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이재학 피디 1주기, 내 아들 한빛이가 떠올랐다

[이재학, 1주기 ④] 고 이한빛 피디 부친,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용관 이사장

등록|2021.02.04 14:32 수정|2021.02.04 17:15

▲ 홍정민(오른쪽)-윤미향(왼쪽)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CJB청주방송 故 이재학 피디 대책위원회가 2020년 11월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CJB 청주방송 4자 합의 신속 이행 촉구 및 입장 번복 비판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중간은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용관 이시장이다. ⓒ 공동취재사진


[이전 기사] 이재학 PD 사건 해결 없이 CJB청주방송에 미래는 없다 http://omn.kr/1rxww

2020년 12월 10일부터 2021년 1월 8일까지, 국회 앞에서 29일간의 단식 농성을 진행했다. 나처럼 자식을 일찍 떠나보낸 김용균재단 김미숙 이사장과 민주노총 이상진 전 부위원장과 함께 진행한 단식 투쟁이었다.

나이를 먹고 단식을 한 여파는 컸다. 단식을 중단하고 한 달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다. 단식 자체를 후회하지는 않는다. 산재로 세상을 떠난 이들의 바람이 온전히 반영되지는 못했지만, 비로소 기업에 산재 책임을 근본적으로 따져 묻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 됐기 때문이다.

내 소중한 아들 한빛, 청년 노동자 김용균, 그 외 구의역 '김군'을 비롯해 수많은 노동자가 법의 사각지대에서 고통받다 숨지는 일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작년 2월 세상을 떠난 CJB 청주방송 고 이재학 PD도 마찬가지다.

청주방송은 끝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2004년에 입사해 2018년까지 수많은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PD로서 연출을 수행했다. 토론부터 음악, 여행 등 온갖 다양한 장르의 프로그램에 투입되면서도 묵묵하게 해야 할 일을 했다. 고용 형태만이 '정규직'이 아니었을 뿐이다.

그가 2018년 갑작스럽게 부당 해고를 당했다. 매주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최저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했던 그가 자신과 동료 프리랜서 노동자를 위해 임금 인상을 요구했다가 사측에 미움을 샀기 때문이다. 대학을 졸업한 후 곧바로 청주방송에서 일한 이재학 PD에게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었으리라.

14년 세월,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청춘을 바쳐가며 일했던 직장에서 제대로 된 처우는커녕 바른말을 했다고 곧바로 쫓겨나는 현실에 이재학 PD는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을까.

이재학 PD는 자신이 청주방송의 노동자였음을 증명받기 위해, 14년 동안 보장받지 못했던 권리를 늦게나마 인정받기 위해 청주방송에 근로자지위확인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청주방송의 악독함은 절정에 달했다. 이재학 PD를 위해 증언하기로 한 직장 동료들을 압박해 증언을 철회하게 만든 것이다.

그는 청주방송에 이어 법원에서도 노동자임을 인정받지 못했고 2020년 1월, 1심에서 패소했다. 이미 청주방송에서 짓밟힌 이재학 PD의 인격은 법원에서도 뭉개지고 말았다. 이재학 PD는 고통과 억울함을 호소하며 스스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재학 PD의 죽음은 표면적으로 '자살'이지만,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은 14년 동안 헌신한 노동자의 공로를 인정하지도 않고 하루아침에 내쫓은 CJB 청주방송이다. 이 모든 과정을 묵인한 CJB청주방송 대주주인 이두영 두진건설 회장의 책임을 결코 지울 수 없다.

이미 <미디어오늘>을 비롯한 유수의 매체가 보도해온 바와 같이 이두영 회장은 공영적 성격을 지닌 방송사를 개인적인 소유물로 만들며 자신과 일가의 잇속을 채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두영 회장이 청주방송을 통해 챙겨간 이득을 조금이라도 밤을 지새우는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사용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비용 절감을 이유로 이재학 PD 같은 '무늬만 프리랜서'를 양산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두영 회장은 세상의 도의조차 무시하며 눈과 귀를 막기에만 바빠 보인다. 내 아들 이한빛 PD의 뜻을 잇기 위해 2018년 설립한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를 비롯해 약 60개 단체가 모여 이재학 PD의 죽음에 대한 진상조사와 명예회복, 책임자 처벌과 비정규직 고용 구조 개선을 위해 'CJB 청주방송 고 이재학 PD 대책위원회'를 만들었다.

약 6개월 동안 싸움을 이어나간 끝에 이재학 PD 사후 171일이 되는 2020년 7월 24일 청주방송은 대책위와 언론노조, 유가족과 같이 대책위 요구안을 수용하는 합의에 공개적으로 조인했다. 그러나 청주방송은 2020년이 끝나가도록 이름을 걸고 한 합의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온갖 핑계와 궤변을 늘어놓으며 어떻게든 합의를 미루거나 뒤엎기에 여념이 없었다. 청주방송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 뒤편에는 방송국을 좌지우지하는 이두영 회장이 있다는 보도가 흘러나왔다.

내 아들 이한빛 PD가 2016년 CJ E&M에 입사해 tvN 드라마 <혼술남녀>의 신입 조연출로 활동하다 열악한 노동 환경과 직장 내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고 죽음으로 항거한 모습이 떠올랐다. 언제까지 이한빛이나 이재학 같이 방송을 사랑해서 방송을 직업으로 선택한 이들이 고통받다 죽어가야 한단 말인가.

이런 고통을 나 스스로 겪었고, 여전히 많은 이들이 고통받는 모습을 보기에 엄동설한에서도 단식을 계속 이어나갔던 것인지도 모른다.

4일은 이재학 PD의 1주기다. 내가 이사장으로 있는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를 비롯해 60여 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인 'CJB 청주방송 고 이재학 PD 대책위원회'는 가열찬 투쟁에 나설 예정이다. 이두영 회장은 이 편지를 읽고 부끄러움이 뭔지 알기 바란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