우리는 무엇이 다르기에 이렇게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걸까.
동물권에 대한 논의는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이번 재판은 동물권에 대한 논의를 법정으로 옮겨왔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이게 어쩌면 훗날 동물권을 보장하는 법 제정의 첫걸음이 될지도 모른다. 최후의 변론은 끝이 났다. 12월 17일, 항소심 선고가 내려진다. 이제 인간의 판결을 기다린다.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고 동물을 동물답게 하는가.
덧붙이는 글
개인 브런치 계정 @rulerstic에 동일한 글을 발행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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