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운전사'에 놀랐던 어린 조카, '이웃사촌' 보곤 뭐라 할까
[리뷰] '웃기고도 슬픈' 역사 교과서 같은 영화 <이웃사촌>
▲ 비극적 한국 현대사에 포커스를 맞춘 또 한 편의 영화가 나왔다. <이웃사촌>이다. ⓒ ㈜트리니티픽쳐스
때로는 영화가 입담 좋은 '역사 선생' 혹은 또 다른 '현대사 교과서'로 역할 한다. 그런 경우를 직접 이야기 들은 적이 있다. 몇 해 전이다. 중학교에 다니던 조카딸이 광주항쟁을 소재로 한 영화 <택시운전사>를 보고 와서는 동생에게 진지한 얼굴로 묻더란다.
"아빠, 옛날엔 진짜로 우리나라 군인들이 죄 없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총 쏴서 죽이고 그랬어요? 아니죠?"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조카가 백부처럼 캄캄한 골방에서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이 비밀스럽게 제작한 <광주항쟁 사진집>을 통해 끔찍한 1980년 5월 '광주의 진실'을 알게 된 게 아니란 걸.
1988년 고등학교 2학년 때 그 책을 펼치고 총 맞아 죽은 광주 청년의 반쯤 감긴 눈을 보며 홀로 경악하던 밤이 잊히지 않는다. 아마 내가 살아있는 내내 그럴 것이다. 이후로 30년 세월. 세상은 많은 부분 바뀌었다.
비단 내 조카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택시운전사> < 1987 > 등 비극적 한국 현대사를 다룬 영화를 본 중학생들은 자기들 학교 역사 교사에게 "이게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고 사실인가요?"라고 물었을 듯도 하다. 그 아이들은 어떤 답변을 들었을까?
간명한 이야기… 빼어난 연기 보여준 조연들
최근 개봉한 <이웃사촌> 역시 입담 좋은 '역사 선생' 혹은 또 다른 '현대사 교과서'의 역할을 자처한 작품으로 느껴진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민주화 이전', 공간적 배경은 '한국', 밑바탕에 깔린 메시지는 '슬픔과 저항'이다.
상영시간은 2시간 10분으로 꽤 길지만, <이웃사촌>의 스토리는 몇 줄로 정리가 가능할 정도로 간명하다.
DJ와 YS를 섞어놓은 듯한 민주화운동 투사(오달수 분)가 있고, 그를 감시하는 정보기관의 공무원(정우 분)이 있다. 어떤 사건을 계기로 투사의 진심을 알게 된 정보기관 직원은 그간 살아온 삶의 태도와 지향을 180도 바꾼다. 시대의 슬픔을 자기희생과 저항을 통해 이겨낸 둘의 재회로 영화는 마무리.
▲ <이웃사촌>에서 발군의 연기력을 선보인 배우 김희원. ⓒ ㈜트리니티픽쳐스
정치적으로 끔찍했던 한국의 1980년대를 다루면서도 영화는 관객을 울리다가 웃기고, 서럽게 만들다가 깔깔거리게 한다.
감독 이환경의 연출 스타일은 말 잘하고 재밌는 역사 교사와 닮았다. "감정 과잉에 신파적이라 영화가 19세기 동화 같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어쩌랴. 그게 < 7번 방의 선물 > 등 전작들에서 이미 봐온 이환경의 패턴화 된 영화 연출 방식이라면 인정할밖에.
조연들의 빼어난 연기력은 <이웃사촌>의 핍진성을 높여준다. 지난 시절 중앙정보부와 국가안전기획부를 떠올리게 하는 영화 속 정보기관의 고위직 역을 맡은 김희원은 "악역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소화한다"는 세간의 평가에 값하는 연기를 이번에도 보여준다.
민주화운동 투사의 딸 역할로 나온 이유비의 눈빛 연기는 극장 안 사람들의 서러워서 뜨거워진 가슴에 기름을 붓는다. 기대하지 못했던 연기력이라 불러도 좋을 듯했다.
▲ 영화 <이웃사촌>은 '과연 한국에 저런 시절이 있었을까?'란 질문을 던지게 한다. ⓒ ㈜트리니티픽쳐스
다시 한국 현대사에 관한 질문 앞에 섰을 학생들은...
어쨌건 한국의 비극적 현대사에 카메라를 들이댄 또 한 편의 영화가 세상에 나왔다. 관객과 평론가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을지는 나중 문제.
이제는 고등학생이 된 조카딸은 <이웃사촌>을 볼까? 본다면 또 동생에게 질문을 던질까? 그게 아니면 제법 컸으니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서 우리의 1980년대를 기록한 책을 읽을까?
조카의 의문에 답해줄 좋은 역사서 한 권 선물하고 싶은 흐린 초겨울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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