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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독식은 공정에 부합한다"라는 아이들... 말문이 막혔다

[아이들은 나의 스승 219] 기말고사 끝나고 방학 앞둔 고등학교 교실

등록|2020.12.22 11:45 수정|2020.12.22 11:45

▲ 3일 치러진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수험장 내 사진(장소:대전 괴정고등학교). ⓒ 대전교육청


교사가 가장 수업하기 힘든 때는 언제일까. 시험이 끝난 바로 다음 날이다. 긴장이 풀린 탓인지, 종일 아이들의 눈이 풀려 있다. 그걸 보고 나무라기도 뭣하다. 그동안 시험 준비하고 치르느라 고생했는데, 수업 시간 딴청 좀 피운다고 대수일까 싶은 생각이 든다.

연일 코로나 확진자 수가 최고를 경신하는 와중에 기말고사가 막 끝났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3단계로 강화되면 어쩌나 학교는 노심초사했다. 교문이 닫혀 시험을 치르지 못하면, 이미 치른 중간고사 결과를 기준으로 성적을 환산하도록 규정돼 있긴 하다.

성적 관리 규정이 그렇다는 거지, 실제 적용하는 건 말처럼 쉽지 않다. 돌발 변수가 많아서다. 중간고사를 사정상 치르지 못한 아이도 있고, 특성상 기말고사 한 번만 치르는 과목도 있다. 수행평가의 실시 여부와 반영 비율까지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게 한둘 아니다.

그래선지, 현재 방역지침 상 1/3만 등교해야 하는데도 교육청은 시험 기간만은 예외로 두고 있다. 심지어 확진자가 아니면 의심 증상이 있는 경우에도 응시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별도의 시험실을 마련해 운영하도록 한 것이다.

얼마 전 수능 때와 동일하다고 보면 된다. 해당 시험실 감독 교사는 내내 방호복을 착용해야 했다. 의심 증상이 있는 아이들은 쉬는 시간 시험실을 함부로 나올 수도 없고, 사용하는 화장실도 따로 지정됐다. 기말고사가 뭐길래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다.

다행히 기말고사는 무탈하게 끝났다. 시험은 끝났지만, 겨울방학이 시작되려면 아직 20일 가까이 남았다. 학교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올해 연간 수업일수가 190일쯤 되니 무려 1/10에 해당하는 꽤 긴 기간이다. 방학만 기다리며 허송하기는 아까운 시간이라는 이야기다.

교사가 '보살'이 될 때

시험이 끝난 이튿날, 예상대로 교실은 시작종이 울렸는데도 왁자지껄 아수라장이다. 의자에 앉아 있는 아이가 거의 없을 정도다. 그들끼리 쓰는 알 듯 모를 듯한 은어와 다소 거친 욕설이 뒤섞여 빼꼼하게 열린 교실 창문을 통해 복도까지 들렸다.

절반은 여름철 매미 떼처럼 칠판에 붙어 무언가를 뚫어지게 보고 있다. 학급 성적표다. 시험 첫날 치른 과목의 성적이 벌써 산출된 모양이다. 하긴 OMR 카드에 기입하는 선다형 시험의 경우, 학년 전체의 성적을 처리하는 데 채 10분이 걸리지 않는다.

교과 담임교사가 성적표를 칠판에 붙여놓은 이유는 아이들의 확인 서명을 받기 위해서다. 최종 성적 처리 전, 자신의 성적을 직접 확인시키는 절차다. 이를 통해 교사의 출제 오류나 정답 표기의 실수 등을 찾아낼 수도 있다. 학교마다 이의 신청 기간을 두는 이유다.

아이들은 대개 자신의 성적보다 친구의 그것에 더 관심이 많다. 또, 점수보다 등위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성적표에 등위는 별도로 표기되지 않지만, 애써 일일이 친구들과 비교해가며 자신의 위치를 알아낸다. 서명 절차의 취지는 이미 온데간데없다.

성적이 공개된 교실은 정확히 둘로 쪼개진다. 희비가 엇갈리는 풍경이 조금도 낯설지 않다. 성적표를 보고 뒤돌아서는 아이들의 표정만 봐도 그의 점수를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총 여덟 과목이니, 이런 소란은 앞으로 일곱 번 더 겪어야 한다.

이 와중에 진도를 나가려면 교사는 '보살'이 되어야 한다. 교과서를 챙겨온 아이들조차 드문 마당에 수업은 무슨. 책상 위는 그 흔한 필기도구 하나 없이 휑뎅그렁하다. 몇몇 아이들은 일찌감치 쿠션을 올려두고 잠잘 준비를 하고 있다. 기말고사 후 방학을 앞둔 교실 풍경이다.

나도 교과서를 덮었다. 철딱서니 없는 몇몇 아이들은 손을 들어 이렇게 묻는다. "선생님, 시험도 끝났는데 오늘 자습 안 하나요?" "시험을 앞두고도 자습하자더니, 시험이 끝난 뒤에도 자습하면, 대체 수업은 언제 하니?" 아이들의 얼굴을 보니 괜한 말을 한 성싶다.

학생들이 믿는 공정성
 

▲ ⓒ 경기도교육청


아이들과 타협을 했다. 진도를 나가지 않는 대신, 시험에 대한 생각을 나눠보자고 제안했다. 시험에 대한 내 경험과 생각을 들려줄 테니, 궁금한 게 있다면 언제든 도중에 말을 끊고 질문하라고 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토론이 벌어질 수 있을 거라고 봤다.

"생김새도, 성격도, 타고난 재능도 모두 다른데, 왜 시험 성적 하나로만 줄 세우려 하고, 또 그것을 공정하다고 여길까? 류현진과 손흥민 둘에게 야구와 축구 중 어느 하나를 기준 삼는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다고 그들에게 농구나 배구를 기준 삼는다면 과연 공정한 걸까."

대뜸 공정성을 화두로 던졌다. 요즘 아이들에게 가장 민감한 게 공정성 여부다. 학교에서 뭘 배우고, 뭘 평가하든, 그 내용에는 별 관심이 없다. 같은 날, 같은 교실에서, 같은 시험을 치르고 난 뒤 산출된 점수와 등급만이 믿을 수 있다고 여긴다.

수행평가를 불신하는 것도 그래서다. 치르는 날짜도 다르고, 학급도 다른 데다, OMR 카드 리더기가 아닌 교사가 주관적으로 부여한 점수이니 공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 아이는 대안이랍시고, 교사는 가르치기만 하고, 평가는 컴퓨터에 맡기면 된다고 말했다.

한술 더 떠, 학생부종합전형이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것도 결국 컴퓨터가 아닌 사람이 평가하기 때문 아니냐고 반문했다. 심지어 류현진과 손흥민을 농구 실력으로 평가하는 건 안타까운 일이긴 해도 공정한 기준인 건 맞다고 했다. 공정이라는 말이 이토록 강퍅해졌다.

아이들은 일률적이고, 일괄적이며, 일제식 시험 방식에 대해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그런 방식이 아니면 공정성을 담보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지역별로, 학교별로, 과목별로, 교사별로 방식이 각기 다르다면, 그 결과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느냐는 거다.

코로나로 인해 대입 시험은 물론, 정부가 관장하는 자격시험 일체를 취소한 나라가 숱하다는 사실을 아이들은 충격적으로 받아들였다. 대입 시험을 교사의 평가로 대체하는 곳도 많다고 했더니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다. 우리 같으면 아마 내전이 벌어졌을 거라고 말했다.

대놓고 말하지 않았을 뿐, 학교와 교사를 신뢰할 수 없다는 뜻이다. 하마터면, 아이들 앞에서 믿지 못하겠다면서 굳이 학교는 왜 다니느냐고 다그칠 뻔했다. 이럴진대, 교육이 바로 서려면 평가권이 온전히 단위 학교의 교사에게 주어져야 한다는 말을 차마 꺼낼 순 없었다.

불안에 잠식당하는 아이들 

이 와중에 어디선가 쌔근쌔근 코 고는 소리가 들린다. 수업이고 토론이고 아무 관심이 없다는 듯 책상 위에 쓰러져 있는 아이들이 눈에 띈다. 기말고사가 끝났으니 할 일 다 했다는 모습이다. 곤히 잠든 그들도 어제까진 눈에 불을 켜고 시험을 준비했을 것이다.

시험 하나로 인생이 결정되지 않는다는 말에 아이들은 콧방귀를 뀐다. 그렇다면 전국 수백만 초중고 학생들이 수능 하나에 목맨 이유가 무엇인지 되묻는 짓궂은 아이도 있다. 토론은커녕 평행선만 달리다 끝종이 울렸다. 그들을 설득할 수도 없고, 설득한다고 바뀔 현실도 아니었다.

"친구들과 성적을 비교하며 일희일비하는 너희들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정작 비교 대상은 옆 짝꿍이 아니라, 어제의 자신이어야 한다. 타인과의 비교를 멈추지 않으면, 100점을 맞고 1등을 해도 불행을 벗어날 수 없다. 이로 인한 끝없는 불안은 치료하기 힘든 질병이다."

다음 차시 예고나 할 걸 괜한 이야기를 했나 보다. 아이들은 왜 자신들을 나무라느냐며 짐짓 불쾌해했다. 한 아이는 정작 시험 하나로 인생이 결정되는 세상을 어른들이 만들어놓고선, 애꿎은 아이들을 탓하는 건 비겁하다며 토를 달았다.

답답하고 막막하다. 우리 교육에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아이들조차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 함께 '돈키호테'가 되자고 말할 순 없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기에는 두려움이 너무 크다. 레밍 쥐의 처지일지언정 다 같이 벼랑 아래로 떨어지는 게 마음 편하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고 했다. 시험 결과에 연연하고 끊임없이 친구와 비교하면서, 아이들의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시나브로 퇴화하는 모양새다. 승자독식은 사회문제로 볼 게 아니라 공정에 부합한다는 한 아이의 주장이 지금도 귓가에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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