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3%룰 - 전속고발제 폐지, 모두 거짓말이었다

민주당, '꼼수' 통해 핵심 후퇴한 '공정경제 3법' 통과시켜... 안팎에서 비판 거세

등록|2020.12.09 18:43 수정|2020.12.09 20:07

▲ 7일 밤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진행된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 금융그룹 감독법, 공정거래법' 등 안건 변경 상정에 대한 표결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손을 들어 찬성하는 반면 국민의힘 의원들은 반대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더불어민주당이 당초 재벌 개혁의 일환으로 정부 원안에 포함돼 있던 '기업의 중대한 담합 행위(경성담합)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제 폐지' 내용을 없애버린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9일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단독으로 의결한 뒤 본회의까지 통과시켰다(재석 257명, 찬성 142명, 반대 71명, 기권 44명).

전속고발제란, 담합 등 공정거래법 위반 사건에 대해선 공정위의 고발이 있어야만 수사를 할 수 있게 한 제도로, 공정위와 대기업의 유착 관계를 끊어내기 위해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민주당 역시 2017년 대선과 2020년 총선 때 '전속고발제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웠었다.

전속고발제 유지로 시민사회는 물론 민주당 내부에서도 당장 "경제민주화 개혁이 크게 후퇴했다"라는 비판이 나온다. 전날인 8일 '3%룰'(감사위원 분리 선출과 대주주·특수관계인 의결권 합산 최대 3% 이내 제한)을 기존 정부 안보다 크게 후퇴시킨 상법 개정안을 처리한 데 이어 민주당이 추진해온 이른바 '공정경제 3법'(상법 개정안·공정거래법 개정안·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이 유명무실해졌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이날 국회에서 국민의힘이 불참한 가운데 법사위 전체회의를 열고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을 그대로 유지시킨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단독 의결했다. 앞서 이 법안의 소관 상임위원회인 정무위원회에선 일부 민주당 의원들의 반대 의견이 있었지만, 이날 법사위에선 반대 토론 하나 없이 조용히 처리됐다. 이어 본회의에서도 통과됐다.

후퇴한 법안 내용뿐만 아니라 법안 처리 과정 역시 도마 위에 오른다. 7일 민주당 정무위에선 지난 8월 전속고발제를 폐지하는 정부안 내용을 바꿔 전속고발제를 유지하겠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민주당은 전날인 8일 오후 7시 45분께 정무위원회 안건조정위원회 땐 안건조정위원으로서 캐스팅 보트를 쥔 배진교 정의당 의원의 동의를 구하기 위해 전속고발권을 폐지하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불과 3시간여 뒤인 밤 11시께 열린 정무위 전체회의에선 입장을 다시 번복해 전속고발권을 유지하는 내용의 수정안을 제출하고 곧바로 의결해버리는 '꼼수'를 썼다.

정의당은 이에 "민주당의 눈속임에 속았고 이용당했다"라고 규탄했다.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와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이날 오전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를 직접 찾아가 항의했다.

전속고발권 유지 → 폐지 → 유지… 내부서도 비판 목소리
  

▲ 김병욱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 위원장. 사진은 지난 11월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소위원회 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는 모습. ⓒ 공동취재사진


더불어민주당이 전속고발권을 유지시키기로 한 논리로 제시한 건 "전속고발권이 폐지되면 기업 수사에 대한 검찰의 권한이 많아지는데, 이것이 현재 추진 중인 검찰 개혁 기조와 맞지 않다"는 것이다.

한정애 정책위의장은 9일 <오마이뉴스>에 "전속고발제 대해선 상임위원회(정무위)의 판단에 맡겼다"라면서도 "전속고발제 폐지 문제는 검찰 등 권력기관 개혁의 문제와 같이 생각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 정책위의장은 "검찰 개혁이 끝난 뒤 언젠가 전속고발제 폐지 문제도 논의되지 않겠나"라고 했지만 구체적 시기에 대해선 답하지 않았다.

정무위 소속 민주당 간사인 김병욱 의원(성남 분당을) 역시 8일 밤 전체회의에서 전속고발권을 유지하는 내용의 수정안을 상정하면서 "전속고발권 폐지와 관련해(공정위의 고발 없이 검찰이 공정거래법 위반 사건을 수사할 수 있게 되면) 검경수사권 조정 문제와 검찰의 중복 수사, 별건 수사 같은 우려가 있다"라며 "수정안을 조속히 처리해달라"고 말했다.

이에 민주당 내부에서조차 "명백한 개혁 후퇴"라는 반발이 나온다. 정무위 소속 복수의 민주당 의원들은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이번 공정거래법 개정안에서 전속고발제 폐지가 빠진 건 상법 개정안의 '3%룰' 완화와 함께 재벌 개혁 취지가 크게 퇴색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무위 소속인 박용진 민주당 의원(서울 강북을)도 이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전속고발권이 다시 그냥 유지된 채로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통과된 것은 불만스럽다"라고 밝혔다.

이번 전속고발권 유지 결정에 대해 잘 아는 민주당 관계자는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이 없어지면 검찰권이 강화된다는 당의 얘기 역시 설득력이 크게 떨어진다"라며 "알아서 재벌들 눈치를 보기 위해 만들어낸 '면피용' 논리"라고 비판했다. 이 관계자는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이 없어진다고 해서 검사들이 '정치 수사'도 아닌 '기업 수사'를 갑자기 열심히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라고도 꼬집었다.

이 관계자는 "전관 등을 활용한 공정위와 기업간의 커넥션은 현재 한창 문제가 되고 있는 정치와 검찰간의 커넥션 못지 않게 심각한 적폐"라며 "진보 진영의 오랜 과제에 대해서까지 이렇게 말을 바꾸는 이유를 모르겠다, 민주당이 '공정경제법'이라고 할 만한 명분들이 다 사라졌다"라고 우려했다.

시민사회 "재계와 보수 경제지에 굴복… 사과하라"
  

▲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와 김태년 원내대표, 한정애 정책위의장이 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온택트 의원총회에서 휴대폰을 보며 대화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시민사회는 크게 반발하고 있다.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는 9일 입장문을 내고 "민주당이 안건조정위에서 정부안에 담겼던 경성 담합에 대한 전속고발권 폐지안을 그대로 가져가기로 합의했던 걸 전체회의에서 뒤집고 철회한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이라며 "여당이 재계와 보수 경제지의 압박에 굴복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속고발권 폐지는 대한상공회의소 등 재계에서 강하게 반대해온 바 있다.

참여연대는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폐지는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2017년 대선 공약, 2020년 총선 공약으로 국민에게 지속적으로 공개 약속한 사항"이라며 "여당이 공약을 지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음에도 오히려 이를 철회하는 법안을 강행하는 모습을 보며 국민들은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라고 힐난했다. 이들은 "민주당은 이번 공정거래법 개정안 처리 과정에서 보여준 비상식적인 모습을 반성하고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배진교 정의당 의원(비례대표) 역시 이날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공정위원회가 경성담합에 대한 전속고발권을 폐지하겠다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유지시킨다고 한다"라며 "전속고발권의 전면 폐지를 주장하는 입장에서 전면 폐지도 아니고 경성담합에 대한 전속고발권만 폐지하겠다는 것조차 안 하겠다면 이게 과연 '공정경제'를 하겠다는 게 맞느냐"라고 따졌다.

[관련 기사]
상법 '3%룰' 후퇴, 여당에서도 "박근혜 법안보다 못해" 비판 http://omn.kr/1qwff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