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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의 최애는] 내 활력소이자 자양강장제나 다름 없는 코바늘 손뜨개질

등록|2021.02.10 12:34 수정|2021.02.10 12:34
사회적 거리두기가 계속 되고 있습니다. 올해 설에는 5인 이상 집합 금지 조치로 많은 이들을 만날 수도 없습니다. 이럴 때 뭐라도 마음을 의지할 데가 있으면 우리 일상이 조금 위로가 되지 않을까요? '요즘 나의 최애는' 무엇인지, 그로 인해 나의 일상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 시민기자들의 이야기를 싣습니다.[편집자말]

▲ 베이지와 버건디색 실로 테이블 러너를 만들 참이다. 하나하나 산 탓에 제각각이지만 손때 묻은 코바늘들. ⓒ 김수진


또 실패다. 바늘이 어느 구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건지 당최 알 수가 없다. 그게 궁금해서 뚫어져라 큰이모의 손끝만 바라본 게 벌써 몇 분째인데. 빨리감기 한 동영상마냥 빠른 손놀림은 틈을 허락치 않는다. 이모의 손놀림을 따라 돌돌 풀리는 털실은 뱀꼬리인 듯 방바닥을 따라 꼬물꼬물 쉼 없이 기어간다.

어린 시절 기억 속 큰이모의 옆에는 늘 뜨개 바구니가 있었고 이모의 손은 쉬는 법이 없었다. 가족들과 이야기하며 슬쩍슬쩍 곁눈질로 뜨개질을 하는 듯한데도 결과물은 언제나 '대작'인 뜨개장인이셨다.

그저 같은 동작으로 손을 휙휙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조금 후에 보면 가지런히 땋은 머리 모양도 생기고 시장에서 사먹던 꽈배기 모양도 생기곤 하는 것이었다. 끝없이 길기만 하던 털실이 평면의 직물이 되고 조각조각의 직물이 모여 가족 중 누군가의 옷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은 어린 내게 '트랜스포머' 급 신비로운 광경이었다.

그 신비로움을 잊고 어른이 됐다. 그러다 내가 이런저런 만들기를 좋아한다는 걸 아는 친구가 코바늘 뜨개질을 추천한 게 8년쯤 전이었나보다. 분명 좋아할 거라며 기본 사슬뜨기 방법을 동영상으로 찍어 보내줬다. 보는 순간 알았다. 나를 덕질로 이끌 또 하나의 문이 열렸음을.

애 셋 엄마, 뜨개질이라는 신세계를 열다 

시간만큼 상대적인 게 또 있을까. 무언가를 초조히 기다릴 때의 10분과 좋아하는 것에 빠져 있을 때의 1시간은 동급이다. 고작 몇십 분을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시계 분침은 이미 두세 바퀴를 돌아와 있는 신기한 경험. 내겐 리본공예가 그랬고 베이킹이 그랬다. 이번엔 코바늘 뜨개질이었다.

셋째를 임신하고 있던 때여서 태교도 할 겸 아기 담요부터 만들어 보기로 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모양만 보고 덥석 고르는 바람에 생초보에겐 다소 어울리지 않는 '와플 스티치' 담요를 만들게 됐다.

와플처럼 네모 가운데가 폭폭 파인 재미난 모양에 끌렸지만, 그 모양을 내기 위해선 기본에서 살짝 변형시킨 기술이 필요했다. 하지만, 나는 변형은커녕 실을 어떻게 쥐고 코를 잡는지도 모르는 생초보였고, 곁에는 차근차근 알려줄 선생님 대신 어린 첫째와 둘째, 뱃속의 셋째 아이가 있었다.

임신한 몸으로 하루종일 아이들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재우고 놀이하고 어르고 달래고 육퇴(육아퇴근)할 때쯤엔 녹초가 되기 일쑤였지만,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유튜브를 선생님 삼아 수없이 동영상을 멈춰가며 코바늘 뜨개질을 배우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이모의 바늘이 어느 구멍으로 들어가는지 아리송하기만 하던 순간이 재현됐다. 잠시 코를 헷갈리면 와플이 찌그러지는 바람에 떴다 풀렀다를 몇 번이고 반복했던 것 같다. 문득 시계를 보고 화들짝 놀라 다음날의 육아를 위해 아쉽게 잠들기를 계속한 끝에 와플 모양 담요는 완성됐다.

여기서 끝나면 덕질이 아니지. 바로 다음 프로젝트를 구상했다. 뜨개질의 기본은 모자와 목도리. 직접 가족들의 몸에 내가 만든 것들이 입혀지는 뿌듯함을 알게 되니 덕질에 가속도가 붙었다. 때로 남편은 피곤한데 그만 자라며 걱정어린 시선을 보내기도 했지만, 천만의 말씀. 육퇴 후 아무도 "엄마아~!" 불러대지 않는 시간에 하는 뜨개질은 나의 자양강장제였다.

내가 모르는 부분에서 멈추어 기다려주지 않는 동영상을 선생님으로 둔 탓에 돌려보고 찾아보고 보고 또 보고 해야 했고 밤시간을 쪼개 써야 했지만, 힘들었던 기억은 없다.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 그대로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 감흥을 느끼어 마음이 당기는 멋', 진정한 '취미'였다.

누군가 왜 뜨개질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 버블스티치와 수제트 스티치로 만든 목도리 ⓒ 김수진


그렇게 코바늘 뜨개질이 취미가 된 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나 이젠 옷장 여기저기, 집안 곳곳에 나의 뜨개질 흔적이 묻어 있다. 스웨터, 가디건, 백일 드레스, 아기 덧신, 모자, 목도리 같은 의류에서부터 수세미, 바구니, 책갈피, 티코스터, 각티슈 커버, 쿠션 커버, 식탁 매트, 냄비 받침 등의 생활용품, 장식품과 인형, 가방까지 많이도 만들었다. 그런데도 질리지가 않는다. 질리긴커녕 한동안 하지 않으면 손이 근질근질해 만들 거리를 찾아 집안을 휘휘 둘러보게 된다.

코바늘 뜨개질이라는 게 신기한 것이 짧은뜨기와 긴뜨기 등 몇 가지 기본 스티치들만 익혀 놓으면, 그것들을 몇 번씩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매우 다양한 패턴들을 만들 수가 있다. 예를 들어, 한길 긴뜨기만 연이어 하면 가지런한 사각형이 되지만, 사이사이 사슬뜨기를 넣으면 망태 모양이 된다. 한 코에 짧은뜨기와 한길 긴뜨기를 모두 한 뒤 다음 코 건너뛰기를 반복하면 수제트 스티치가 된다.

살짝 변형을 가하기도 한다. 한 코에 한길 긴뜨기를 중간 과정까지만 네 번 한 뒤 다섯 번째는 완전한 한길 긴뜨기를 하면 귀엽게 톡 튀어나온 모양의 버블 스티치가 만들어진다. 기본은 같은데 조금씩의 변형으로 전혀, 정말이지 전혀 다른 모양이 탄생한다.

이런 식으로 헤링본 스티치, 비드 스티치, 버블 스티치, 스타 스티치, 모스 스티치, 자스민 스티치, 그리들 스티치, 바스켓 위브 스티치, 클러스터 스티치, 셸 스티치, 웨이브 스티치, 다이아몬드 스티치, 레몬필 스티치, 박스 스티치, 페블 스티치 등등등 이 세상에 스티치의 종류는 무지무지하게 많고 따라서 나의 덕질도 그 끝을 알 수가 없다.

선물할 일이 있을 때면 물건을 사기 전 한 번쯤 생각해 본다. 뜨개질로 만들 수 있는 뭔가가 없을까. 멀리 선교 떠나시는 목사님 부부께는 바구니와 목도리를 만들어 드렸고, 원하는 사이즈의 가방을 찾기 어렵다는 엄마께는 딱 용도에 맞는 아담한 가방 하나 손에 들려 드렸다. 셋째 딸 백일 땐 드레스를, 한창 슈퍼 히어로에 빠져 있던 아들에게는 스파이더맨 모자를 만들어줬더랬다. 선물을 받아든 이들의 함박웃음을 기억한다. 나의 취미생활에 보람이 덧입혀지는 순간이다.

나의 이 취미가 누군가에겐 도통 이해되지 않는 '시간 낭비'일 뿐일지 모르겠다. 실제로 누군가는 그걸 왜 하냐고 물은 적이 있다. 간단히 돈 주고 사면 그만인 것을 굳이 재료를 사서 많은 시간 '노동'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게 그러니까"로 시작해 몇 분은 떠들어댈 수 있을 만큼 이유야 많다.

손 놀리는 걸 원체 좋아하니까. 나의 손놀림과 시간이 만나 없던 물건이 뚝딱 생겨나는 게 신기해서. 그걸 선물 삼아 마음을 전할 수 있어서. 잡생각이 깊어질 때 색색의 실과 손놀림에 집중하면 마음이 정리되니까.

그런데 왠지 백퍼센트 만족스러운 대답 같진 않다. "그 사람이 왜 좋아요?" 물었을 때 이런저런 이유를 대는 것보다 "그냥 그 사람이 좋아요" 답했을 때 더욱 고개가 끄덕여지는 건, 한 사람을 있는 그대로 좋아한다는 마음이 느껴져서일 것이다. 나도 그냥 뜨개질이 좋다.
 

▲ 코바늘 뜨개질로 만든 인형과 장식소품들 ⓒ 김수진


아이들은 불쑥불쑥 "엄마, 인형옷 만들어주세요." "이번엔 악어!" 하고 말한다. 말만 하면 뚝딱 나오는 건 줄 아냐며 살짝 눈을 흘겨보지만, 벌써 머릿속에선 어떤 색과 패턴으로 만들까 즐거운 고민이 시작된다. 새 실을 안고 가게를 나올 때의 내 표정은 안 봐도 알 수 있다. 기대에 차서 눈은 반짝, 입꼬리는 반쯤 올라가 있을 것이다. 빨리 집에 가야지, 발걸음이 급해진다.

요즘처럼 살면서 상상도 못 했던 일, 영화에서나 접하던 일을 실제로 겪으며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 세상 앞에 무력해질 때,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고작 거리두기와 마스크 쓰기밖에 없음에 속상하고 답답할 때, 들뜬 마음으로 여행가방을 꾸리거나 친구들을 초대해 음식 나누며 왁자하게 떠드는 일이 언감생심일 때, 뜨개질은 더없이 고마운 벗이 되어준다.

흉흉한 소식들에 커져가는 불안감을 잠재우기 급급한 요즘, 나는 꽁꽁 닫힌 집안에서 사부작사부작 뜨개질을 한다. 폭신한 슬리퍼에 등 따신 조끼 하나 걸친 뒤 뜨개가방 집어 들고 자리를 잡는다.

이 글을 쓰는 중 새로운 뜨개질 거리가 떠올랐다. 예전부터 별러왔던 테이블 러너를 만들어볼 참이다. 새 실을 손가락에 걸고 새로운 스티치로 뜨개질을 시작하는 순간은 이런 세상에도 불구하고 설렌다. 새로울 것 하나 없는 코로나 시대, 새로운 물건을 만들며 대문 활짝 열어젖힐 그 날을 기다린다. 새 테이블 러너가 손님들을 너무 오래 기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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