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제발, 그만..." 김용균 어머니·이한빛 아버지, 무기한 단식농성 돌입

[현장]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11일부터 국회 앞... 정의당 강은미 의원과 함께

등록|2020.12.11 16:01 수정|2020.12.11 19:06
 

▲ 고 김용균씨 모친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마이크)이 11일 국회 본청 현관 앞에서 열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정의당 단식농성 돌입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11일 오전 국회 본관 앞, 김도현씨는 자꾸 표정이 일그러졌다. 건설 현장에서 떨어져 죽은 동생, 고 김태규씨의 영정을 든 그가 눈물을 참지 못하는 동안 아들 김용균씨를 먼저 떠나 보낸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은 덤덤하게 발언을 이어갔다.

김미숙 이사장 : "용균이로 인해 만들어진 산업안전보건법으로는 계속 되는 죽음을 막지 못하고 있다. 세상이 변한 게 없는 것 같다. 너무 많이 죽는다. 제발 그만 좀 죽었으면 좋겠다. 절박한 마음으로 마지막 선택을 했다. 저는 평생 밥을 굶어본 적 없어 무섭기도 하고, 잘할 수도 있을지 걱정이다. 나의 절박함으로 다른 사람을 살릴 수 있다면 하는 바람이다. 피눈물 흘리는 심정으로 단식하겠다."

드라마 제작 현장에서 극심한 노동강도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이한빛 PD의 아버지, 이용관씨는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슬픔도 감추지 못했다.

이용관씨 : "본회의에서 수많은 법안이 통과됐으나 저희가 제출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논의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다. 기다리는 저희 유가족은 피눈물이 흐른다. 더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제정되지 않는 한 살아서 제 발로 나가지 않을 거다. 국회는 조속히 법을 제정해달라. 제발 저희가 살아갈 수 있는 작은 희망이라도 만들어달라."

그 모습을 지켜보며 김도현씨는 계속 울었다. "유족이 단식까지 하는 이 현실이 분하고 억울해서 눈물만 난다"고 했다. 마이스터고 현장실습 중 사망한 고 김동준 학생 어머니 강석경씨와 아직 동생을 찾지 못한 허경주 스텔라데이지호 가족대책위원회 공동대표 역시 침통한 얼굴이었다.
 

▲ 고 김용균씨 모친 김미숙씨가 11일 오전 국회 본청 앞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을 시작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김용균법 만들어졌지만... 제발 그만 좀 죽었으면 좋겠다"

이날 정의당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강은미 원내대표와 김미숙 이사장, 이용관씨 세 사람이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정의당은 지난 6월 강은미 원내대표 대표발의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내놨지만, 아직 소관 상임위인 법제사법위원회 문턱도 넘지 못했다. 거대 양당,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법안의 필요성에는 공감한다면서도 정작 처리는 미적대고 있어서다.

김종철 대표는 "김용균의 어머니, 이한빛의 아버지가 싸우는 이유는 자녀들처럼 희생되는 사람이 없게 만들어 달라는 것"이라며 "이한빛 PD가 떠난 지 4년, 김용균 노동자가 떠난 지 2년 되는 동안 국회는 직무를 유기했다"고 질타했다. 그는 "너무 잔인하고 반인륜적"이라며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왜 아직도 희생자의 부모님들이 찬 바닥에서 곡기를 끊으면서까지 싸워야 하는지 답하길 바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산재 유족, 이상진 민주노총 부위원장과 함께 단식을 시작하는 강은미 원내대표는 "정기국회 막바지 모습이 어땠냐"며 "174석을 가진 집권여당이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는데, 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데에는 그렇게 안 하는지 따져묻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어제 (2주기였던) 김용균을 추모하며 많은 말들이 쏟아졌다"며 "이제 말뿐인 추모와 재발방지가 아니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통과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이낙연 대표님, 김종인 비대위원장님, 주호영·김태년 원내대표님, 더 미루지 마십시오. 반드시 이번 임시국회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만들어 국민의 생명을 지킵시다."
 

▲ 정의당 김종철 대표와 강은미 원내대표, 고 김용균씨 모친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등이 11일 국회 본청 앞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농성에 들어가고 있다. 왼쪽부터 이상진 민주노총 부위원장,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 고 이한빛 PD 부친 이용관씨, 김종철 정의당 대표. ⓒ 공동취재사진


심상정 의원도 민주당을 강하게 성토했다. 그는 "국민이 일하다 죽지 않도록 원청과 경영자의 책임을 분명히 하자는, 너무나도 상식적인 이 요구가 왜 아직도 본회의장 문 밖에 서 있어야 하는지 통탄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며 "민주당은 도대체 왜 안 하냐, 왜 못 하냐"라고 했다.

그는 이어 "지금 회기 중이고 국민도 지지한다, 의석도 충분하다"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이번 임시국회 밖으로 내쳐진다면 문재인 정부는 '노동존중사회' 푯말을 떼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관련 기사: '약속 불발' 사과 없이... 이낙연 "중대재해법, 이른 시기에" 또 약속).

민주당 "임시국회 내 상임위 처리" - 정의당 "의지 있으면 뭘 못하냐"

민주당은 11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임시국회 내 처리'라는 목표는 밝혔다. 하지만 본회의 최종 통과가 아닌 '법사위 통과'가 목표다.

최인호 수석대변인은 이날 기자들에게 "다음주 목요일날(17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관련 정책의원총회가 소집될 것"이라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반드시 제정될 것이고, 이와 관련된 여러 입법 활동들을 신속하게, 심도 깊게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제정법이라 거쳐야 할 필수 과정이 많다"며 "법 적용 범위가 워낙 넓고, 이해관계자들의 현장 목소리도 심도 깊게 들을 필요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이 소식을 들은 김종철 정의당 대표는 "의지가 있으면 무엇을 못하겠냐"며 거듭 여당을 비판했다. 그는 "민주당 내부가 정리가 안 된 것을 다른 당과 조율할 게 있다고 하니, 저희는 용납할 수 없다"며 "당 대표와 원내대표 발언도 면피성 발언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김 대표는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종결 동의(국회법에 따라 의원 180명 이상 동의 필요)에 동참하겠느냐'는 취재진 질문에도 "이런 상황에선 동의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고 못박았다.
 

▲ 고 김용균씨가 '비정규직 그만 쓰개! 1100만 비정규직 공동투쟁'이 추진하는 '문재인 대통령과 비정규직 100인의 대화'에 참가 신청을 하려고 찍은 인증 사진이다. 김 씨는 위 사진을 찍은 지 두 달 뒤, 2018년 12월 11일 새벽 일터인 충남 태안 화력발전소 9.10호기 석탄운송설비 컨베이어벨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 사진제공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