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물감이 아니라 색실로 그린 그림

김춘희 작가의 자수집 '춘희의 꿈 이야기, 색실로 그리다'

등록|2021.01.06 09:01 수정|2021.01.07 11:36
소띠해 첫날, 마치 연하장이라도 받는 느낌으로 오색 족두리에 연지를 찍은 고운 새색시 얼굴이 표지에 새겨진 책 한 권을 받았다. 책의 이름은 <춘희의 꿈 이야기, 색실로 그리다>다. 책 제목의 '색실로 그리다'라는 말처럼 이 책은 자수 작가 김춘희 씨가 한 땀 한 땀 수놓은 작품을 해설과 함께 책으로 엮은 것이다.
 

책 표지《춘희의 꿈 이야기, 색실로 그리다》책 표지 ⓒ 도서출판 토향


<춘희의 꿈 이야기, 색실로 그리다>는 각 자수 작품에 대해 한국어와 영어 그리고 일본어로 해설을 실었다. 나는 책이 나오기 전 도서출판 토향의 도다 이쿠코(戶田郁子) 대표의 부탁으로 한글 부분 교정을 본 터라 책을 받아 들고 남다른 기쁨을 느꼈다.
 
어느 날 어머니의 모습을 그리려고 연필을 들었는데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눈을 감고 조금씩 기억을 더듬어보니 십여 년 전 마지막으로 헤어질 때의 모습이 떠올랐다. 고우셨던 얼굴에 주름이 지고 수척해지신 모습이었다. 너무 소중한 추억이라 마음속에서 조용히 꺼내보면 가슴이 아파 저려올 때가 있다.(뒤 줄임) - 9쪽, 전통혼례 새색시

가끔 가을꽃들을 수놓다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랑 닮았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이제 막 피려고 하는 꽃망울과 활짝 피어 아름다움을 뽐내는 꽃들, 조금씩 시들어 가는 꽃잎들...(중략) 그래서 한 구도 안에 구절초의 생을 담아 보고 싶었다.(후략) - 29쪽, 꿀벌과 구절초

김춘희 작가의 땀과 정성과 혼이 밴 자수 작품 그리고 작품 해설을 위해 써 내려간 문학성 짙은 글을 읽으며 그가 단순한 '자수 기능'에만 능한 작가가 아님을 느꼈다. 그것은 <춘희의 꿈 이야기, 색실로 그리다>에 선보인 작품들이 잘 말해주고 있다. 봄(박각시나방과 매화꽃), 여름(무당벌레와 붓꽃) , 가을(꿀벌과 구절초), 겨울(동박새와 동백꽃)을 주제로 선정한 것부터 예사롭지 않다.
 

순간포착 동물자수 '순간포착' ⓒ 도서출판 토향


또한 고양이의 세밀한 털 한 올 한 올이 살아나는 순간포착(동물자수), 꽃바구니 시계(고재와 자수의 콜라보), 황금잉어도(자수와 그림의 콜라보), 고전과 현대의 어울림(핸드메이드 신), 시화-오줌싸개 지도(윤동주의 동시 이미지), 숭배(해바라기와 쑥부쟁이), 고려청자와 모란꽃(자수와 그림의 콜라보), 기다림(자수와 그림의 콜라보) 등의 작품도 하나하나 그 의미가 남다르다.
 
명주실은 거미줄보다 더 얇게 풀 수 있어서 원하는 굵기를 만들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빛의 반사가 강한 명주실의 특징을 살리기 위해 실을 풀고 다시 꽈주는 작업을 한다. 자수를 놓을 때 먼저 실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잘 알아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은 빛을 받았을 때 그 매력을 느낄 수 있는데, 때로는 그것이 장점이 되기도 하고 잘못 응용하면 단점이 되기도 한다. - 94쪽 명주실을 꼬는 방법에서

작품을 창작할 때 어떻게 하면 좀 더 입체적으로 표현 할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한다. 수를 놓다 보면 원근감이나 입체감을 표현할 때 실로만 가지고 표현하기에는 한계를 느낄 때가 있다. 그래서 근경 부분엔 수를 놓아 섬세한 표현을 하고, 원경 부분에서는 그림을 적절하게 그려 작품의 완성도를 올려보도록 시도해 보았다. - 105쪽 춘희의 작업노트에서

김춘희 작가는 물감이 아니라 색실로 그림을 그린다.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공예 영역을 벗어나 자수의 무한한 예술성을 가늠하게 한다. 특히 섬세하게 그려진 밑그림과 완성된 자수 작품을 대비해서 감상하면 색에 관한 깊은 탐구와 빛을 활용하는 탁월한 작가의 감각에 매료된다.
 

고려청자와 모란꽃자수 '고려청자와 모란꽃' ⓒ 도서출판 토향


그는 이번 책에서 작품에 임하는 자세, 제작 과정의 고민 등을 진솔하게 풀어낼 뿐 아니라 창작 과정을 공유할 수 있도록 실 꼬는 방법이라든지 작품 제작 과정을 자세히 설명해두고 있으며 아울러 정보 무늬(QR코드)를 통해 동영상 작업까지 볼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춘희의 꿈 이야기, 색실로 그리다>는 한국 자수가 앞으로 세계적으로 인정받았으면 하는 작가의 간절한 바람이 오롯이 담겨 있는 자수를 위한, 자수인을 위한, 자수를 꿈꾸는 사람을 위한 책이다.

김춘희 작가는 누구
열두 살부터 본격적으로 미술공부를 시작한 김춘희 작가는 북한 예술대학 미술학부에서 동양자수를 전공했고, 졸업한 뒤 북한 미술창작사에서 다년간 작가로 활동했다. 북한 국가미술전람회(국전)에 입상한 경력이 있으며 북한 국가미술가 자격증을 취득했다. 김춘희 작가는 10여 년 전 한국에 정착하여 동양자수 작가로 활동, 춘희의 '色실공방'을 운영 중이다. 2020년 6월, 서울에서 개인전 '춘희의 꿈 이야기'를 열면서 자수와 그림을 결합한 작품을 선보여 자수 작가뿐만 아니라 미술가들한테도 큰 호평을 받았다.
덧붙이는 글 <춘희의 꿈 이야기, 색실로 그리다> 도서출판 토향, 2021년 1월 출간, 28,000원
다음카페 : cafe.daum.net/lovelyjasu
인스타그램 : cunhyiyi (춘희의 色실공방)
우리문화신문에도 보냈습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