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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떠난 자리엔 그리움만 남는다

손자가 떠나간 빈자리

등록|2021.02.09 09:47 수정|2021.02.09 09:47

눈 오는 날 손자 모습눈이 오는 날을 좋아하는 손자 ⓒ 이숙자


어디선가 금방 까르르 웃는 손자 웃음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날마다 아침이면 일어나 배꼽에 두 손 모으고 "안녕히 주무셨어요" 하고 깍듯이 인사하곤 때때로 "할머니"라고 불렀다. 내가 "왜" 대답을 할라치면 "사랑해요" 하면서 미소를 날려 주었던 센스쟁이 손자였다.

일 년간 쭈욱 그렇게 시끌벅적 요란스럽게 살아왔던 환경이 바뀌고 갑자기 조용해진 집안 분위기가 낯설다. 마치 다른 곳에 내가 와 있는 듯하다. 일 년 전에는 분명히 우리 부부만 지금처럼 조용히 살아왔는데 다 잊고 새로운 환경 속에 있는 듯한 착각 속에 서 있다.

사람은 만나면 언젠간 헤어져야 하고 자기 본래 자리로 돌아간다. 손자가 떠난 후 같이 있을 때는 몰랐던 그리움이 마음을 건드린다. 사람의 마음은 이상하다. 곁에 있을 때는 시들했던 마음이 떠나고 없으니 허전하고 지난날들의 기억이 새록새록 자꾸만 떠오른다.

오늘따라 날씨마저 잿빛 하늘로 우중충하고 흐려서일까, 기분이 가라앉고, 고요해진 집안엔 노부부만 각자 자리에서 따로 놀고 있다. 나이가 들어가면 부부도 할 말이 별로 없어진다. 저마다 자기 생각대로 논다.

남편은 거실 소파에서 TV를 보다 재미없으면 그냥 끄고 낮잠을 자고, TV 소리마저 멈춘 집은 아주 조용하다 못해 적막강산이다. 나는 서재에 앉아 유튜브의 책 읽기 구독을 하며 필사하거나 컴퓨터를 가지고 논다. 마음은 평온하지만 고적함에 외로움이 슬금슬금 밀려온다.

왜, 나이 들면 쓸쓸함을 더 느껴질까... 맨 먼저 사람과의 관계가 멀어지고 소통이 줄어든다. 가까웠던 사람이 하나둘 떠나기 시작한다. 자꾸 움직이기 귀찮아지고 사람과의 만남이 번거롭다. 필요 없는 말은 하지 않으려 한다.

사람과의 대화는 자칫 자식들 이야기로 서로 부담을 느낄 수 있어 삼가게 되고 또 남의 집 가정사에 관심이 없다. 서로 나누던 따뜻한 격려도 옛말이다. 마음에 불편함을 가지기 싫은 이유도 있으리라. 어쨌든, 단순하게 살고 싶은 게 요즘 사람 심리이다.

딸네 가족과 함께 지낼 때는 집안이 꽉 채워진 듯 헐렁하지 않았다. 해야 할 일이 많았고 딸과 같이 영화를 보고 가끔 가게 되는 카페를 가면, 젊은 사람들의 특권을 누리는 듯했다. 나이 든 사람끼리만 살면 그에 맞게 살뿐이다. 사람이란 그 사람이 지닌 향기와 온기가 있다. 그 시간들이 감사했다.

나는 달라진 환경에 차차 적응되겠지만 아직은 이른가 보다. 뜻하지 않은 코로나 때문에 1년은 특별한 날들이었다. 딸네 가족의 기운을 받아 행복한 날이기도 했다. 때론 힘들기도 하고 세월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정신없이 흘러갔다. 내가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사는지도 모르게 날마다 해야 할 일에 매여서 잡념을 가질 시간이 없었다.

이제 다 지나간 시간이다. 나는 다시 새로운 일상과 만난다. 오늘 한가롭게 책 읽는 소리를 듣게 되니 정신이 번쩍 든다. 몸과 마음이 고요해지니 생각이 맑아진다. 나머지 삶은 무엇이 내 인생에서 중요한 일인가? 나를 돌보는 시간을 가지고 다른 사람과 건강한 거리두기를 하면서 잘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우리는 세상만사 마음먹기 달렸다고 한다.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진다. 고통은 복잡한 생각에서 오고, 인생의 기쁨은 단순함에서 온다고 하니, 나이 들수록 복잡함을 피하고 내가 좋아하는 내 일에 집중하고 내 삶의 주인공으로 당당히 살아갈 때 외로움에서 멀어지는 삶이 아닐까...

자녀도 그 무엇도 다 소유할 수 없는 것이 인간 본연 삶의 진리이다. 마음을 비우고 텅 빈 충만함으로 채우고 그저 무소의 뿔처럼 묵묵히 자기의 길을 걸어갈 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기자의 브런치에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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