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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전 프랑스 영화, 이제서야 개봉하는 이유

[김성호의 씨네만세 289] 영화 <함께 있을 수 있다면>

등록|2020.12.21 13:50 수정|2020.12.21 13:50
홀로 산다는 건 무엇일까. 먹고 입을 것과 살 곳을 직접 마련하고, 닥쳐올 수 있는 모든 사건도 혼자 마주하는 것이다.

편할 지도 모른다. 애정이란 이름으로 주어지는 속박과 간섭을, 가족이기에 떠안아야하는 책임을 피할 수 있으니.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제 삶을 이끌어도 뭐라 할 사람이 없다. 얽매이지 않는 삶이라니, 가슴 뛰는 일이다.

쓸쓸할 수도 있다. 아파도 돌봐줄 이 없고, 슬퍼도 위로해줄 사람 없다. 그보다 불행한 건 즐겁고 기쁜 일을 함께 나눌 곳이 없다는 것이다. 함께 살지 않는 사이엔 나누기 어려운 감정이 분명히 있다. 허물없이 지내는 친구라도 제 일처럼 느끼기 어려운 사연이 있게 마련인 것이다.

같은 지붕 아래 뭉쳐 산다는 건 그래서 특별한 일이다. 끌로드 베리 감독의 <함께 있을 수 있다면>은 함께이길 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개인주의 라면 다른 어느 나라 못지않은 프랑스에서 이런 영화를 만들었다니 눈길이 절로 간다. 2004년 출간된 안나 가발다의 동명 소설은 40만부가 팔려 그해 프랑스 최고 인기작이 됐다.
 

▲ 영화 <함께 있을 수 있다면> 포스터 ⓒ 영화사 진진


뜬금 없는 식사초대, 거기서 모든 게 시작됐다

영화는 소설을 그대로 따왔다. 인물들은 서로에게 먼저 손을 내민다. 다른 사람 품으로 기꺼이 들어가고 그 과정에서 충돌하며 상처입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내어 줄 수 있는 걸 서로 나누다보니 혼자 있을 때보다 더 나은 삶이 펼쳐진다. 가끔은 더 피곤하기도 하지만.

등장인물은 크게 넷이다. <아멜리에>로 유명한 오드리 토투가 27살 화가지망생 카미유를 연기한다. 굳이 지망생이라고 표현하는 건 그림을 그려 밥벌이를 하진 못하기 때문이다. 카미유는 청소업체 직원이다. 밤마다 빈 사무실에서 쓸고 닦고 휴지통을 비우는 게 그녀의 일이다. 열심히 일하지만 벌이는 대단치 않다.

그런 그녀가 필리베르(로렝 스톡커 분)와 만난다. 추운 겨울날 아파트 입구 비밀번호를 계속 틀리고 선 필리베르에게 먼저 다가가 문을 열어준다. "오늘 저녁에 술을 너무 많이 마셨나봐요. 제 생일이었거든요"하고 필리베르가 말한다. 카미유는 "생일 축하해요"하고 답한다.

둘은 며칠 후 마트에서 마주친다. 치즈를 고르고 있던 필리베르에게 카미유가 다가가 말을 붙인다. "치즈만 먹어요?" "엄청 좋아하거든요." "안 그래도 저녁식사에 초대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만나니 반가워요." "저를요? 왜요?"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니에요, 편하게 소풍간다고 생각하면 돼요." "소... 소풍 좋지요, 피크닉 바구니도 가져가야겠네요."

영화도, 소설도 카미유의 제안으로부터 시작된다. 먼저 다가가 말을 걸고, 저녁식사에 초대하고, 저녁을 대접한 그녀의 제안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 영화 <함께 있을 수 있다면>의 한 장면. ⓒ 영화사 진진


특별할 것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

필리베르는 요리사 프랑크(기욤 까네 분)와 함께 산다. 아침 일찍부터 매일 자정까지 쉴 새 없이 일하는 프랑크는 2주에 고작 하루 쉬는 날을 할머니와 보내야 한다. 쓰러져 요양원에 입원한 할머니 입원비도 모두 프랑크의 몫이다.

할머니는 늙은 데다 몸까지 말썽을 부려 병원에 입원한 게 불만이다. 다시 퇴원해 마당에 식물을 기르고 닭과 고양이 밥을 주고 싶지만 더는 홀로 생활할 상황이 못돼서 괴롭다.

영화는 이들 네 사람이 서로 함께 살기까지의 이야기다. 우연과 필연이 거듭돼 이들은 만나고 함께 살며 서로의 부족함을 채운다. 그 과정에서 충돌과 분쟁도 없지 않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가까워지고 이해하며 나아가게 되는 보통의 이야기다.

가발다의 소설이 처음 출간됐을 때 그리 대단한 평가는 받지 못했다. 이야기 전체에서 특별한 사건이 없을뿐더러 플롯전개 역시 평범한 일들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함께 있을 수 있다면>은 42개국에서 400만부 넘게 팔린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품이 됐다.
 

▲ 영화 <함께 있을 수 있다면>의 한 장면. ⓒ 영화사 진진


1인 가구, 혼자이길 원해서일까

이유는 무엇일까. 소설이 출간된 2004년, 영화가 제작된 2007년, 프랑스는 1인 가구 비율이 30%를 막 넘어섰다. 수입이 없거나 적은 대학생과 청년들도 독립하는 비율이 급격히 늘었다.

2020년 한국은 10여 년 전 프랑스 상황과 매우 가까이 있다. 1인 가구는 2015년부터 2인 가구를 추월해 한국에서 가장 흔한 주거형태가 됐다. 올해 한국 1인 가구 비중은 역대 최초로 30%를 넘긴 것으로 분석된다. 2037년엔 최소 35% 이상이 1인 가구일 것으로 평가된다. 올해 프랑스 1인 가구 비중이 35% 내외다.

프랑스에서 소설과 영화가 인기몰이를 한 시점과 <함께 있을 수 있다면>이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올해 한국의 상황은 여러모로 유사하다. 독립한 1인 가구 청년들은 홀로서기만큼 관계맺기에 갈망을 느낀다.

각종 사회관계망 서비스가 활성화되고 영화와 책, 술과 음식을 매개로 월 십수만 원을 지불하며 유료모임을 갖는 사람도 늘어났다. 관련 업체가 십수 개에 이르고 개중엔 수십억대 투자까지 유치한 성공한 모델도 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에도 집 밖으로 뛰쳐나가 관계맺기에 열을 올리는 이들이 지탄을 받기도 한다. 쉽게 말하고 지나갈 수 있을 것이다. 철없는 젊은이들이 나라 전체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고.
  

▲ 영화 <함께 있을 수 있다면> 스틸 컷. <마농의 샘>과 <제르미날>의 연출자이자 <아스테릭스> <잠수종과 나비> 제작자로 유명한 클로드 베리가 숨지기 2년 전 직접 감독을 맡았다. ⓒ 영화사 진진

 
함께이길 원하는 모든 혼자들에게

하지만 언제나 이면이 있다. 어느 때보다 많은 1인 가구가 있고, 그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게 2030 청년층이다. 지난해 기준 통계에 잡힌 것만 208만 명이다. 이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영화 속 카미유처럼 독감에 걸려 괴로워할 때 누가 관심을 가져줄까. 필리베르처럼 정서적으로 불안할 땐, 프랑크처럼 삶이 팍팍할 땐 누가 도움을 주나.

2030 세대만의 일은 아니다. 프랑크의 할머니처럼 쓰러져도 아무도 알지 못해 시간이 흘러서야 발견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요리조리 살펴보아도 범작에 불과한 <함께 있을 수 있다면>이 프랑스에서 큰 인기를 구가한 이면에는 진정으로 함께 있길 갈망한 사람들의 욕구가 자리한다. 공동주택을 적극 보급하고 수입 없는 1인 가구주에게 주거비 지원까지 하는 프랑스에서 그랬다.

문득 궁금해진다. 2020년 한국인들은 이 영화를 보고 어떤 감상을 가질지.

혼자 산다는 건 고독하고 때로는 불행해지는 일이다. 그 모든 고독과 불행을 건너 함께 있기를 원하는 이들에게 이 영화를 전한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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