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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식 질환자 '패싱'하는 코로나 수능

수험생 실망 키운 교육청 지침... 전문가 "혼란 없도록 고사실 충분히 확보해야"

등록|2020.12.01 18:59 수정|2020.12.02 10:37

▲ 9월 16일 오전 강원 춘천시 소양로3가 춘천고등학교에서 3학년생들이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9월 모의평가를 치르고 있다. ⓒ 연합뉴스

   
"모의고사 보는데 숨이 턱하고 막히더라고요."

재수생 정재호(20)씨는 마스크를 쓴 채 시험을 보다가 호흡 곤란 증상을 겪었다. 그는 5년 전 비중격만곡증 진단을 받았다. 매년 겨울마다 코막힘과 호흡 곤란에 시달린다. 증상은 장시간 마스크를 착용하면서 더욱 심해졌다. 마스크 내부가 충분히 환기되지 못해 금세 정신이 혼미하고 가슴이 답답해진다.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콧물도 문제였다. 수시로 마스크를 코 밑으로 내리고 올리며 코를 훔쳐내는 게 습관이 됐다.

그렇게 치른 9월 모의고사 성적은 좋을 리가 만무했다. 특히 국어와 영어 점수가 크게 하락했다. 집중력이 떨어져 긴 지문을 읽기가 어려웠다. 그는 "산소가 부족한 탓인지 간단한 지문도 이해되지 않아 몇 번씩 밑줄을 그어가며 읽었다"라며 아쉬워했다. 일반적인 수험생이라면 잠을 설칠 시기이지만, 그는 일찍이 '포기 모드'에 들어갔다. "속상하지만 2021년엔 마스크를 벗고 볼 수 있길 바라야죠." 그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임정아(19, 서울 동덕여고)씨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그는 평소 가벼운 비염 증상을 앓았다. 간절기가 되면 코가 간지럽고 재채기가 나왔다. 부쩍 호흡기 장애가 심해진 건 최근이다. 지난 10월 모의고사 도중 갑작스레 호흡이 가빠지는 증상을 느꼈다. 장시간 마스크를 쓰고 히터 바람을 쐰 게 원인이었다. 그는 "평소엔 약한 비염 정도였지만 마스크를 오래 쓰니 호흡이 어려웠다"라며 "수능 시험장에서는 어떻게 대처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알레르기 비염 환자 3명 중 1명은 '소아 청소년'

호흡기 질환을 앓는 수험생들의 근심이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호흡기 질환은 청소년기에 흔한 질병이다. 알레르기 비염·축농증 등의 원인으로 꼽히는 비중격만곡증이 성장기 청소년기에 주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2016년 국민건강심사평가원이 추산한 비염 환자는 약 1500만 명. 그중 30%에 해당하는 약 404만 명이 20세 미만 소아 청소년이다.

콧물·코막힘 등의 기관지 장애는 수험생들의 학습 능력 저하로 이어진다. 코막힘이 심해지면 입으로 숨을 쉬는 구(口) 호흡 증상이 동반되는데, 이는 머리가 무거운 증상과 함께 집중력 저하와 기억력 감퇴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정도광 하나이비인후과 원장은 "호흡기 질환은 학생들의 학업 능력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수술 상담이 많은 질병 중 하나"라며 "따라서 수험생들은 더욱 예민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수능을 앞두고 호흡기 질환 수험생들의 민원이 빗발치고 있다. 10월 25일까지 국민권익위원회에 접수된 수능 관련 민원은 총 152건. 2019년과 비교해 30%가량 증가한 수치다. 이 중에서도 '마스크 착용으로 인한 불편함'을 호소하는 내용이 9건이었다. 마스크 착용을 우려한 목소리는 대부분 호흡기 질환이 있는 수험생들이다. 국민권익위 민원분석실 최상권 주무관에게 문의한 결과 마스크 관련 민원 중 절반 이상인 5건이 '비염·천식·축농증 등의 호흡기 질환'에 대한 내용이었다.
 

▲ 2019년과 2020년 수능 관련 민원 추이 ⓒ 국민권익위


천식을 앓고 있는 A씨는 지난 9월 경기도교육청을 통해 민원을 제기했다. A씨는 "마스크를 착용하고 6월 평가원 시험을 치렀다가 근육경련과 두통이 와서 중간에 고사장을 나왔다"라며 "이번 수능 지침에 따르면 모든 수험생이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는데 기저 질환자에 대한 배려는 없는 것이냐"라고 항의했다.

이에 국민권익위원회는 책상 위 칸막이, 마스크 의무 착용 등 달라지는 수능 시험장 환경으로 수험생과 학부모의 민원이 증가할 것을 예상, 관계기관에서 적극적인 대응을 할 수 있도록 민원예보를 발령했다.

전현희 국민권익위 위원장 역시 "수능 전까지 수험생의 불안과 걱정이 가중되지 않도록 세심한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라고 응답했다.

"천식 환자 증명? 황당해"

교육부가 수험생들의 잇따른 우려에 응답한 건 지난 11월 5일이었다. 교육부는 서둘러 천식과 같은 호흡기 질환 환자를 '시험 편의 제공 대상자'로 포함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기저 질환으로 인해 마스크를 장시간 착용할 수 없는 수험생들을 따로 모아 마스크를 벗은 채 시험을 응시하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교육부 지침을 두고 수험생들 사이에선 '형평성에 어긋난다'라는 지적이 나온다. 교육부 지침에 따르면 수험생이 호흡기 질환으로 별도 고사장을 배정받기 위해서는 증빙 서류를 지참해 해당 교육청에 제출해야 한다. ▲마스크 착용이 곤란한 사유가 적힌 대학병원 소견서 ▲출신 학교장 확인서 ▲수능 전날 발급받은 코로나19 음성 확인서다.

문제가 된 부분은 '대학 병원 소견서'다. 호흡기 질환자로 인정하는 기준이 병원에 따라 천차만별일 뿐더러, 호흡기 질환자 대다수는 평소엔 별 이상이 없더라도 기온·바람 등 특정 조건 겹쳐지면 증상이 악화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평소엔 호흡기 장애를 겪는 수험생도 상황에 따라 진단서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수험생들 사이에선 교육부의 대책이 "황당하다"라는 반응이 나온다.

10년째 알레르기 비염을 앓고 있다는 안태환(24)씨는 "알레르기성 비염은 환경에 따라 증상이 천차만별인데 어떻게 하루 소견서만으로 질환자임을 판단하느냐"라며 "질병의 특성을 간과하고 수험생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탁상행정"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교육부 지침이 주관적이라고 지적한다. 정기석 한림대 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대학 병원 소견서를 써줄지 말지 결정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의사 마음"이라며 "오늘 증상이 없어서 소견서를 안 써줬는데, 수능 날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이어 "교육부가 확실한 지침을 마련하지 않고 책임을 병원에 전가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교육부가 제시한 조건이 까다롭다는 의견도 나온다. 수능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수험생들이 교육부가 요구하는 서류를 모두 준비하기가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다. 마스크를 벗고 시험에 응시하기 위해 수험생들은 시험 전날 코로나19 검진 기관에 방문하여 음성 판정임을 확인받아야 한다. 수능까지 일 분, 일 초가 아쉬운 수험생들에겐 호흡기 질환자임을 입증하는 과정이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익명을 요구한 수험생 B(19)씨는 "수능 전날 코로나 검사를 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검사 후에 후유증이 생길 수도 있다고 들었다"라며 "혹시나 후유증이 생길 게 두려워 그냥 재채기를 참고 시험을 보려고 한다"라고 답했다.

교육청 "아직 지침 내려온 것 없다"
   

▲ 2021학년도 대학 수학능력시험을 30일 앞둔 11월 3일 오전 강원 춘천고등학교에서 고3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교육청마다 제각각인 지침 안내는 수험생들의 혼란을 키우고 있다. 실제로 기자가 복수의 교육청에 호흡기 질환자 관련 지침을 문의한 결과 대부분 담당자에게서 모호한 반응이 돌아왔다. 교육부가 호흡기 질환자를 '시험 편의 제공 대상자'에 포함한다고 말했지만, 교육청은 "아직 구체적으로 들은 바가 없다"라는 입장이다.

'호흡기 질환자는 마스크를 벗고 시험을 볼 수 있는 것이냐'라는 물음에도 뚜렷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11월 27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수능 날 고사장 상황에 따라 지침이 변경될 수 있다"라며 "시험편의 제공 대상자에 포함된 수험생일지라도 마스크를 벗는다고 확답할 순 없다"라고 말했다.

별도 고사실 운영 방식에 대한 답변도 지원청마다 제각각이었다. 새롭게 추가된 호흡기 질환자 이외에 기존 '시험편의 제공 대상자'로는 틱장애와 공황장애 환자들이 있다. 이들은 원래 1인 고사실을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 호흡기 질환 수험생까지 별도 고사실에 수용해야 하는 만큼 여분 고사실이 있을지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수능 날 사정에 따라 자칫하면 다양한 '시험편의 제공 대상자' 수험생들이 함께 시험을 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서울 동부교육청 관계자는 "여분 고사실이 없는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다양한 기저 질환자 수험생들이 함께 고사실을 사용해야 한다"라며 "아직 정확하게 안내를 드릴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서울 북부교육청 담당 실무자 역시 "사실상 수능 전날까지는 고사실 운영 방식을 포함한 어떤 것도 확실하지 않다"라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언제쯤 구체적인 지침이 마련되는 것일까.

이러한 교육청 대응에 가장 크게 실망감을 느낀 건 수험생들이다. B씨는 교육부 지침을 접하고 기쁜 마음에 교육청에 문의했지만, 이내 실망감을 느꼈다. 마스크 착용 여부·고사실 운영 방식 등 모든 질문에 "정해진 것 없다"라는 답변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결국 B씨는 별도 고사실에서 응시하는 방안을 포기하기로 했다.

전문가 "혼란 없도록 고사실 충분히 확보해야"

교육 당국으로서도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수능 날까지 '시험편의 제공 대상자'가 얼마나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일 수능 날 '시험편의 제공 대상자' 인원이 폭증하면 호흡기 질환·틱장애·공황장애 수험생은 모두 한 고사실에서 시험을 봐야 한다. 이에 호흡기 질환 수험생은 시험에 지장이 생길 것을 우려하고 틱장애·공황장애 수험생은 건강과 안전상의 이유로 걱정하고 있다.

배상훈 성균관대학교 교육학과 교수는 "무엇보다 중요한 원칙은 수험생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라며 "교육부는 특정한 장애로 수험생이 불편함을 겪는 일이 없도록 충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또 "수능 날 혼란이 가중되지 않도록 추가 고사실을 확보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도 충분한 고사실 마련을 강조했다. 정현진 전교조 대변인은 "교육부가 신종플루 사태를 상기하며 이번엔 충분히 수험생들을 배려할 것으로 믿는다"라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해당 기사는 이화여대 저널리즘 스쿨 매체인 <스토리 오브 서울>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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