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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살의 선물

등록|2020.12.08 09:51 수정|2020.12.08 14:23

아이의 시선작고 하찮은 것도 소중하게 들여다보는 아이의 시선은 어디서든 즐거움과 기쁨을 발견하곤 한다. ⓒ 김현진


다섯 살 아이에게 선물은 어떤 의미일까. 저녁을 먹고 난 아이가 친구에게 줄 선물을 만들겠다며 색종이와 사인펜, 스티커와 가위를 가져왔다. 색종이를 골라 사람을 그리고 자기 이름을 적었다. 그걸 작게 접어 비닐 팩에 담고 스티커를 붙였다. 다시 냅킨으로 겉면을 감싼 후 리본을 묶더니 완성되었다며 좋아했다.

그런데 어른의 눈에는 도무지 선물로 적당해 보이지 않았다. 사탕이라도 넣었으면 싶은데 아이는 싫다고 했다. 아이가 꾸민 종이 조각을 받고 친구들이 과연 좋아할까. 선물이라며 기뻐하는 아이와 달리 내 마음엔 걱정이 밀려들었다.

학창시절,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그림을 그리거나 종이를 오려 붙여 카드를 만들었다. 한 번은 작은 상자를 만들어 키** 초콜릿을 담은 꾸러미를 준비했다. 금색, 은색 종이로 일일이 상자를 접었고 초콜릿을 넣어 리본으로 꾸몄다. 무언가 신나는 일을 벌이고 있다는 생각에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크리스마스와 함께 맞이할 겨울 방학이 선물처럼 다가오고 있었다. 설레는 마음을 친구들과 나누고 싶었던 것 같다. 초콜릿 사이로 그런 마음을 숨겨 넣었다. 그때는 무얼 주느냐보다 거기에 담긴 마음을 더 중요하게 여길 줄 알았다.

선물 안에 담긴 마음보다 겉으로 보이는 물건을 의식하게 되면서 선물은 재미없어졌다. 내가 좋아하는 게 아니라 받는 사람의 입장과 취향을 고려해 선물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고 의례적으로 챙겨야 하는 선물도 늘었다. 친하지 않은 사람이나, 의무적 관계로 맺어져 관심사를 모르는 경우, 선물은 더욱 어려웠다.

그럴수록 무얼 주느냐가 중요해졌다. 물건이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면 거기에 담으려 했던 마음도 무용지물이 될 것 같았다. '선물(膳物)'이 물건(物)에 치중하면 할수록 그 안에 담아야 하는 선하고 애정 어린 마음(善)은 잊혔다.

색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선물이라고 포장하는 아이에게 "사탕이라도 넣을까?" 하고 물었던 나는, 선물의 '물(物)'만 보고 있었던 게 아닐까. 아이는 선물을 만드는 과정에 몰입했고 감탄하며 즐거워했다. 완성된 꾸러미를 들고 친구들에게 나눠 줄 궁리에 신이 나 있었다.

아이의 상기된 얼굴을 보면서 걱정을 내려놓기로 했다. 작은 꾸러미는 아이가 가득 담은 선한 마음으로 '선물'이 되기에 충분했으니까. 어쩌면 아이는 그걸 만드는 사이 생겨난 즐거운 마음이 진짜 선물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어른이란 참 재미없는 사람이구나 싶다. 선물의 기쁨도 잃고 놀이의 즐거움도 까먹고, 꿈꾸는 능력도 퇴화했다. 아는 게 많아질수록 세상은 넓어지는 게 아니라 손바닥처럼 작아졌다. 상처받거나 실망할까 봐, 실수하거나 손해 볼까 봐, 두려워하고 망설이느라 세상에 자꾸 선을 그었다. 그렇게 그어 댄 선이 어른을 가두는 새장이 되었다.
 
물루는 행복하다.(…) 그가 무릎 위에 몸을 옹크릴 때도 제가 가진 모든 애정을 남김없이 쏟아가며 웅크린다.(…) 고양이가 다리를 반쯤 편다면 그것은 다리를 펴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고 또 다리를 꼭 반쯤 만 펴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희랍 꽃항아리들의 가장 조화로운 윤곽에도 이토록 철저한 필연성은 없다.

나 스스로 돌이켜 보노라면 이런 완전함은 나를 슬프게 한다. 나는 내가 인간이구나 하는 느낌을 갖게 된다. 즉 그냥 온전히 못한 존재라는 느낌이 든다는 말이다.

(39~40쪽,<섬> 장 그르니에, 김화영 옮김, 민음사)

하나의 동작 속에도 완전히 몰입하는 고양이를 보며 슬픔을 느꼈던 장 그르니에의 마음이 나에게 옮아온다. 별수 없는 어른이 되었구나 싶어 조금 울적해진다. 순수하게 몰입하고 즐거움을 나누는 법을 잃어버린, 온전치 못한 존재라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작은 선물 꾸러미를 만들며 가슴 설레어 잠을 설치던 그 아이는 어디로 갔을까. 마음도 나눌 수 있다고 믿었던 그 아이 말이다. 곁에 있는 아이가 그 밤으로 나를 부르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블로그에 중복 게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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