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부모님이 '인 서울' 아들 자취방을 보고 남긴 말
[동영상-지방청년 서울살기] "사무실은 번화가에 있는데..."
'동영상-지방청년 서울살기'는 청년 미디어 '미디어눈'이 제작한 '서울공화국' 영상 시리즈를 기사화한 것이다. '서울공화국'은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온 청년들의 생생한 일상과 고민을 청년의 시선에서 제작한 영상 콘텐츠다.[기자말]
▲ 경상도 부모님이 '인 서울' 아들 자취방을 보고 남긴 말 ⓒ 윤형
가족과 함께 사는 집에서 나와 살기 시작한 것은 17살 때부터였다. 고등학교 3년, 재수 1년, 대학교 3년, 그리고 군대에서의 2년까지 포함하면 총 9년의 세월을 기숙사에서 살았다. 게을렀던 시간 없이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고 기회와 성공을 좇아 홀로 '인 서울(in Seoul)'했지만, 서울에 머물기 위한 비용을 가족이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방 한 칸의 자유
▲ 자취방으로 이사한 첫 날. 1년 전의 현장감이 돋보인다. ⓒ 윤형
비록 방 한 칸이지만 서울에 나만의 독립적인 공간이 있다는 것은 아주 새로운 경험이었다. 기숙사를 벗어나 혼자 사는 공간이 생기니 고향 친구가 서울에 놀러 왔을 때 재워줄 수 있었다. 또, 룸메이트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이 밤늦게까지 통화하거나 이어폰 없이 음악을 크게 틀어놓을 수도 있다는 점도 좋았다.
특히 최근에는 학교 수업이 모두 비대면으로 진행되면서 화상회의를 할 일이 많아졌는데 회의를 위해 다른 공간으로 옮기지 않아도 되었다.
물론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매일같이 혼자서 끼니를 챙겨 먹는 일, 매달 월세와 공과금을 내는 일, 요일에 맞춰 분리수거하기 등 해야 할 일이 늘었다. 자취방이 20년 이상 된 주택이다 보니 겨울이 되면 집이 추웠고,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어 햇빛이 잘 들지 않아 빨래가 잘 마르지 않는 불편함도 있었다.
하지만, 졸업하고 직장인이 되어 더 넓고 햇빛이 잘 드는 집에 살 거라 생각하면 견딜 만한 어려움이었다.
서울에서 집 찾기
▲ 시계는 11시 37분을 가리키는데 방은 여전히 어두컴컴하다. ⓒ 윤형
"[Web 발신] 축하드립니다. 귀하는 서울OO 행복주택 서류제출대상자로 선정되셨습니다!"
몇 주 전 서울에 사는 고향 친구에게서 카톡이 왔다. 서울시에서 청년을 대상으로 지원하는 행복주택의 '서류제출대상자'가 된 것이다. 최종적으로 선정이 되면 최대 3년간 시세보다 비교적 저렴한 신축 건물에서 거주할 수 있다.
그러나 부러움도 잠시였다. 친구는 신청자 3000명 중에 500명 6:1의 경쟁률을 뚫어 겨우 '서류제출대상자'가 되었지만, 주택의 공급 수량은 단 40호에 불과했다. 결국, 또다시 12.5:1의 경쟁률을 뚫어야만 한다. 확률이 희박하다는 걸 알지만, 당장 졸업 후에 살 곳을 생각하면 다른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이후로 LH 전세임대주택, 행복주택, 역세권 청년주택 사이트를 수시로 드나들며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 친구가 보내온 문자 한 통. 친구는 행복주택 서류제출대상자가 되었다. ⓒ 윤형
부모님이 서울에 오셨다
연휴를 맞아 부모님이 서울에 오신 적이 있다. 자취방에 오시는 게 처음이라 청소도 깨끗이 하고 기다렸다. 기숙사에 살 때와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부엌에서 커피라도 한 잔 끓여드릴 수 있고 함께 잠을 잘 수도 있었다.
집에서 나와 서울 지하철을 타고 서울 구경을 나섰다. 내가 일했던 시청역 근처의 공유 사무실-덕수궁-남대문 시장을 둘러보는 간단한 일정이었다. 사무실은 23층으로 시청역과 을지로입구역 사이에 있는데 서울 한복판에 있는 사무실에 일하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부모님은 창 밖으로 보이는 을지로의 키 높은 금융 회사 건물들을 한참을 쳐다보셨다.
▲ 아버지의 뒷모습. 을지로의 높은 빌딩들을 바라보고 계신다. ⓒ 윤형
밖에서 저녁을 먹고 자취방으로 돌아왔는데 아버지가 말했다.
"우리는 이제 그만 내려갈란다."
좁은 방이지만 모처럼 서울까지 오신 김에 당연히 주무시고 가실 줄 알았는데 당황스러웠다. 어머니의 만류에 결국 함께 잠을 잘 수 있었지만, 아버지는 자취방을 무척이나 답답해 하셨다. 집에 돌아와 얘기를 나누면서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 지금도 가끔 생각난다.
"니 사무실은 그 번화가에 있는데 잠자는 곳은 극과 극이잖아. 아침에 눈 뜨고 가방 메고 나가면 생활하는 곳은 정말 남들 볼 때 '저 사람 성공했네' 할 만큼 좋은 곳에 있는데, 마치고 퇴근하고 오면 이 좁은 단칸방에서 라면 끼리 묵고(끓여 먹고)... '내가 생활하는 곳도 내가 잠자는 곳도 번화가로 가야겠다'라는 생각으로 살면 좋겠다."
집이란 무엇인가
▲ 하늘 아래 집은 많고 내 집은 없다. ⓒ Pixabay
집이란 지금 내가 발을 딛고 밥을 먹고 책을 읽고 잠을 자는 공간이다. 이 낯선 대도시에서 불안한 미래에 대비하느라 지친 내가 혼자 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최근 언론에서 주목하는 '종부세 폭탄', '2030영끌', '부동산대책XX…' 등의 기사들은 나의 일상과는 거리가 멀다.
졸업까지 한 학기를 남겨두고 있다. 2월에 월세 계약이 끝나면 마지막 학기에는 기숙사에 들어갈 예정이다. 과연 졸업 후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서도 서울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어느 세대이든 청년들의 취업은 쉬운 적이 없다고 하지만, 요즘 뉴스를 보면 올해의 취업 구멍은 유난히도 좁아 보인다. 언제쯤 집을 소유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다음에 부모님이 서울에 올라오신다면 방이 두 개 있는 전세방에서 재워드리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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