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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동의청원이 왜 이래] 진정한 청원권 실현 위해선 정보접근권 보장 먼저

등록|2021.01.09 15:30 수정|2021.01.09 15:30
국민이라면 누구나 법안과 의견을 제안할 수 있도록 2020년 1월 도입된 국회 국민동의청원. 실제로 해보니 문턱은 높았습니다. 국민동의청원이 그 이름값을 할 수 있도록 시민단체들이 제도의 문제점을 공론화하고 개선 방안을 제안합니다. [편집자말]

▲ 여의도 국회의사당. ⓒ 권우성


현재의 청와대 국민청원은 2017년 8월 시작됐다. 헌법에 국민의 기본권으로서 청원권이 명시되어 있으며 청원법 등 법적 제도도 구비돼 있었지만, 국민들이 본격적으로 청원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이때부터라고 볼 수 있다.

국민청원이 이렇게 많은 관심을 받게 된 것은 온라인을 활용하며 청원의 문턱이 대폭 낮춰졌다는 점이 크게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기존 오프라인 청원제도는 정부의 반응을 거의 알 수 없는 단방향 청원이었지만, 전자청원에서는 직접 글을 올리거나 SNS 등을 통해 퍼트리는 등 온라인 행동으로 실질적으로 정책에 영향을 줄 수도 있게 되었다. 때문에 청와대 국민청원은 하나의 공론장으로 기능하며 의제 형성에 있어 중요한 축이 됐다.

이에 국회에 입법을 청원하는 국회청원 역시 지난해부터 '국민동의청원제도'로서 전자시스템을 도입한 바 있다. 국회청원은 그간 국회법에 '국회의원의 소개를 받아 문서로 작성한 청원서를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어 제도의 문턱이 높고 또 권한도 필요했다. 이를 개선해달라는 요구가 빗발치자 지난해 4월 국회가 조항을 신설하며 기존의 국회의원 소개 청원제도는 그대로 유지하되 전자청원이라는 새 도구가 생겨난 것이다.

정보접근권, 헌법에서 보장하는 기본권

국민청원은 20만 명 이상이 동의해 청원이 성립되면 정부 관계자가 답변하는 것으로 처리가 완료되지만, 국민동의청원은 10만 명 이상이 동의해 청원이 성립되면 국회가 이를 소관 상임위원회에 회부해 심사할 의무가 발생한다. 이후 본회의에 상정된다면 입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따로 법적 근거 없이 행정부가 주축이 돼 운영하는 국민청원보다 법적 근거를 두고 입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국민동의청원이 효력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국민들이 의제 형성의 한 주체로서 적극적으로 정책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인 셈이다.

때문에 국민동의청원이 실질적인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정보인권의 한 갈래인 '정보접근권'의 보장이 전제돼야 한다. 이는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기본권이기도 하다. 정보접근권이란 누구든지 자기 의사를 표현하기 위해 미디어 등으로 제공되는 정보에 접근해 이를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하며, 국민이 민주적 결정 과정의 한 축으로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데 그 의의가 있다.

따라서 누구든지 국민동의청원에 참여해 입법을 위한 의견을 낼 수 있어야 하며 이 과정에서 어떠한 차별이나 어려움이 있어서는 안 된다.

모두에게 동등한 권리가 돼야

앞서 말했듯이 입법을 위해 국회에 할 수 있는 청원은 국회의원 소개 청원 및 국민동의청원 두 가지뿐이다. 하지만 국민동의청원은 오직 국회 홈페이지를 통해서만 접수가 가능하다. 만일 여러 사정으로 홈페이지를 이용하지 못해 문서로만 청원할 수 있다면, 다시 국회의원의 소개를 거쳐 오프라인 청원 접수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청원 접수뿐 아니라 청원이 성립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인 '동의' 역시도 오직 온라인으로만 가능하다. 청원에 동의 의사를 표시하기 위해서는 국회 홈페이지에 회원가입해 로그인하거나 휴대전화 또는 아이핀(I-PIN)을 이용한 본인인증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국회 홈페이지에 가입하려면 또다시 휴대전화 또는 아이핀을 이용한 본인인증을 거쳐야 하고, 아이핀을 발급받기 위해서는 휴대전화 또는 범용 공인인증서로 다시 본인인증을 해야 한다.
     

▲ 국회 홈페이지의 본인확인 페이지 ⓒ 국회 홈페이지

   
결국 현재 해외에 거주 중인 재외국민이거나 모종의 사유로 본인 명의 휴대전화가 없는 경우 등은 국민동의청원에 참여할 수 있는 수단이 없는 것이다. 또한 개인정보 보호를 명목으로 주민등록번호를 사용하지 않는 인증방식을 사용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한국은 휴대전화를 개통하려면 성명과 주민등록번호 정보가 반드시 필요한 휴대전화 실명제가 실행 중이므로 이러한 본인인증 절차는 통신사를 한 단계 거칠 뿐, 개인정보 수집으로 이어지는 것은 마찬가지다.

최근 '인증 방법을 보다 다양하게 마련해야 한다'는 취지로 공인인증서가 폐지 수순을 밟은 바 있다. 통계를 살펴보면 전자서명법 등에 공인인증서나 휴대전화 인증을 의무화한 규정이 없는데도 금융거래 90% 이상이 공인인증서를 사용하고 있으며 본인확인은 통신사 비중이 98%에 달한다. 당장 국회 홈페이지만 봐도 통신사를 이용한 본인인증을 강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다양한 인증 방법을 마련해야만 국민이 각자 사정에 맞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어 일부 계층이 소외되는 일이 없어진다. 동시에 업계에서도 경쟁을 통해 더욱 안전하고 편리한 인증 방법을 개발해 낼 것이다.

청원 문턱 낮추고 참여 기회 확대해야

휴대전화나 공인인증서가 있다 해도 모바일 또는 PC 환경에 익숙하지 못한 노령층이나 세밀한 조작이 어려운 장애인 등 디지털 소외계층은 자신의 의사를 표시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자신의 의사를 입법부에 전달하는 데 이렇듯 큰 장벽을 느낀다면 이는 차별이다. 모두가 능숙하게 홈페이지 가입 또는 본인인증 단계를 거쳐 동의 의사를 표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이 아닐 수 없다.

전자청원제도 도입 당시 국회는 '국민의 입법 참여의 기회를 확대하고 청원권의 실질적 보장에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 효과를 밝힌 바 있다. 이전의 국회의원 소개를 통한 청원보다는 참여 기회가 확대된 것은 맞다. 하지만 이전의 방식으로는 참여가 너무 제한돼 있었기에 언젠가는 반드시 개선돼야 했다. 지난해 한 차례 개선이 있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모든 국민이 쉽게 참여할 수 있는 방식이 아님을 국회가 인지하고,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필자는 진보네트워크센터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진보네트워크센터는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개방적 인터넷을 지지하며 검열과 감시에 맞서 정보인권을 지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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