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으로 먹고살기 힘들어 물려받은 방앗간, 지금은...
지리산함양시장 사과나무떡집 김정섭·김현옥 부녀
▲ 사과나무떡집 김정섭·김현옥 부녀 ⓒ 주간함양
경남 지리산함양시장 안에 "새로 생긴 가계인가?" 싶은 가게가 있다. 이름은 '사과나무떡집'. 상호가 바뀌어 새로 생겼다 할 수 있겠으나 이곳은 1962년부터 내려온 긴 역사를 갖고 있다.
정연관·김현옥 부부가 운영하는 '사과나무떡집'은 현옥씨의 친정부모님이신 김정섭(84)·이막달(81)씨가 해 오던 '삼성떡방앗간'을 물려받은 것이다. 새로운 기계를 들이고 현옥씨가 서울에서 떡 만드는 기술을 익혀 와서 새 단장을 한 지 2년여가 되어간다.
"지금도 어머니 아버지 안부를 물어보시는 손님이 많으시죠. 그래서 부모님이 가게에 함께 나와 계실 때가 많아요."
부모님은 사위와 딸에게 평생의 노하우를 전수하고도 짬짬이 일손을 보태준다.
▲ 김정섭 어르신 ⓒ 주간함양
김정섭 어르신은 '사과나무떡집' 이전인 '삼성떡방앗간'의 첫 역사를 들춰냈다.
"당시에는 삼성기름집이었지, 그 시절에 떡집은 없었어. 내가 4남4녀 중 장남이었는데 공무원해서는 밥 먹고살기 힘들어서 제대하고 아버지 가게를 물려받았지."
김정섭 어르신의 아버지는 일본에서 두부 만드는 기술을 배워 와 논산훈련소에서 두부공장 기술자로 일했다. 이후 고향으로 내려와 재래식으로 만든 두부를 팔았다. 어르신의 아버지는 같은 양의 콩으로도 다른 사람보다 훨씬 많은 두부를 만들어냈다.
"하루에 콩 200가마니로 6만 장병이 먹는 두부를 만들었으니 그 기술이 어디 가겠어?"
어르신은 아버지 기술을 아무리 배워도 따라갈 수 없었다고 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떡을 팔았는데, 그 당시 가게는 사회활동을 활발히 하던 김정섭씨를 대신해 아내 이막달 여사가 도맡아 했다.
"나 대신 부인이 일을 다 했지, 고생도 많이 했어. 1남6여 애들도 착하게 모두 잘 키우고."
김정섭씨는 제24회 서울올림픽 성화봉송 주자였다. 축구에 워낙 소질이 있어 40대에도 함양군 대표로 활동했다. 후보 선수로는 57세 때까지 이름을 올렸다. 김정섭씨는 함양군 생활체육회 초대회장부터 5대까지 역임했으며 생활체육회 중앙회 창립발기인으로도 참여한 체육회의 산 증인이다.
"94년, 95년을 잊을 수가 없어. 함양체육회 생긴 이래 처음으로 도 대회 우승을 연달아 했으니."
당시의 영광을 회상하는 어르신의 눈이 반짝인다.
▲ 사과나무떡집 참기름, 들기름 ⓒ 주간함양
사과나무떡집의 인기 품목은 뭐니뭐니 해도 '참기름'과 '떡'이다. 기름 짜는 일은 김정섭씨의 사위 정연관씨가, 떡은 딸 현옥씨가 담당한다. 기름 짜는 것이 보기엔 쉬워 보여도 그렇지 않단다.
"난 한번 보면 뭐가 부족한지 알지. 깨는 볶는 게 제일 중요해. 너무 많이 볶으면 쓰고 덜 볶으면 고소한 맛이 없어."
어르신은 사위가 기름 짜는 실력이 부쩍 늘었다며 믿음직스러워 했다.
"사위랑 딸이랑 젊으니까 더 잘하지. 우리 부부가 할 땐 일이 들어와도 못해냈는데 지금은 우리보다 더 낫다니까."
요즘은 깨도 값이 오르고 쌀도 값이 올랐는데 그렇다고 참기름을 비싸게 팔 순 없다. 떡도 마찬가지다. 오랜 세월을 함께하며 가게를 찾아주는 손님들이 가족 같은 단골이기에 가격 올리는 건 자꾸 인색해 진다.
▲ 사과나무떡집 정연관·김정섭·김현옥 부녀 ⓒ 주간함양
떡 담당 김현옥씨는 손님들이 많이 찾는 약식에 자신감을 보인다. "주문을 많이 해 주셔서 많이 만들다 보니 실력도 늘어요."
약식뿐 아니라 이 가게의 진짜 인기떡은 '기정떡'이다. "기정떡은 엄마가 우리집 만의 노하우라며 저에게 가르쳐 주셨어요." 쌀도 좋은 걸 써야 하고 잘못하면 질겨지니 만들기도 힘들다는 기정떡이다. 폭신폭신하고 부드러운 기정떡의 진짜 맛은 사과나무떡집에 오면 알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주간함양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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