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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에 쉬었다간 단골 손님들에게 혼나요"

충남 예산군 어죽집 3곳... 역사만 150년, 맛의 비결은 예당붕어

등록|2021.02.08 17:08 수정|2021.02.08 17:14

▲ 칼칼하고도 고소하며 뜨끈하게 속을 채우는 예당어죽. ⓒ <무한정보> 김두레


예당어죽. 비싸고 화려한 음식은 아니지만, 한번 맛을 들이고 나면 칼칼하고도 고소하며 뜨끈하게 속을 채우는 그 맛에 계속 찾게 된다.

충남 예산 사람이라면 우리 고장을 방문한 손님에게 '예산에 오면 이것은 꼭 먹어봐야 한다'며 어죽집을 데려간 적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비릴 것 같다'며 반신반의하는 상대가 한 입 맛을 보더니 땀을 흘리며 한 그릇을 뚝딱 비워내면 왠지 모를 흐뭇함과 자긍심으로 뿌듯해진다. 우리들의 어죽 사랑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청년들의 천렵 그리고 딴산옥

"예당저수지 수몰 전, 그 가운데에 냇가가 있었대요. 들녘도 있고. 그때 청년들은 여름에 더우면 천렵간다고 고추장 한 대접, 솥단지 하나 들고 냇가에서 고기 잡으며 놀았지요. 그렇게 잡은 민물고기를 끓이고 고추장을 풀어 어죽을 해 먹었다는 거예요. 그게 당시 청년들의 놀이문화였어요. 차가 많나. 길이 좋나. 그렇게 놀러다닌 거죠. 고기를 잡기만 하면 한 솥단지 끓여 마을 사람들과 나눠 먹었대요. 여름이면 어죽 해 먹느라 고추장이 한 단지씩 없어지고 그랬다니 물가 사람들이 예전부터 즐겨 먹은 거죠."

대흥 상중리에서 2대째 '호반식당'을 운영하는 김정수(67) 대표가 부모님께 전해 들은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예당저수지가 생긴 뒤로 아버지가 고기를 잡으시고, 어머니는 장에 가져가 파셨대요. 고기 담은 큰 다라 이(대야)를 머리에 이고 예산역전장, 홍성장, 청양장을 다니셨는데, 버스를 타고 가려니 기사가 안 태워줘서 고생하면서 다녔다고 하시더라고요. 한참을 장에 다니시다 어려우니까 어죽을 끓여 팔기 시작하셨어요. 아래채, 위채 방 세 칸 있는 집에 허가 내서 매운탕이랑 어죽을 끓이신 거예요."

배고팠던 시절 주린 배를 채우고 생계를 이어가도록 했던 예당과 어죽은 떼려야 뗄 수 없었다. 저수지 주변에서 어죽을 처음으로 팔기 시작했다는 '딴산옥'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현재 '대흥식당'을 운영하는 안종수(60) 대표의 말을 빌리면, 70년여 전 딴산(대흥 노동리)에 사는 한 할머니가 지천에 있는 물고기를 잡아 끓여 마을 사람들과 나눠 먹었고, 사람들이 맛있으니 장사를 해보라고 해 연 곳이 딴산옥이다.

"현재 산마루가든 위쪽에 딴산옥이 있었대요. '옥'자 붙는 게 니나놋집이라고, 젓가락 두드리며 놀기도 하고 그런 곳인데, 거기서 어죽도 팔았던 거예요. 예당저수지가 생기면서 식당을 물가 쪽으로 옮겨 '딴산 대흥식당'이라고 간판을 새로 걸고 본격적으로 어죽장사를 한 거죠. 그 할머니한테 배운 방법과 제가 연구한 비법으로 어죽 맛을 이어오고 있어요."

테이블 4개로 시작해 48개까지 늘릴 정도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는 대흥식당의 옛 자리는 2017년 예당저수지 물넘이공사로 모두 헐렸고, 조금 떨어진 위치에서 다시 시작한 지 3년째란다.

깊은 맛의 비결은 예당붕어
 

▲ 어를 한참 고아 육수를 내고 국수와 수제비, 밥을 넣어 고추장과 갖은양념으로 간을 한다. 깻잎이나 쑥갓 등으로 향을 더하면 완성이다. ⓒ <무한정보> 김두레


어죽은 민물고기로 육수를 먼저 만들어 놓는 것이 중요하다. 먼저 붕어를 3~5시간 넘게 뼈와 살이 으스러질 때까지 푹 고아 체로 걸러 육수를 만든다.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육수에 양을 맞춰 끓이는데, 간은 고추장으로, 매운맛은 고춧가루로 한다.

제일 늦게 퍼지는 국수를 가장 먼저 육수에 넣고, 수제비도 뚝뚝 떼어 넣으면 밀가루 성분이 비린 맛을 잡아준다. 밥을 으깨 풀고, 민물새우와 갖은 양념을 넣어 끓이다 깻잎이나 쑥갓, 냉이 등으로 향을 더해 잘 어우러질 때까지 끓이면 완성이다.

원래는 밥 대신 쌀을 넣었지만 조리시간이 길어져 대부분 식당에서는 밥을 미리 지어 넣는다. 예당 주변 식당 곳곳이 짠지를 반찬으로 내주는 것도 특징이다. 아삭아삭하고 깔끔해 어죽과 잘 어울린다.

"예당저수지 주변 어죽집은 주로 붕어로만 육수를 내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다른데선 메기나 피라미 등 잡고기를 섞어서 쑨다고 하데요. 쌀을 넣지 않고 국수만 끓여 어탕국수나 생선국수라고 부르고요."

호반식당 김정수 사장 가족이 예당만의 어죽에 대해 설명하더니, "옛날에는 민물새우가 예당에서 굉장히 많이 나왔어요. 하루에 15kg, 많이 나오면 30kg도 잡고 그랬지요. 3~4년 전부터는 한 바가지 나오려나. 예전처럼 잡는 건 꿈도 못 꿔요. 요즘은 또 배스니 블루길이니 외래종이 퍼지면서 붕어 잡히는 양도 줄었어요"라며 토종 민물고기가 줄고 있다는 걱정어린 목소리를 전한다.

1981년부터 40년째 어죽 맛을 이어오는 예당가든 새내기 대표 권예람(28)씨도 "타지역 어죽은 흙내가 많이 나더라고요. 그곳에서 오신 손님이 예당저수지에서 먹는 어죽이 냄새도 안 나고 가장 맛있다고 해주실 때 가장 보람을 느껴요. 어죽은 푸짐하게 줘야 한다고 배워 옛날 큰 스테인리스 대접에 담아 드려요. 주변 식당들도 뚝배기나 대접에 양껏 담는 게 비슷한 거 같아요"라며 예당어죽 자랑에 한창이다.

예당어죽 식당의 공통점. 바로 명절 때마다 쉬지 못한다는 것이다.

"명절에 쉬었다간 단골손님들한테 혼나요. 어죽은 고향에 오면 꼭 먹어야 하는 음식이래요. 도시에서 먹으면 이 맛이 아니라나… 하긴, 명절이면 정말 진풍경이에요. 할머니, 할아버지부터 손주들까지 사위건 며느리건 온 가족이 와서 먹거든요. 꼭 대물림처럼 어죽 맛을 어렸을 때부터 들이는 거지요. 옛날에 저수지 물 방류하면 그 밑에서 투망치고 물고기 잡아 솥단지 걸어놓고 끓여 먹던 어죽 맛이 입에 배어 잊지 못하고 계속 찾는 거 같아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땀을 뻘뻘 흘려가며 먹는 걸 보면 어죽은 예산사람들의 소울푸드가 아닐까 싶습니다."

다가오는 설 명절, 고향의 맛 어죽을 그리워 할 출향인들의 모습이 벌써 그려진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충남 예산군에서 발행되는 <무한정보>에서 취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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