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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출장에 4주 자가격리... 방역당국, 고맙고 미안합니다

[마초의 잡설 2.0] 말레이시아 출장, 고단했던 자가격리... 하지만

등록|2020.12.03 08:01 수정|2020.12.03 08:01

▲ 한산한 거리에서 몇 안되는 영업하는 식당 앞엔 오토바이로 음식 배달하는 배달원들만 거리 두기를 하며 주문한 음식을 기다린다. 헬멧을 벗고 잠시 마스크 안 쓴 저 배달원은 바로 순찰 중인 경찰에 적발됐다. ⓒ 조마초


올해 봄, 말레이시아에 열흘 일정으로 출장 갔다가 코로나19에 발이 묶여 50일 만에 귀국한 적이 있다(관련 기사 : 말레이시아에 열흘 예정 출장 갔는데... 50일 만에 귀국했다). 그런데 다시 말레이시아 출장 갈 일이 생겼다. 중요한 계약이나 미팅은 전화나 온라인 화상 대면만으론 솔직히 부족하다. 미국·유럽과는 다르게 말레이시아는 다행히도 통제 잘 되기에 큰 불안은 없었지만, 입국하기까지 새로운 절차가 까다롭게 생겨났다.

3일 말레이시아 일정에 두 차례 자가격리

단 3일 일정이지만, 말레이시아 도착 후 바로 의무적으로 2주 격리 및 한국 귀국 후 또 2주를 격리해야 했다. 출장 관련 비자, 서류 등은 현지 대행사가 진행했다.

말레이시아 이민국 발행 입국허가서, 시설격리 및 비용부담 동의각서(LoU), 여권 복사본과 비행기 표를 주한 말레이시아 대사관에 접수하고, 3일 후 입국 허가(Travel Notice)를 받았다. 현지 스마트폰에 검역 앱(MySejahtera)을 깔고 등록했다. 전에 없던 새로운 과정들이 시간을 뺐는다. 앞으로는 해외에 나갈 때 필수로 거쳐야 할 과정일 듯하다.

한산해서인지 인천공항의 출국 수속은 빨랐다. 항공사 라운지는 승객이 없어서 샌드위치 몇 개가 전부. 불을 밝힌 면세점도 사실상 개점 휴업상태다.

이젠 어디서든지 체온을 측정하는 게 의무이자 습관이 됐다. 현재 인천-쿠알라룸푸르 구간은 우리 국적기만 주 3회 운행하고 있다. 승무원 말로는 280여 석 비행기라는데 탑승객은 30여 명뿐. 한국인이 다수다. 이코노미 왕복 비행기 요금도 코로나 이전보다 3배 가까이 뛰었다.

대기, 또 대기
 

▲ 쿠알라 룸푸르 도심 북쪽 호텔 객실 창문에서 바라 본 트윈 타워. 대행이도 내 방은 높아 전망이 좋았다. ⓒ 조마초


6시간 반을 날아 밤 10시 반에 도착한 쿠알라룸푸르 공항도 불과 몇 달 전 내가 떠났던 밤처럼 스산했다. 입국자보다 검역관 및 국군(ATM), 민방위(APM), 자원봉사(RELA) 등 근무자 수가 더 많아 보였다.

말레이시아에 입국하는 모든 외국인은 안전입국(MySafeTravel) 사이트를 통해 입국 전, RM250(약 8만 원)에 달하는 코로나 검사비용 등을 미리 결제해야 한다. 교통·숙박이 포함된 오퍼레이션 코스트가 외국인은 RM2600(약 80만 원)이었다. 이 비용을 내지 않으면 비자는 취소되고, 추방되며, 이름이 블랙리스트에 올라간다. 다른 옵션은 본인이 직접 자가 격리할 호텔을 예약하는 등 좀 복잡하다. 대한민국 여권 소지자는 예전같이 입국 후 90일간 체류가 가능하단다.

입국 뒤 바로 콧구멍을 쑤시는 검사(Swab Test)를 받았다. 몇 달 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뒤 구청 앞마당에서 처음 받은 뒤 두 번째다. 경찰이 에스코트한 버스로 쿠알라룸푸르 도심지 지정된 격리 호텔에 도착하기까지 대기, 또 대기였다. 새벽 4시가 지나서야 객실에 들어갔다.
 

▲ 해외입국 자가격리자 인식 팔찌다. 2주 자가 격리 후 음성 판정받고 뺄 수 있다. ⓒ 조마초


짐을 풀고 면세점에서 산 술을 맛보니 창문 밖으로 붉게 동이 튼다. 왼쪽 손목엔 분홍색 격리 팔찌가 채워졌다. 이제부터 2주간 팔찌를 빼거나 객실 밖으로 나갈 수 없다. 객실 앞에 하루 세 번 호텔서 조리된 음식과 생수, 음료, 수건 등이 배달된다. 남은 음식, 생활 쓰레기 등은 미리 비치된 노란색 비닐에 넣어 문 앞에 내놓으면 수거 후 소각 처리한단다.  

현지 거래처, 지인 등과 이메일과 전화, 소셜미디어 등으로 연락했다. 온라인으로 영화 등을 보거나 화상회의에 참석하고, 세 끼 식사를 하면 하루가 다 간다. 그러나 좁은 사각 호텔방이란 한정된 공간에서 24시간 생활한다는 게 그리 쉽지 않다는 걸 며칠 안 돼 느꼈다.

코로나 검사 결과 음성이라는 쪽지가 왔다. 면세점에서 사온 술도 홀짝홀짝 다 마셨다.

낯선 곳에서의 14일
 

▲ 우렁각시처럼 소리없이 객실 문 앞에 놓고 간다. 동서양이 혼합된 이런 종류의 말레이시아 식단이 매일 3번씩 제공된다. 내 입맛엔 다 좋았다. ⓒ 조마초


지난번 집에서 자가격리했을 때와는 상황이 아주 다르다. 집에선 음악을 틀고, 체조하고, 집안을 자유롭게 움직이고, 베란다 화초를 가꾸고, 요리하고 설거지하면 하루가 다갔다.

여기에선 새벽 5시에 기상하면, 2시간 맨손체조 등 운동을 하고 창문 밖을 구경하거나 창문을 열어 환기하고 청소도 하며 나름 규칙적으로 살려고 노력했다. 사회의 소음이 그리워 낮에 객실 창문을 열어놓기도 했다. 안 그러면 정신이 이상해질 것 같았다. 특히, 비 오는 밤엔 더 했다. 좁은 우리 속의 동물들이 왜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고, 종일 머리를 흔드는지 이해됐다.

일찍 일어나서 계속 움직이니 입이 심심하다. 난 음식을 전혀 안 가린다. 솔직히 호텔에서 제공한 음식은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한편으론 너무 단조롭고 답답해서 주전부리 등을 안 가지고 온 게 후회됐다. 공항에서 대기하며 들으니 입국자 대부분 한국에서 즉석식품 등을 준비해 왔다더라.

외부 음식 반입도 가능하다. '종교적으로 허용된', 할랄(Halal)로 조리된 패스트푸드 체인점, 식당 음식만 허락된다. 배달앱을 통해 객실 하루 1회만, 그것도 오후 3~5시 사이 호텔 격리사무실에 음식이 도착해야 오후 6시에 객실로 온다. 고맙게도 거래처에서 다양하게 신경써줘 배고프진 않았다.
 

▲ 퇴실 전날, 호텔 2층 검역 공간에서 모든 격리자들이 모여 콧구멍을 쑤시는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어느 나라나 검역관들이 제일 고생이 많다. ⓒ 조마초


자가격리 13일째. 격리자들이 검사 공간에 모여 또 콧구멍을 쑤시는 검사를 받았다. 플래너 날짜에 마지막 X표를 쳤다. 마지막 날 오전, 격리자 모두 코로나 음성 판정을 받았다. 담담하게 짐을 싸서 호텔을 나서며 격리 팔찌를 뺐다.

말레이시아 내 식당 등 영업시간은 엄격하게 오전 6시~밤 10시이고 재래·도매시장은 오전 6시부터 오후 2시, 5시다. 한국과는 다르게, 여긴 도심 길목마다 경찰과 기관총과 헬멧으로 중무장한 군인들이 검문하는 걸 볼 수 있다. 주민들은 경찰 허가증을 소지해야 일정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다. 만약 검역 앱에 이동 인증을 안 하면 RM1000(약 30만 원) 벌금도 문다.

업무 때문이지만... 솔직히 미안했습니다
 

▲ 모두 음성 판정을 받은 격리자들이 호텔 앞에서 각자 목적지로 가기 위해 그랩, 택시, 지인 등을 기다리고 있다. ⓒ 조마초


유흥업소 등에서 마스크 착용과 거리두기를 안 지켰고, 허가 없이 지역을 벗어난 혐의로 600명 넘게 체포됐다는 현지 뉴스가 떴다. 말레이시아는 초창기부터 한국산 진단 키트를 수입했다. 또 동남아에서 처음으로 내년 초부터 전 국민에게 코로나 백신을 무료 접종하겠다고 발표했다.

말레이시아 내 병원에서 24시간 전 체온을 잰 진단서가 있어야 인천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지난번 첫 번째 자가격리는 어렵사리 귀국해 심적으로 편안한 감정이 앞섰다면, 말레이시아에서의 격리는 집과 다르게 낯선 고립된 작은 공간에서 지내는 터라 힘들었다. 귀국 후 한국에서의 자가격리는 다시 익숙한 공간에서 이뤄지니 정신적으로는 그나마 편했다.

내 인생에서 14일씩 세 번, 총 42일간 한정된 공간에서 강제로 홀로 격리된 삶을 살았다. 얼떨결에 진단 키트로 콧구멍 쑤시는 코로나 검사도 수 차례 받았다.

출장도 마쳤고, 코로나도 음성 판정 받았다. 공항과 보건소 등 최일선에서 입국자를 상대로 검역을 진행하며 24시간 쉼없이 고생하는 의료진, 공무원과 관련 근무자들이 존경스럽다. 해외입국자 입장에서는, 해외 방문을 자제해야 하는 상황에 나 때문에 고생한 말레이시아와 한국의 방역 당국에 고맙고도 미안한 마음이 든다.
 

▲ 쿠알라룸푸르 도심 미지드 자멕(Mesjid Jamek)의 멜라유 거리 시장을 패쇄하고 철조망까지 쳤다. 총을 든 군인과 경찰이 근무 선다. ⓒ Berna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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