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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옮기면 제 장례도 치러주시나요?"

[홈리스 추모제 기고 ⑤] 무연시대, 전국적으로 보편화 된 공영장례가 필요하다

등록|2020.12.18 14:47 수정|2020.12.18 14:52
2019년 12월 기준, 대한민국에는 서울특별시를 포함해서 17곳의 광역지방자치단체가 있고, 시·군·구 기초지방자치단체 226곳이 있다. 이 중에서 서울특별시, 인천광역시, 경기도, 전라남도, 충청남도, 제주특별자치도 6개의 광역지방자치단체와 25개의 기초지방자치단체에서 공영장례조례를 제정했다. (2020년 12월 15일 기준)

광역지방자치단체의 조례는 해당 기초지방자치단체에도 적용할 수 있음으로 이를 기초지방자치단체에 조례가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면 총 122개의 기초지방자치단체에 공영장례조례가 적용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전체 기초지방자치단체 중 약 54%가 공영장례조례에 따라 기초생활수급자 등의 저소득시민과 무연고사망자에 대한 공영장례를 지원할 수 있다.
 

▲ 기초지방자치단체가 제정한 공영장례조례 ⓒ 나눔과나눔


이처럼 광역지방자치단체인 서울특별시, 그리고 기초지방자치단체인 김해시 등과 같이 공영장례조례가 마련된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무연고사망자 등에 대한 공영장례가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지방자치단체의 경우에는 여전히 '무빈소 직장(直葬)'으로 장례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누구나 사망한 장소와 관계없이 존엄한 삶의 마무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하지만 어디서 사망하느냐에 따라 죽음의 질은 차별적이다. 다시 말해 공영장례 제도가 마련되지 않은 곳에서 사망한 무연고사망자는 고인을 위한 장례 의식도, 평상시 관계를 맺고 있던 지인들이 애도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도 없이 안치실에서 화장장으로 바로 이동해서 화장된다.

실제로 서울시 공영장례지원 상담센터를 운영하는 사단법인 나눔과나눔은 서울시 저소득시민과 무연고사망자를 위한 지원·상담을 하고 있지만, 종종 서울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도 상담 전화를 받고 있다. 서울에 인접한 경기도와 인천광역시뿐 아니라 강원도, 제주도까지 다양한 지역에서 상담 전화가 오고 있다. 그만큼 재정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긴급한 장례상담이 절실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가족이 죽었을 때 공공기관 어디에도 장례 관련해서 문의할 곳이 없다. 그래서 상담 전화를 받으면 지역이 서울인지를 꼭 묻게 된다. 간혹 장례상담과 장례지원 안내를 모두 했는데, 돌아가신 분의 지역이 서울이 아니어서 적절한 도움을 드릴 수 없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상담 전화를 건 분은 "아니, 서울이 아니면 지원이 안 된다고요?"라며 너무나 어이없어하신다. 상담하는 처지에서도 난처하기는 마찬가지다.

보건복지부가 대답할 차례다

보건복지부가 해마다 발행하는 '장사업무안내'에서 '무연고사망자 등에 대한 장례서비스(추모의식) 지원'을 지방자치단체별로 개발·운영하고 필요한 경우 조례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이렇게 하다 보니 현재와 같이 지방자치단체별로 편차가 발생하게 된다. 공영장례조례는 2011년 신안군에서 전국 최초로 제정한 이후 2017년까지는 단 8개의 기초자치단체에서 제정했다. 즉, 최근 3년 사이 공영장례 조례 대부분이 제정된 셈이다.

이는 존엄한 삶의 마무리가 이제는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당연한 권리로 인정되는 사회적 분위기라고 볼 수 있다. 또한, 공영장례가 요람에서 무덤까지 존엄하게 삶을 살고 존엄하게 삶을 마무리할 수 있는 사회복지의 가치를 실현하는 사회보장으로써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제는 보건복지부가 대답할 차례다. 이제 여러 기초지방자치단체에서 마련되기 시작한 공영장례가 전국적으로 보편화 된 사회보장제도로 안정화하기 위해서는 전국적인 공영장례 지원체계 구축이 절실하다. 이를 위해 현재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여 공영장례를 위한 중앙부처 차원에서 지원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어야 한다. 현재 법률에서는 무연고사망자 행정업무의 주체가 기초지방자치단체로 되어 있다 보니, 보건복지는 권고만 할 뿐이다.

사회보장제도는 보편적이어야 한다. 보편적인 제도 위에 지역적 특성과 여건에 따라 추가적인 지원이 있을 수는 있다. 현재의 공영장례와 같이 공영장례 제도 자체가 있는 지역과 없는 지역으로 양분되는 것은 차별이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서, 성장하는 동안, 다치거나 아플 때, 실업 상태에 놓일 때, 나이 들어 치매에 걸려도 누구나 동일한 사회보장제도에 따라 국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오직 유일하게 죽은 다음 장례는 어느 지역에서 죽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우스갯소리로 서울특별시 공영장례 제도에 대해 들은 비혼인 분이 "주소를 서울로 옮기면 제 장례를 치러주시는 거죠?"라고 말한 적도 있다. 최소한 본인의 장례를 위해 주소를 이전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 서울시 공영장례 절차 중 산골(散骨) 예식 ⓒ 나눔과나눔


이를 위해서는 공영장례가 필요한 사람들에 대한 사망자 현황과 원인분석과 같은 통계가 체계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에는 홈리스사망자 통계가 없다. 무연고사망자 통계 역시 단순 취합된 숫자만 국회의원이 요구할 때 제공하고 있다. 분석 가능한 통계자료가 있을 때 제대로 된 정책과 예산이 마련될 수 있다. 그래야 실효성 있는 공영장례 지원도 가능해진다. 지역에 구분 없이 보편적인 사회보장으로서 공영장례 제도가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 내년 21년째를 맞이하는 홈리스추모제를 할 때 즈음에는 가능해질까?

사각지대 없는 공영장례가 답이다

현재 공영장례 중에서는 서울시 공영장례가 민관협력 모델로 가장 안정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서울시가 예산을 편성하고 예산집행은 서울시립승화원이 맡는다. 그리고 입찰을 통해 공영장례 의전 업체를 선정하여 서울시 25개 구청에서 발생하는 무연고사망자를 위한 고인모심(염습 및 입관, 운구 등)과 장례식을 동일하게 제공하고 있으며, 사단법인 나눔과나눔은 서울시 공영장례 전반적인 상담과 지원 업무를 하면서 가족 또는 지인 등의 장례참여자 및 자원봉사자 참여를 위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종종 공영장례가 무력화되는 순간이 계속되고, 사각지대도 존재한다. 여전히 동주민센터에서는 기초생활수급자 무연고사망자의 경우 관행적으로 장례식장을 통해 '무빈소 직장(直葬)'으로 무연고사망자를 화장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또한, 시설에서 사망한 무연고사망자도 시설장이 시설에 함께 생활하던 사람들에게 부고조차 알리지 않고 장례식장을 통해 '무빈소 직장(直葬)'으로 화장하여 사례가 여전하다. 또한, 보건복지부 지침이 변경되었음에도 이에 대한 숙지가 잘되지 않은 병원, 장례식장, 공무원들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2020년 연고자가 아닌 사람도 장례를 할 수 있는 '가족 대신 장례' 제도가 시작되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공영장례 업무안내 지침을 만들고 담당 실무 공무원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했음에도 여전히 무연고사망자 장례 현장에서는 제대로 된 안내를 받지 못한 사실혼 관계의 배우자가 남편의 장례를 직접 치르지 못하고 무연고사망자로 보내야 했던 안타까운 경우도 있다.

때로는 가족 또는 지인 등이 장례일정 안내를 요청하였음에도 구청 담당자가 공영장례 부고를 알리지 않아 참여하지 못했던 경우도 있다. 이미 화장되어 한 줌의 재로 변했으니 장례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은 어디에 하소연할 수도 없고 평생 한으로 남게 되기도 했다.

이 정도는 돼야 제대로 된 공영장례다

서울시 공영장례에 있어 개선하고 보완할 부분 중 하나는 장례 이후의 유골 봉안 장소 문제다. 서울시 무연고사망자의 경우 연고자가 없거나 알 수 없는 경우에는 현재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에 있는 '무연고 추모의 집'에 봉안된다.

약 3000명의 유골이 보관된 봉안 시설 외부에는 안내표지판도, 현판도 없으며, 내부에는 문서고 등에서 볼 수 있는 이동식 서가(서가형 모빌랙, Book Shelf Type Mobile Rack)가 설치되어 있다. 설치된 선반에는 공간의 구분도 없이, 그리고 유골함 보관을 위해 마련된 어떠한 조치도 없이 빼곡히 유골함이 놓여 있다. 이곳은 현실적으로 많은 유골을 보관하기에 최적화되어 있다고 볼 수 있겠지만, 최소한의 고인에 대한 예의를 갖춘 봉안당이라고 할 수는 없다.
 

▲ 서울시 ‘무연고 추모의 집 내부전경 ⓒ 나눔과나눔


또한, 서울시 '무연고 추모의 집'은 유골 반환을 위해서만 개방하고 있다. 무연고사망자의 지인 등은 정기적 개방을 요청하고 있다. 인력 또는 유골함 관리 문제로 상시개방까지는 어려움이 있다면 특정 요일 또는 날짜를 정해서 정기적 개방도 고려할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제주도의 경우에는 도에서 운영하고 제주시 양지공원과 서귀포시 추모공원에 봉안당에 무연고사망자의 유골을 보관하고 있다. 일반 시민들도 모두 이용하고 있는 봉안당이고, 따라서 누구나 원할 경우 무연고사망자의 봉안당 위치도 알 수 있다.

18일 제주도에서는 무연고사망자를 위한 첫 번째 추모제가 열린다. 이때 무연고사망자 유골이 안치된 곳에 헌화도 할 예정이라고 한다. 물론 서울과 제주도의 상황일 동일하지 않을 수 있지만, 고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고인과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애도할 수 있는 정도의 장소가 보장되어야 제대로 된 공영장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동짓날 진행하는 홈리스추모제가 20년째 한결같이 진행되고 있다. 올해도 12월 동짓날인 21일, '홈리스 추모제'가 열린다. 특히 14일부터 21일까지는 2020년 한 해 동안 서울에서 돌아가신 무연고 홈리스 사망자분들을 기억하기 위한 '홈리스 기억의 계단'을 설치하고 있다. 올해 홈리스 추모제를 기회로 이제는 사각지대 없는, 전국적인 공영장례 지원체계가 구축되기를 간절히 희망해 본다. 상상이 현실이 되는 그날을 또한 기대한다.

'2020 홈리스 추모제'란? : 홈리스의 사망은 열악한 복지지원체계에 따른 홈리스 생활의 장기화, 그에 따른 손상과 질병의 심화와 같은 연쇄반응의 결과다. 따라서 홈리스 추모제는 망인의 명복을 비는 것을 넘어, 예견되고 막을 수 있었던 죽음들을 더 이상 용인하지 말자고 사회에 호소하기 위한 자리가 되고 있다.
 

▲ 홈리스추모제 웹자보 ⓒ 홈리스행동


[기획 / 홈리스 추모제 기고] 
① 강제 퇴거에 취업 제한까지... 홈리스는 범죄자가 아닙니다 http://omn.kr/1qwok
② 또 다른 절망, 코로나19 위험이 쪽방촌으로 왔다 http://omn.kr/1qxkq
③ '급식대란'의 책임, 코로나에 물을 수 없다 http://omn.kr/1qy9x
④ 코로나 위험 맨몸으로 버티는 홈리스들 http://omn.kr/1r14l 
덧붙이는 글 이 글은 '2020 홈리스추모제 공동기획단'에 함께하고 있는 '나눔과나눔'의 상임이사 박진옥님이 작성하셨습니다. 이 기사는 또한 비마이너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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