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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연예대상 김종국의 시작은 '레전드 듀오'

[응답하라 1990년대] 순위 프로그램 85관왕에 빛나는 전설의 댄스그룹 터보

등록|2021.01.09 11:35 수정|2021.01.09 11:35
작년 SBS 연예대상에서 백종원,유재석,신동엽 등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대상을 수상한 김종국은 대한민국 연예계에서 보기 드문 인물이다. 김종국은 지난 2001년 1집 <남자니까>로 솔로데뷔한 김종국은 2004년 2집 <한 남자>가 대히트하면서 솔로가수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2005년 <제자리 걸음>과 <사랑스러워>,<별,바람,햇살 그리고 사랑>이 수록된 3집 앨범을 통해 지상파 3사 <가요대상>의 대상을 휩쓰는 기염을 토했다.

예능인으로서도 김종국의 행보는 매우 눈부셨다. <출발 드림팀>처럼 몸을 쓰는 예능에서 빛을 보기 시작한 김종국은 2004년 <X맨을 찾아라>에서 윤은혜와 러브라인을 형성하며 주목을 받았다. 2008년 <패밀리가 떴다>를 거친 김종국은 2010년부터 <런닝맨>의 고정 멤버로 10년 넘게 활약하며 2020년 SBS 연예대상을 차지했다. 대한민국 연예계에서 가요대상과 연예대상을 모두 차지한 인물은 이효리와 김종국 뿐이다.

김종국은 <제 자리 걸음>으로 15관왕,<한 남자>로 10관왕을 차지하는 등 솔로활동을 하면서 순위프로그램에서만 무려 39번이나 1위 트로피를 차지했다. 하지만 김종국의 화려한 솔로 커리어도 김종국의 오늘을 있게 한 이 그룹의 전성기 만큼 대단하진 않았다. 6장의 앨범을 통해 지상파와 케이블 순위 프로그램을 합쳐 무려 85회의 1위 트로피를 휩쓸었던 '전설의 댄스 듀오' 터보 이야기다.

트리플 히트로 가요계 휘몰아친 터보의 데뷔 앨범
 

▲ 터보는 데뷔하자마자 김정남의 현란한 각기춤을 앞세워 듀스를 잇는 댄스듀오로 큰 사랑을 받았다. ⓒ 오감엔터테인먼트


지금이야 터보가 듀오로만 알려졌지만 사실 터보는 3인조로 데뷔를 준비하고 있었다. 당시 그 노래 잘하는 김종국을 서브보컬로 밀어내고 터보의 메인보컬을 차지했던 멤버가 바로 인디고 멤버이자 지금은 연기자로 활동하는 곽승남이다. 실제로 지난 2016년 인디고의 멤버로 <슈가맨>에 출연했던 곽승남은 김종국에게 "종국아, 거기가 내 자리였을 수도 있었어"라는 의미심장한(?) 영상편지를 남기기도 했다.

곽승남 탈퇴 후 듀오가 된 터보는 1995년 7월 1집을 발표하며 데뷔했다. 앨범 제목은 '280km/h Speed'. 시속 280km까지 밟으려는 걸 보니 직업이 카레이서인 사람이 앨범 제목을 지은 모양이다. 앨범 제목답게 터보 1집은 빠른 비트의 댄스곡들 위주로 채워져 있다. 당시 떠오르던 신예 작곡가인 주영훈이 전체 프로듀싱을 맡으며 15개의 트랙 중 <소유할 수 없는 사랑>(김창환 작곡)과 리메이크곡 <검은 고양이>를 제외한 13곡을 직접 작곡했다.

타이틀곡은 2번 트랙 <나 어릴 적 꿈>. 그리 길지 않은 분량을 차지하는 두 번의 랩 소절을 제외하면 노래 대부분을 보컬 김종국이 부른다. 하지만 터보가 처음 등장했을 때 남학생들을 중심으로 인기를 독차지했던 멤버는 래퍼이자 메인댄서 김정남이었다. 김정남은 <나 어릴 적 꿈>을 통해 당시만 해도 마이클 잭슨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각기춤'을 현란하게 선보이면서 보는 이들을 경악시켰다.

실제로 그 시절 남학교에서는 쉬는 시간마다 김정남의 각기춤을 따라 하겠다는 남학생들의 몸부림 때문에 교실이 아수라장이 되곤 했다. 물론 정식 댄스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학생들이 김정남의 고난이도 춤을 제대로 따라 할 리 만무했다. <토토가>에서 하하가 "이 형은 왼쪽 손가락에서 오른쪽 손가락까지 관절이 280번 꺾인다던 설이 있다"는 발언은 실제 그 시절 입소문처럼 전해지던 김정남의 '전설'이었다.

김정남의 각기춤을 따라하던 남학생들의 집단 탈골이 걱정될 즈음 터보는 <검은 고양이>를 후속곡으로 들고 나왔다. 이 곡은 이탈리아 동요 <검은 고양이가 갖고 싶었어>가 원곡으로 1970년 박혜령 어린이(물론 지금은 어린이가 아니겠지만)가 불러 인기를 끈 곡이다. 하지만 세월이 흐른 오늘날 <검은 거양이>는 터보의 히트곡으로 기억된다. 김정남이 <나 어릴 적 꿈>의 터프함을 버리고 깜찍한 랩을 시도해 눈길을 끌었다.

터보는 1집의 세 번째곡 <선택>까지 히트시키면서 가요계에 돌풍을 일으켰다. 실제로 터보는 1집 앨범에서 <나 어릴 적 꿈>과 <검은 고양이>,<선택>이 모두 순위프로그램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아이돌그룹은 투투나 노이즈처럼 1집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었던 팀들이 2집에서 슬럼프에 빠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터보에게 1집의 인기는 1996년8월에 발표한 2집 <NEW  SENSATION>의 메가히트를 위한 도화선에 불과했다.

터보의 음악적 확장과 김정남의 쓸쓸한 마지막
 

▲ 터보는 2집 앨범을 통해 120만 장이 넘는 판매량을 기록하며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 오감엔터테인먼트


터보 2집은 터보엔진을 달고 마구 폭주하는 느낌을 주던 1집과 달리 가볍고 흥겨운 댄스곡부터 재즈 선율이 흐르는 슬픈 발라드까지 적절히 조화를 이룬 강약조절이 돋보이는 앨범이다. 야구로 비유하자면 루키 시즌에 불 같은 강속구를 앞세워 타자를 힘으로 제압하던 투수가 2년 차 시즌에 변화구를 익혀 타자를 속이는 요령을 터득해 더 상대하기 힘든 투수로 거듭났다고 할까.

타이틀곡은 1집의 프로듀서 주영훈이 작곡한 <트위스트킹>이었다. 도입부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랩이 매우 인상적인데 무대에서는 김정남이 립싱크로 처리했지만 실제 이 랩의 주인공은 바비킴이었다(바비킴이 지금은 실력파 보컬리스트로 유명하지만 당시만 해도 닥터레게 출신의 무명래퍼였다). <트위스트킹> 역시 김종국이 노래 대부분을 소화하지만 김정남은 그나마 자신의 분량이 많아서 좋아하는 노래라고 밝힌 바 있다.

타이틀곡 <트위스트킹> 만큼 사랑 받은 역시 <Love Is…(3+3=0)>였다. 이 노래는 3집의 <금지된 장난>, 4집의 <X>로 이어지는 터보 특유의 애절한 사연이 담긴 '스토리 댄스곡'의 시작을 알리는 노래다. 짝사랑하는 여자를 두고 군대를 간 남자가 가장 친한 친구에게 그 여자를 빼앗긴다는 기구한 내용의 노래다. 더욱 찌질한 사실은 가사 속 남자가 친구에게 배신(?)을 당하고도 그 여자를 지켜볼 수 있어 다행이라고 자위한다는 것이다.

포지션의 안정훈이 작곡한 5번 트랙 <어느 째즈바>는 남학생들을 중심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애절한 발라드 곡이다. '모기 창법'으로 불리는 김종국의 보컬이 돋보이는 <어느 째즈바>는 그 시절 노래 좀 한다는 남학생들 사이에서는 B612의 <나만의 그대 모습>과 함께 가창력을 과시하는 곡으로 애용되곤 했다. 물론 노래방에서 겁도 없이 키를 낮추지 않고 불렀다가 낭패를 본 피해자들이 대거 속출했다.

이 밖에도 <Love Is…(3+3=0)>를 만든 이승호-윤일상 콤비의 <노스트라다무스(사랑의 예언)>나 <바람의 철학>, 유정연이 만든 <상처> 등도 크게 알려지진 않았지만 터보2집을 빛낸 명곡이다. 10번 트랙 <하늘만큼 땅만큼>은 김정남과 김종국이 직접 작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코로나19가 끝나면 전국의 수 많은 술집에서 퍼져 나올 <생일축하곡>도 터보 2집에 실려 있다.

터보는 2집 앨범을 통해 <트위스트킹>으로 14회 1위, <Love Is...>로 10회 1위, <어느 째즈바>로 1회 1위를 차지하며 순위 프로그램 25관왕이라는 기염을 토했다. 이는 <Love Is...>가 KBS <가요톱텐>에서 무관에 그치면서 만들어 낸 기록이다. 터보 2집은 무려 120만장의 판매량을 기록하며 터보를 가요계 최고의 댄스듀오로 만들었다. 하지만 터보 2집은 원년멤버 김정남과 김종국이 만들고 활동한 마지막 앨범이 되고 말았다.

2015년 3인조로 재결합, 여전히 뜨거운 터보 에너지
 

▲ 터보는 어느덧 <불후의 명곡>에 전설로 출연할 만큼 레전드 그룹으로 인정 받고 있다. ⓒ KBS 화면 캡처


터보는 영혼의 듀오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완벽한 팀워크를 자랑했지만 1997년에 발표된 3집에서는 래퍼 김정남의 이름을 찾을 수 없었다. <토토가>에서는 식당에서 사이드메뉴를 시켰다가 회사와 갈등을 빚고 도주했다고 가볍게 말했지만 김정남이 최고의 인기를 달리던 터보에서 돌연 탈퇴하기까지는 말 못할 사연이 있었다. 떠난 김정남에게도 끝까지 터보를 지킨 김종국에게도 그 때의 이야기는 상처로 남아 있다.

하지만 터보는 김정남 탈퇴 후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재미교포 출신의 래퍼 마이키를 새 멤버로 영입한 터보는 3집 <굿바이 에스터데이>와 <회상>,<금지된 장난>, 4집 <애인이 생겼어요>와 <X>,<스키장에서> 등을 연속으로 히트시켰다. 터보는 1집부터 4집까지 무려 4장의 앨범에서 연속으로 각 앨범마다 3곡씩 순위 프로그램 1위를 차지했다. 이는 서태지와 아이들이나 H.O.T도 갖지 못한 대기록이다.

2000년 5집 앨범을 끝으로 해체된 터보는 지난 2014년 겨울을 수놓은 <토토가>를 통해 원년 멤버 김정남과 김종국이 뭉치면서 팬들을 열광시켰다. 그리고 터보는 지난 2015년 12월 김정남,김종국,마이키로 구성된 3인조로 재결합해 정규앨범을 발표했고 타이틀곡 <다시>로 SBS <인기가요>에서 1위를 차지하며 건재를 과시했다(터보의 재결합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유재석은 인트로 내레이션으로 참여했다).

2016년 서울과 부산에서 재결합 기념 콘서트를 열었던 터보는 2017년 서울과 대구,성남,대전을 돌며 소극장 콘서트를 열어 팬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터보는 지난 2017년 미니앨범 <뜨거운 설탕> 이후 다시 활동이 뜸해졌지만 작년 여름엔 김정남과 김종국이 <불후의 명곡>에 출연해 <Love Is>와 <Twist King>을 부르기도 했다. 어느덧 맏형 김정남이 50대가 됐지만 터보는 여전히 많은 대중들에게 에너지 넘치는 댄스그룹으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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