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 내 글쓰기의 수준은 어디쯤일까?
[에디터만 아는 TMI] 시민기자의 활동을 4단계로 나눠 보았다
오마이뉴스 라이프플러스 에디터만 아는 시민기자의, 시민기자에 의한, 시민기자를 위한 뉴스를 알려드립니다.[편집자말]
궁금한가? 궁금하다. 나도 그렇다. 누가 좀 시원하게 말해주면 좋겠는데... 그럴 사람이 주변에 없다. 시민기자 가운데는 기사를 쓰면 읽고 의견을 주는 동생이나, 남편이나 친구도 있던데 아쉽게도 나는 없다.
▲ 내 글쓰기(기사쓰기)의 수준은 어디쯤일까? ⓒ envato elements
아이디어는 오래 전 선배의 글에서 얻었다. 며칠 전 선배가 십수년 전(무려 2005년!) 사내게시판에 '시민기자 기사쓰기 5단계'라는 글을 써놓은 걸 우연히 보게 된 거다. 당시 편집기자였던 선배는 런114닷컴에서 '내 마라톤 수준은 어디쯤일까?'라는 칼럼을 읽고 비슷하게 따라 쓴 글이라고 했다.
오호라, 이게 뭐야? 구미다 당겼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글을 읽어 내려갔다. 선배는 시민기자를 '입문 단계→초보 단계→몰입 단계→도약 단계→성숙 단계'로 나누어 각각의 특징을 실감나게 묘사했다. 아래는 그 내용 가운데 지금도 유효한 내용들로 추린 것들이다(선배의 허락을 구하고 올린다). 편의상, 입문과 초보는 입문 단계로 합쳤다.
입문 단계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한번 써볼까? 하는 마음이 생긴다.
-다른 시민기자들이 올린 기사는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주로 생나무에 머물던 기사가 잉걸로 채택되기 시작하고, 댓글, 원고료 등에 관심이 높아지며, 그에 따라 계속 기사를 올릴지 여부를 판단하기도 한다.
-기사를 올린 후 심리적인 기쁨을 느끼고 약간씩 증폭된다.
몰입 단계
-기사 올리는 횟수가 늘어나고 글 쓰는 감각도 잡히기 시작한다.
-소재의 한계를 모르고 기사 쓰기에 몰두한다.
-메인면 주요 기사로 배치되거나, 독자의 자발적 원고료 등에 희열을 느끼며 자신감에 불탄다.
-처음엔 사는이야기를 주로 쓰다 사회, 정치 등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는 경향을 보인다.
도약 단계
-톱기사 배치나 원고료보다는 나 자신의 잠재능력이 어디까지인가를 확인하고자 한다.
-기사 배치와 흥미의 답보에 따른 슬럼프, 좌절의 가능성도 있으며, 간혹 일정 기간 잠적하거나 아예 오마이뉴스를 떠나기도 한다.
성숙 단계
-혼자 기사쓰는 기쁨에 충만한 자신을 발견한다.
-톱기사 배치가 아니라 기사 올리는 자체에 의미를 두고 그 일련의 과정을 즐긴다.
-원고료, 악성 댓글 등 일체의 소모성 논란으로부터 초연해진다.
선배가 쓴 글을 보자마자 그에 해당할 법한 시민기자 이름이 한 명씩 떠올랐다. 그들에게 '긴급 쪽지'를 보내 물었다. 지금 자신의 단계에서 증상이 어떠냐고.
내가 직접 그 단계를 논하는 것보다, 직접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 비슷한 위치의 시민기자들에게 더 공감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서로 이해하게 될 것 같아서다. 나와 같은 시민기자 동년배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기사를 쓰는지 알면 이곳이 조금은 친근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싶어서다.
▲ 시민기자 활동을 '입문 단계→몰입 단계→도약 단계→성숙 단계'로 나눠봤다. ⓒ envato elements
'입문 단계' 증상은 가입기간 1년 남짓한 남희한 시민기자가 보내주셨다.
- 내 글을 이렇게 많이 읽어 본 적이 없다.
- 이렇게 많은 '최종, 최종_최종, 최종_최종_진짜최종' 파일을 만든 적이 없다.
- 네이버 국어사전 서비스가 왜 있는지 이제야 알게 됐다.
- 분명 고백이 아닌데 누군가의 '좋아요'에 설레버린다.
- 아직 멀었음을 알지만 자꾸 글 욕심이 생긴다.
'몰입 단계' 증상은 역시 가입기간 1년 남짓이지만 올해 기사로 가장 많이 만난 장순심 시민기자가 보내주셨다.
- 메인면 오름 기사로 배치되면 당황스럽다. '이런 글이 올라가도 되나?' 생각한다.
- 오름 배치가 반복되면서 주요하게 올라가는 기사의 특징을 스스로 알게 된다.
- 매일 하루 두세 시간은 기사를 쓰는 데 소비한다.
- 자주 쓰는 만큼 소재 고갈을 항상 느끼기에 감이 올 때 바로 메모한다.
- 일상의 소재가 고갈되면 읽던 책이나, 영화를 가지고 쓰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 다른 시민기자 기사를 보며 소재를 발견하기도 한다. 찜해둔 시민기자를 보며 자극을 받아 더 열심히 쓰게 된다.
- 기사가 쌓이다 보니 조금 더 기사다운 기사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 무엇보다 가족이 시민기자 활동을 인정해주어 삶의 보람을 느낀다.
'도약 단계' 증상은 역시 가입기간 1년 남짓이지만 올해 '2월 22일상'을 받은 조영지 시민기자가 보내주셨다.
- 내가 쓰고 싶은 글과 원하는 기사의 틀 안에서 고뇌한다.
- 전문가들의 평과 심사에 민감해진다.
- 나의 잠재능력을 시험해보며 어디까지인지를 확인하고 싶어진다.
- 원고료보다 점진적 자기발전을 우선시 한다.
- 주요기사 채택 비율이 전성기보다 후퇴하기도 한다. 타 기사를 유심히 살펴보며 나의 기사와 비교 분석한다.
- 기사, 에세이, 인터뷰 등 장르를 아우를 수 있는 글들을 찾아보고 공부한다.
- 글쓰기의 기쁨과 슬픔을 이해하고 공유할 수 있는 동지를 찾기 시작한다.
- 신예보다, 노장들의 글들을 찾아 본다.
- 흥미의 답보에 따른 슬럼프, 좌절의 가능성도 있으며 잠적하기도 한다.
- 꾸준히는 쓰지만, 그게 '잘'로 이어지지 않아 주저앉기도 한다
- 개인적인 글쓰기에서 공적인 글쓰기로 시야와 관심사가 넓어진다.
이 구역의 최고봉 '성숙 단계' 증상은 가입한 지 20년차이자 '올해의 뉴스게릴라상'을 수상한 이봉렬 시민기자가 보내주셨다.
- 거리를 걷다가, 친구와 이야기하다가, 책을 읽다가, 뉴스를 보다가… 아무튼 이게 언젠가 기사로 쓸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되면 일단 메모를 한다.
- 그렇게 모은 단편적인 정보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직조하여 하나의 기사로 만드는 과정을 즐긴다.
- 좋은 기사가 된다는 확신이 들면 취재 과정에 시간이나 돈을 많이 써도 아깝지가 않다.
- 독자들의 댓글에서 옥석을 고를 줄 안다. 악플은 가볍게 넘기고, 조언은 고맙게 받아들인다.
- 톱기사 배치나 댓글, 조회수보다 공유 건수와 독자 원고료에 좀 더 마음이 간다. 독자의 마음을 얻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 기성언론의 기자들이 쓰지 않는 다양한 방식의 글쓰기를 시도해 보려 한다(인터뷰이가 혼자 말하는 방식의 인터뷰 기사, 독자들의 댓글에 답하는 방식의 부가 설명……)
- 기성언론의 기사를 읽으면서 그 속에 감춰 뒀을 이야기를 유추해 보는 취미가 생긴다.
보내주신 글을 보면서 15년 전에 선배가 적어놓은 글의 내용과 정확히 일치하진 않지만, 묘하게 겹치는 게 신기했다. 그런데 혹시 눈치 채셨는지? 어느 단계에 있는 시민기자든 이거 하나는 같았다는 걸. 바로 '성장하고 싶은 마음'이다.
'글 욕심이 생긴다', '조금 더 기사다운 기사를 쓰고 싶다', '개인적인 글쓰기에서 공적인 글쓰기로 관심사가 넒어진다', '기성언론의 기자들이 쓰지 않는 다양한 방식의 글쓰기를 시도해 보려고 한다'가 그 증거다. 지금보다 나아지고 싶다는 마음. 도전해 보고 싶은 시민기자들의 마음이 여러 번 읽혔다.
그들에게 <오마이뉴스>가 '샌드박스' 같은 곳이었으면 좋겠다. 아이가 그네를 타다 넘어져도 다치지 않도록 푹신한 모래를 깔아둔 아빠의 마음을 담아 만든 곳. '초기 스타트업 창업자들에게 위험 리스크를 줄여주는 지원을 통해 스타트업의 도전을 응원하는 역할'을 했던 드라마 <스타트업> 속 회사 샌드박스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입주사(시민기자)들의 좋은 멘토가 되어야 할 텐데... 과연 그럴 수 있을지. 2020년이 딱 이틀 남았다. 끝까지 '안전한' 연말 보내시길.
ps. 2020년 7월부터 매주 연재한 '에디터만 아는 TMI' 마지막 기사입니다. 읽어주시고 격려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