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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강아지를 풀어놓은 남자, 잊지 못할 한마디

[박도의 치악산 일기] 제3화 안과에서 마주한 1인 가구 시대의 한 단면

등록|2021.02.03 15:32 수정|2021.02.28 13:24
며칠 전 아침, 잠에서 깨어나자 눈꺼풀이 찝찝했다. 눈이 아프면 신체 다른 어느 부분보다 불편하고 치명적이기에, 아침을 먹은 뒤 한 안과로 갔다. 이른 시간인데도 접수실에는 대기 환자들이 많았다. 나도 접수를 한 뒤 그들 틈에 끼어 진료 순번을 기다렸다. 잠시 후 내 또래의 농사꾼 차림의 한 분이 어깨에 가방을 멘 채 접수실로 들어왔다.

그는 실내로 들어오자마자 어깨에 멘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은 뒤 가방의 지퍼를 열어젖혔다. 그러자 강아지 한 마리가 거기서 불쑥 튀어나왔다. 그 순간 그분의 행동을 주의 깊게 바라보던 대기 환자들이 일제히 한마디씩 했다.

"할아버지, 여긴 병원이에요."

접수를 보던 간호사도 할아버지에게 한마디 했다.

"할아버지, 여기다 개를 풀어놓으시면 안 돼요."

그러자 그 할아버지는 좀 창피하고 미안했는지 닫은 가방 지퍼를 다시 열고 개에게 말했다.

"얘, 어서 들어가."

그 강아지는 그대로 가방으로 얼른 들어갔다. 그러자 지퍼로 반 이상 잠근 뒤 그 할아버지는 대기실 환자들과 간호사를 번갈아 바라보면서 한마디 했다.

"댁들은 개로 보이지만 나에겐 마누라요, 손주요."

그런 뒤 그 노인은 대기실에 그대로 있기에 겸연쩍은 듯 다시 가방을 어깨에 멘 채 곧 병원을 훌쩍 떠났다.

잠시 후 내 진료 차례가 왔다. 의사는 평소 눈을 무리하게 쓴 데 따른 염증이라고 처방하면서 안약을 넣고 가끔 눈을 쉬게 하라고 조언했다. 나는 당뇨 망막증과 같은 큰 병이 아닐까 하여 숨을 죽였는데 그냥 안구 염증이라 하여 '휴' 긴 숨을 뱉았다. 간호사가 건네는 처방전을 들고서 1층 약국에 가서 안약을 받은 뒤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돌아오면서도, 그 뒤로도 "댁들은 개로 보이지만 나에겐 마누라요, 손주요"라는 그 노인 말이 남의 말 같지 않게 들려왔다.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1인 가구시대

내가 강원 산골마을로 내려온 뒤 이웃을 살펴보자 주민 대부분 노인이었다. 젊은이나 어린 아이들은 거의 없었다. 한 이웃은 갓난아이 기저귀를 빨랫줄에서 본 지 10년은 더 된 듯하다는 말도 했다. 하기는 요즘 아기 출산도 드물지만 이 산골에서도 재래의 기저귀를 사용하는 집이 없는 탓도 있을 테다.

내가 살았던 마을 들머리에 안흥중고등학교가 있었다. 어느 해 여름방학 때 국어교사가 강습을 가는 바람에 대체 교사를 구한다면서 나에게 그 요청이 왔다. 마침 별다른 일도 없고 모처럼 백묵도 잡아 보고파 그 요청에 응했다.

학교로 출근, 수업에 임하자 각 학년 학생은 10~15명으로 수업 분위기도, 학생들의 집중도도 매우 높았다. 그 무렵은 전교생이 50여 명 정도였는데, 한때는 300여 명이었단다. 안흥에 여러 해 살면서 횡성군 일대를 두루 살펴본바, 시골 초등학교 가운데는 취학 학생들이 없어서 폐교가 된 곳이 여럿이었다.
  

▲ 횡성군 강림면의 한 초등학교가 도자기공예연구소로 변모했다. 오른쪽은 도자기 가마 터다. ⓒ 박도


농기구의 기계화로 이즈음은 한 농사꾼이 무려 200여 마지기 이상 농토를 영농한단다. 그러자 남아도는 젊은 농사꾼들이 새로운 직장을 구하고자 도시로 떠나고, 조금 여유 있는 농촌 집 아이들은 도시에서 교육을 받고자 엄마와 시골을 떠난다. 그리하여 이즈음 시골은 늙은이들이나 남정네들만 남아 있는 현실이다.

마을사람 대부분 노부부가 살거나 배우자를 잃은 외톨이 독거노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자 그분들은 말동무라도 하고자 개나 고양이를 기르나 보다. 시골뿐 아니라, 도시도 비결혼 저출산 등의 요인으로 1인 가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그러자 반려동물 가게가 호황기를 누리나 보다.

개발, 개발... 개발만이 살길이라고 외치던 때가 엊그제 같다. 그 개발의 끝은 썰렁한 시골과 텅 빈 집, 그리고 1인 독거노인 세상으로 도래한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소득이 높아졌다고 행복한 세상이 되는 건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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