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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 시대, 얼굴을 마주하는 일의 의미

등록|2021.01.06 13:51 수정|2021.01.06 13:53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모임이 일상화된 요즘이다. 온라인으로나마 만날 수 있어 다행이다. 얼굴을 보지 않고 관계를 맺는 비정상적인 일이 어느새 익숙하고 당연한 게 되었다. '뉴 노멀(New normal)' 시대를 살았다.

지난 한 해 '365일 글쓰기'라는 모임을 통해 글을 썼다. 분기별로 오프라인 모임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코로나19로 무기한 연기되었다. 온라인 상의 카페에서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과 매일 글을 썼다. 온갖 속 이야기를 다 털어놓았다. 얼굴을 모른다는 게 부끄러움을 덜어주는 장치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났다.

한 해를 마치며 줌이라는 화상 미팅 앱을 통해 마지막 모임을 가졌다. 일 년 동안 글로만 보아왔던 선생님들의 얼굴을 비로소 마주했다. 글이라는 외형이 없는 이미지로만 떠올렸던 대상이다. 구름 덩어리 같은 이미지에 이름 석자만 적혀 있었다. 그런데 거기에 눈, 코, 입을 그리고 목소리를 얹을 수 있었다. 잊고 있던 배경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온라인을 부유하는 점들비대면시대, 다양한 온라인 모임이 활성화되었다. 우리는 인터넷이라는 망망대해에 외로이 떠 있는 무수한 점들 같다. ⓒ 김현진


내 글 쓰기에 바빠 다른 선생님들의 글을 많이 읽지도 못했다. 그래서 선생님들의 존재가 더 희미했는지도 모르겠다. 같이 쓰고 있었지만 각자가 섬처럼 떨어져 있었다. 멀리 있었고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선생님들의 얼굴을 보고 나자 글 위로 얼굴이 겹쳐졌다. 목소리가 더해졌다. 진작에 얼굴을 보았다면 어땠을까. 아쉬워졌다.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듣는 일은 생각보다 중요했다. 얼굴 없이 글을 보았기에 편견이나 오해없이 상대를 접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 또한 달의 한 면만 보는 일이었다. 얼굴을 보자 납작했던 글에 살이 붙고 피가 돌았다. 몸집이 생기고 온도가 느껴졌다. 글이 일어섰다.

화상 채팅이 가지는 한계도 있을 것이다. 미묘한 표정의 변화나 몸의 움직임, 들숨과 날숨의 크기 등 말의 뉘앙스를 좌우하는 지표는 읽을 수 없다. 또한 한 번이라는 일회적 만남이 만드는 오해와 편견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얼굴을 보았고,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제한된 인상만 얻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실체가 없는 대상을 얼마나 기억할 수 있을까? 글을 쓰는 이유도 생각에 실체를 만들기 위해서다. 실체가 없는 생각은 쉽게 사라진다. 생각이 글이 되어 모양새를 갖출 때 비로소 기억될 수 있다. 만남도 그렇지 않을까. 아무리 온라인을 통해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는다 해도 한 번 만나 실체를 확인하는 일만큼의 또렷함은 가질 수 없을 것 같다. 얼굴 없이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건 쉽지 않다.

줌 모임이 시작되자 선생님들의 얼굴이 하나 둘 모니터 위로 떠올랐다. 어느새 모니터를 가득 채웠다. 내 얼굴이 뜬 창 주변을 선생님들의 얼굴이 에워쌌다. 우리가 둥그렇게 둘러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점과 점을 이으면 선이 되고 선과 선을 이으면 면이 된다. 우리는 인터넷에 떠 있는 점들이었다. 이제는 원이 되었다.

일 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했지만 외떨어져 점처럼 존재했다. 무수한 점들에 묻혀 있는 배경이었다. 하지만 선을 그어 연결하자 점 하나, 하나가 더 분명하게 보였다. 원으로 묶이자 더 특별해 졌다. 그 자리, 그 빛깔을 기억하고 싶어 졌다. 얼굴을 본다는 것은 나와 너 사이에 선을 그어 연결하는 일이었다.

'조만간 얼굴 한 번 보자'라는 인사를 잊고 살았다. 얼굴을 못 보게 되자 안 보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온라인으로, 비대면으로 만날 수 있지만, '얼굴 한 번 봐요'라고 다시 말하고 싶어졌다.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들어야 더 생생해지는 게 있다. 온라인 상에 부유하는 점으로 떨어져 있지 말고, 선으로 연결되고 모양을 이루고 싶다. 존재한다는 희미한 기억이 아니라 얼굴과 목소리라는 실체로 누군가를 기억하고 싶다.

'365일 글쓰기'에서 만난 몇몇 선생님들과 글쓰기 모임을 지속하고 있다. 이제 그 얼굴과 목소리들이 글을 읽어줄 것이다. 그리움도 짙어질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개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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