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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야구팬들 깜짝 놀라게 한 'KBO리그 전매특허'

[2020 야구 연말결산] 코로나19 시대 크고 작은 사건사고 많았던 2020 한국야구

등록|2020.12.24 11:38 수정|2020.12.24 11:38
 

야구장에 등장한 '무 관중'프로야구 KBO리그 개막을 하루 앞둔 지난 5월 4일 인천 SK 행복드림구장 외야석에 '무 관중' 캐릭터가 그려진 현수막이 설치돼 있다. ⓒ 연합뉴스


지난 2005년에 개봉한 영화 <나를 미치게 하는 남자>는 세계적으로 5000만 달러의 잔잔한 흥행 수익을 올린 로맨틱 코미디 영화다. <나를 미치게 하는 남자>는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에 죽고 사는 수학교사 벤(지미 펄론)이 유능한 비즈니스 컨설턴트 린지(드류 베리모어)를 만나 벌어지는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그린 작품으로 지난 2003년 보스턴의 극적인 월드시리즈 우승을 모티브로 제작된 영화다.

<나를 미치게 하는 남자>에서는 린지에게 이별을 통보 받은 벤이 야구장에서 허탈하게 자신이 야구를 좋아하는 이유를 읊조리는 장면이 나온다. "야구는 우릴 실망시키지 않아. 100년 동안 우승을 못한다고? 그게 어때서? 그래도 여기 있잖아. 매년 4월마다 말이야. 낮이든 밤이든 경기가 있고 비가 와서 취소되면 반드시 재경기를 갖지. 그렇게 해주는 친구가 있어?" 야구팬들이라면 누구든 고개를 끄덕이는, 야구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지만 2020년에는 KBO리그가 출범한 지 39년 만에 처음으로 4월이 돼도 야구가 시작되지 않았다. 세계적으로 무려 160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코로나19 사태 때문이다. 방역강국으로 평가 받는 한국에서도 12월 17일 현재까지 4만 명이 넘는 확진자가 발생했지만 KBO리그는 단 한 번의 중단 없이 정규리그와 포스트시즌까지 모든 일정을 무사히 마쳤다. KBO리그 관계자와 선수, 그리고 야구팬들 모두 2020년을 자랑스럽게 생각해도 좋은 이유다.

'코로나 펜데믹' 속에도 KBO리그는 멈추지 않았다

작년 11월 중국에서 최초로 보고된 코로나19는 올해 초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한창 스프링캠프 일정을 소화하던 메이저리그에서는 연일 많은 확진자가 발생하자 스프링캠프를 전면 중단하면서 리그 연기를 선언했고 KBO리그 역시 3월 28일로 예정됐던 시즌 개막을 무기한 연기했다. 야구가 추운 날씨에서 하기 힘든 야외스포츠라는 점을 고려하면 시즌 축소, 최악의 경우엔 시즌 취소에도 대비해야 했다.

하지만 코로나19는 3월 말부터 조금씩 확진자가 줄어드는 기미를 보였다. KBO리그는 질병관리본부(현 질병관리청)와의 협의 끝에 5월 5일 정규리그 개막을 확정했다. 메이저리그와 일본 프로야구가 모두 개막을 연기한 가운데 무관중이지만 한국에서 가장 먼저 리그가 개막한 것이다. 야구에 목 말랐던 팬들은 온라인으로나마 야구를 즐길 수 있게 됐다는 사실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 미국 스포츠전문채널 ESPN의 한국프로야구(KBO리그) 섹션 갈무리. ⓒ ESPN


한국에서의 리그 개막은 해외, 특히 야구 종주국 미국에서 큰 화제가 됐고 급기야 미국의 스포츠 채널 ESPN에서는 야구가 일상인 팬들을 위해 KBO리그의 중계권을 구입했다. 비록 현장 중계는 아니었지만 KBO리그 경기가 미국 전역에 방송된 것은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었다. 특히 KBO리그의 전매특허가 된 호쾌한 배트플립과 몸 맞는 공을 던진 투수가 타자에게 정중하게 사과하는 장면 등은 메이저리그에선 보기 힘든 신선한 장면이었다.

지난 7월 말 제한적 관중입장을 시작한 KBO리그는 8월 초 30%까지 관중 입장이 확대됐지만 8월 중순 코로나19 2차 유행이 시작되면서 다시 무관중으로 돌아갔다. 8월 말에는 한화 이글스의 투수 2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시즌 중단의 위기가 찾아오는 듯 했지만 다행히 선제적인 격리와 후속조치를 통해 1군 경기 진행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

그렇게 올해 KBO리그는 지난 11월 24일 NC 다이노스가 창단 최초로 우승하며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비록 사회적 거리두기 격상으로 1670명의 관중만 모인 채로 우승의 기쁨을 누렸지만 NC는 창단 후 꾸준한 투자를 통해 발전을 거듭하며 1군 진입 8년 만에 정상에 우뚝 섰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연일 최대 규모의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지만 내년 봄에는 만원 관중이 가득 찬 야구장에서 다시 힘차게 새 시즌을 맞게 되길 기원해 본다.

한화의 18연패부터 신인 신동수의 그릇된 일탈까지
 

▲ 한화 이글스 ⓒ 한화이글스


코로나19로 메이저리그가 절반의 일정도 채 소화하지 못하고 '반쪽 시즌'을 치른 가운데 단 한 번의 시즌 중단 없이 풀시즌을 치러낸 것은 KBO리그의 자랑스런 성과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긍정적인 면만 보면서 어둡고 부정적이었던 부분들을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특히 2020 시즌 KBO리그에서 있었던 어둡고 부정적인 부분들은 코로나19 사태와는 무관한 일들이었기 때문에 야구계가 한 번 더 되돌아보고 반성해야 할 문제들이다.

지난 6월에는 한화가 18연패를 당하는 수모를 경험했다. 이는 프로 원년 삼미 슈퍼스타즈가 세운 기록과 같은 숫자다. 당시 삼미가 국가대표 선수도 없고 선수 구성도 제대로 되지 않았던 '준 아마추어' 수준이었음을 고려하면 한화의 18연패는 리그 전체에서도 대단히 부끄러운 기록이 아닐 수 없다. 한화는 18연패를 당하는 동안 한용덕 감독이 사퇴하고 순위 경쟁에서도 사실상 최하위로 밀려나고 말았다.

시즌 막판에는 정규리그 3위를 달리던 키움 히어로즈에서 뜬금없이 손혁 감독이 사퇴하는 일이 벌어졌다. 정규리그를 단 12경기만 남겨둔 상태에서, 포스트시즌 진출이 매우 유력한 팀의 감독이 시즌 막판에 팀을 떠나기로 결정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었다. 손혁 감독은 시즌이 끝나고 꽤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 사퇴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 있어 야구계에서는 여러 가지 추측들만 돌고 있다.

시즌이 끝난 후에는 방출 선수 명단에 포함됐던 베테랑 외야수 이택근이 키움 구단과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다. 지난 9일에는 이택근이 한국야구위원회에 히어로즈 구단의 징계 요청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이택근의 주장에 따르면 허민 의장을 비롯한 히어로즈의 경영진들이 팬을 사찰했고 자신이 이에 대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13일에는 은퇴선수협회에서 키움의 행보에 유감을 표명하기도 했다.

베테랑과 구단의 갈등만큼 심각했던 일은 이제 막 프로에서 첫 해를 보낸 어린 선수에게서도 벌어졌다. 삼성 라이온즈의 신인 내야수 신동수는 SNS를 통해 구단과 코치 및 선배 선수들, 연고 도시, 장애인 등을 비하하는 게시물들을 올렸고 팀 동료들을 비롯한 또래 선수들이 동조의 댓글을 달기도 했다. 결국 삼성은 신동수를 방출하고 관련 선수들에게 벌금과 사회봉사 징계를 내렸지만 선수들의 인성문제와 잘못된 SNS 활용은 숙제로 남게 됐다.

단축시즌에도 맹활약한 코리안 좌완듀오, 최지만은 WS안타
 

▲ 토론토 블루제이스 류현진 ⓒ USA투데이/연합뉴스


연일 수만 명의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코로나19 확진자 수에서도 세계 1위가 된 미국은 메이저리그를 비롯한 각종 스포츠를 전면 중단됐다. 그리고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올해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팀 당 60경기를 치른 후 각 리그의 10개 팀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사상 초유의 단축시즌을 치르기로 결정한 것이다. 코로나19와 단축시즌은 4명의 코리안 빅리거들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다.

올 시즌을 앞두고 LA다저스를 떠나 토론토 블루제이스에 새 둥지를 튼 류현진은 시즌 개막 후 2경기에서 1패 평균자책점 8.00으로 부진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류현진은 8월 한 달 동안 5경기에 등판해 28이닝 3자책으로 호투하면서 2승 ERA 0.96을 기록하는 엄청난 반전을 만들었다. 9월에도 3승을 추가한 류현진은 5승2패2.69로 시즌을 마치며 토론토가 2016년 이후 4년 만에 가을야구에 진출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계약하며 빅리그 진출의 꿈을 이룬 김광현은 시즌이 연기되는 과정에서 보직이 바뀌면서 선발이 아닌 마무리로 시즌을 시작했다. 8월 중순에야 간신히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한 김광현은 선발 합류 후 5경기에서 27.2이닝1자책(평균자책점 0.33)이라는 황당한 성적을 올렸다. 비록 승운이 따르지 않아 3승으로 시즌을 마쳤지만 메이저리그에서 무패시즌과 1점대 평균자책점은 결코 운으로 얻을 수 있는 성적이 아니다.

코리안 빅리거의 '큰 형님' 추신수는 2014 시즌을 앞두고 텍사스 레인저스와 맺었던 7년 계약이 올해로 마무리됐다. 만37세 시즌을 보낸 추신수는 30대 후반으로 접어든 나이 때문에 아무래도 팀 내 역할이 제한적일 수 밖에 없었다. 추신수는 33경기에 출전해 5홈런 15타점 6도루를 기록했지만 타율이 .236에 그치며 베테랑의 힘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빅리그에서의 현역 생활 연장을 원하는 추신수는 현재 내년 시즌에 활약할 새 팀을 알아보고 있다.

작년 19홈런 63타점으로 템파베이 레이스의 주력타자로 자리 잡은 최지만도 올해는 타율 .230 3홈런 16타점으로 인상적인 성적을 남기는데 실패했다. 하지만 최지만은 한국인 타자로는 처음으로 월드시리즈 무대를 밟아 안타를 기록하는 등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한 해를 보냈다. 특히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로 꼽히는 개릿 콜(뉴욕 양키스)을 상대로 정규리그에서 2방, 포스트시즌에서 한 방의 홈런을 터트리며 '천적관계'를 확실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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