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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문제와 인간의 이기심에 경종을 울리고파"

[리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0 창작산실 무용작 '플라스틱 버드'

등록|2021.01.11 09:20 수정|2022.02.04 22:22
태평양의 미드웨이 섬에 사는 '알바트로스'라는 새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새하얀 털과 검은 눈망울을 가진 3미터가 넘는 이 거대한 새는 3년 전, 화제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졌다.

당시 국내에는 개봉되지 못했지만, 환경단체를 통해 끊임없이 입소문을 탔던 크리스 조던이 찍은 동명의 영화. 무엇보다 충격을 받은 것은 배고픈 제 새끼에게 플라스틱을 먹인 어미 새의 모습이다.

8년의 추적 끝에 촬영을 마친 이 영화는 결국 뱃속에 플라스틱이 가득 차서 죽어가는 알바트로스의 모습이 낱낱이 공개됐다. 어린 새끼의 사체를 통해서 감독은, 더불어 인간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Where do we come from? What we are? Where are we going?"

야성적인 색채와 이국적인 표현기법으로 20세기 미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프랑스 후기인상파 화가 '폴 고갱'(Paul Gauguin, 1848~1903)의 대표작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1896)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2작품은 코로나19의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아르코예술극장뿐 아니라 네이버 티비를 통해서 동시에 생중계됐다. ⓒ 이규승


크리스 조던은 왜 죽어야 하는지 모르는 알바트로스와 달리 너무도 잘 아는 절망스러운 현실을 직시할 용기가 있는지 되묻는다. 지구의 환경 문제와 이기적인 인간이 품은 오만에 경종을 울리려 했던 다큐멘터리. 또 영화의 한 장면에서 출발해 오는 9~10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펼쳐진 무용 <플라스틱 버드>(Plastic Bird)는 우리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플라스틱 버드>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020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신작' 중 무용 부문에 선정된 작품이다. 특히 예년보다 올해는 동시대에 질문을 던지는 것들이 많이 보이는데, 필자는 이들 중 <플라스틱 버드>가 단연 으뜸이라고 말하고 싶다. 어떻게 보면 자연을 무참하게 짓밟은 인간에게 경고장을 던지려 했던 안무가의 의도가 무용수의 몸짓을 통해 무대화된 것이다.

"무너진 삶을 어떻게 다시 살려야 할지 고민했어요. 그리고 땅에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날지 못하는 새들이 자유를 찾아가고 싶은 희망을 담았습니다." (최지연 안무가)
 

공연 제목에서 언급된 '플라스틱'은 무엇을 상징할까. 이 질문에 최 안무가는 '인간이 다른 생명체에 비해 우월해지면서 생기는 비극'이라 강조했다. 장면이 거듭될수록 공연의 매력은 무용수로 집중된다. 여러 새의 이미지를 표현하고, 인간이 되고 다시 새가 되는 과정을 표현한 종합예술이라 요약하고 싶다.

필자는 무용을 보았지만 웬만한 작품보다 강렬한 무언가를 가슴에 되새겼다. 1시간 넘게 이어진 생중계 게시판엔 뜨거운 반응이 멈추지 않았다. 공연이 이어지는 내내 무용이 줄 수 있는 감동의 한계를 넘어섰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무대에서 사용된 여러 장치와 음악은 그동안 볼 수 없었던 무용의 경계를 뛰어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7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0 공연예술창작산실 무용 부문에 선정된 <플라스틱 버드>의 공연 장면(라이브 생중계 캡처) ⓒ 이규승


#1. 암전된 무대 위에선 날 수 있었으나 지금은 날지 못하는 새가 등장한다. 자유를 찾아 날고 싶은 마음을 담아 처절하게 몸부림을 쳐보지만 양 날개를 묶은 긴 줄 때문에 제자리를 맴돌 뿐이다. 구속된 새들 사이로 다양한 훼방꾼들이 주위를 서성거린다. 거칠어지는 숨소리와 심장을 죄어오는 음악은 새들의 절규를 더욱 고립시킨다.
 

8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0 공연예술창작산실 무용 부문에 선정된 <플라스틱 버드>의 공연 장면(라이브 생중계 캡처) ⓒ 이규승


#2. 붉은 머리의 새들의 움직임을 상당히 제한됐다. 무언가에 이끌리는 군무는 마치 한국 춤의 뿌리를 잊지 않으려는 안무가의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우리 고유의 손짓이 현대 무용가들에 의해 완벽하게 재현됐다. 그것은 장르와 시간의 경계가 따로 정해지지 않아 보인다. 날고 싶은 새를 위한 무대 연출은 그동안 현대무용에서 볼 수 없었던 색다른 시도를 강행했다. 갇힌 느낌을 더하기 위해 쇠창살 같은 배경은 보는 이의 마음마저 갑갑하게 만든다. 더구나 날고 싶은 새의 욕망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다리를 활용한 것은 연극을 보는 느낌마저 들었다.
 

12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0 공연예술창작산실 무용 부문에 선정된 <플라스틱 버드>의 공연 장면(라이브 생중계 캡처) ⓒ 이규승


이번 공연의 백미를 꼽자면 단언컨대 다양한 새의 모습을 형상화한 무용수들에 있다. 장면이 변할 때마다 등장하는 새로운 무대장치와 긴장감을 배가시키는 배경음악은 서로 다른 7편의 드라마를 옴니버스로 엮은 것처럼 보였다.

수많은 새는 쉬지 않고 공허한 날개짓을 비벼댄다. 무대에 널브러진 형형색색 쓰레기들. 무용수들이 하나둘씩 쓰레기를 제 몸에 걸치자 그들은 뒤엉켜 서로를 잡아당긴다. 이내 더 움직이지 못할 정도에 이르자 현장은 아비규환을 방불케 한다.

<플라스틱 버드>는 '슬픔과 자유'(프롤로그), '바람'(에필로그) 사이에 '눈물', '돌풍', '회상', '비자발적 신체 현대인들의 편의적인 삶, 욕망', '현대인들의 역습', '죽음', '구원' 등 7장의 에피소드가 이어졌다. 고통 대신 안온을 선택하여 강제로 날개를 퇴화시킨 인간. 평안한 삶을 보장받았지만, 그 끝에는 내칠 수 없는 욕망의 유혹이 도사리고 있다. 그 두 개는 인간의 삶 속에서 공존할 수 없으며, 어디에 무게를 두어야 할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무용.

"우리는 과연 지금 현실을 마주할 용기가 있는가?"
"그리고 우리와 우리의 미래를 변화시킬 만큼 깊이 느끼고 있는가?"
"깊이 공감하고 스스로 변화하여 우리의 미래를 바꾸고 싶은가?"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던졌던 크리스 조던의 이 질문들은 무용뿐 아니라 연극적 기법에서도 뛰어난 감각을 자랑했던 최지연 안무가의 손을 더해 완성도를 높였다. 그는 이미 한국 창작품의 대표적 산실인 '창무회'의 예술감독으로 활동했으며, 한국 춤을 근간으로 삼되 전형성을 탈피한 춤동작으로 우리 춤의 새로운 문법을 제시해왔다.

또한 남편인 배우 손병호와 함께 극단 ZIZ를 운영하면서 연기적 표현의 메소드를 연구해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새로운 움직임을 탐구했다. 이 때문이었는지 최 안무가의 작품은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드라마틱한 미장센(무대 연출)을 더해 보는 이의 심금을 울릴 것이다.
덧붙이는 글 본 글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0공연예술창작산실 온라인 웹진에 동시에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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