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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보다 앞선 영화주제가의 원조를 아십니까

한국 최초의 영화주제가, 1925년 나온 '쌍옥루'

등록|2021.02.15 14:33 수정|2021.02.15 14:42
지난 2017년 5월, 흥미로운 전시가 한국영상자료원 영화박물관에서 열렸다. 2016년 한국 대중가요 100년과 2019년 한국 영화 100년을 아우르는 내용으로 기획된 <한국 영화와 대중가요, 그 100년의 만남>이었다. 전시 첫머리를 장식한 작품은 나운규의 대표작으로 유명한 영화 <아리랑>과 그 주제가였는데, 1926년에 발표된 영화주제가 <아리랑>은 여러 가지 의미 있는 '최초' 기록을 가진 작품으로 소개되었다.

주제가 <아리랑>은 우선 첫 번째 창작 대중가요로 평가되는 작품이고(작곡자가 누구인지는 구체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다), 1931년 일본에서 음반이 발매된 첫 번째 한국 대중가요이기도 하다. 그리고 1933년에 '치안방해'를 이유로 음반이 압수된 첫 번째 대중가요 역시 <아리랑>이다.

<아리랑>이 이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최초 기록을 가진 것은 틀림없지만, 영화주제가로서도 <아리랑>이 첫 번째 작품이라는 전시 설명은 사실과 다르다. 1926년 10월에 개봉한 <아리랑>보다 1년 정도 앞서는 다른 영화에서 주제가가 이미 불렸음이 확인되기 때문이다. <아리랑>보다 먼저 주제가를 선보인 영화는 1925년 9월 개봉작 <쌍옥루>이며, 같은 제목으로 불린 노래가 한국 최초의 영화주제가였다.
 

▲ 1925년 9월 영화 <쌍옥루> 개봉 광고 ⓒ 매일신보


<쌍옥루>는 1899년에 처음 발표된 일본 신문연재소설 <나의 죄(己が罪)>를 원작으로 한다. 조중환의 번안으로 소설 <쌍옥루>가 신문에 연재되기 시작한 때는 1912년 7월이었고, 연재가 끝나기도 전인 1913년 1월에는 전반부가 이미 단행본으로 출판될 만큼 큰 인기를 누렸다. 1913년 2월에 연재가 마무리된 뒤 바로 이어서 4월에는 극장에서도 <쌍옥루>가 상연되었고, 연극 <쌍옥루>는 1910년대 내내 여러 극단에서 거듭 무대에 올린 인기 레퍼토리가 되었다.

영화 <쌍옥루>는 이처럼 소설과 연극의 흥행 성공을 바탕으로 기획된 작품이다. 그러나 영화주제가 <쌍옥루>는 그 흐름과는 또 다른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노래였다. 창작곡인 <아리랑>과 달리, <쌍옥루>는 일본 동요 멜로디에 가사만 새로 붙인 곡이다. <쌍옥루>의 원곡이 되는 노래 <바닷가 물떼새(濱千鳥)>는 일본에서 1919년에 발표되었으므로, 소설이나 연극과는 관계없이 영화 상영을 위해 따로 선택된 노래였다고 할 수 있다.

<바닷가 물떼새>가 영화주제가 <쌍옥루>로 거듭난 데에는, 영화 내용과 분위기가 잘 맞는다는 점에 더해 영화 제작 이전부터 이미 많이 알려져 관객들에게 친숙한 곡이라는 점이 고려되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1925년 6월 전라남도 광양 음악회에서 불린 기록이 보이고, 영화 개봉 직후인 10월에는 <갈매기>라는 제목으로 음반이 발매되기도 했다. 발매는 10월이었지만 녹음은 몇 달 전에 이미 이루어졌으니, 역시 <바닷가 물떼새>가 영화 이전부터 잘 알려진 곡이었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 1927년 9월 영화주제가 <쌍옥루> 음반 발매 광고 ⓒ 동아일보


비록 번안곡이기는 했지만, 주제가 <쌍옥루>는 영화가 상영될 때 극장에서 불리는 데에 그치지 않고 따로 방송이나 음반을 통해서도 유통될 만큼 좋은 반응을 얻었다. 1927년 5월에는 영화주제가 전문 가수로 활약했던 유경이의 노래로 라디오 전파를 탔고, 9월에는 이남사의 노래로 첫 번째 음반이 발매되었다.

1930년에는 가수 겸 배우 김연실의 노래로 <쌍옥루> 두 번째 음반이 발매되었는데, 김연실은 그때 <쌍옥루>와 함께 주제가 <아리랑> 음반도 처음 녹음을 했다. 영화 상영 현장 주제가 발표는 <쌍옥루>가 <아리랑>에 비해 1년 앞섰지만, 주제가 음반 발매는 3년이나 먼저였던 셈이다.

첫 번째 영화주제가 <쌍옥루>의 위상은 당대 출판물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1929년 3월에 단성영화구락부에서 간행한 <조선 영화 소곡집>에는 대표적인 영화주제가 여덟 곡이 수록되었는데, <쌍옥루>가 첫 작품으로 등장한다. 영화 개봉 순서에 따라 목차가 정해진 것으로 추정되므로, 두 번째 수록 곡 <아리랑>보다 <쌍옥루>가 앞선 작품이라는, 즉 <쌍옥루>가 영화주제가로서 최초라는 점을 반영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 <조선 영화 소곡집>에 수록된 영화주제가 <쌍옥루> 악보와 가사 ⓒ 이준희


영화 <쌍옥루>보다 먼저 개봉한 1920년대 전반 영화가 10여 편 정도 있기는 하나, 그들 영화에 주제가가 있었다는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쌍옥루>에서 처음 주제가를 활용한 것은 나름 의미 있고 새로운 시도였던 셈인데, 그런 결정이 내려진 경위에 대해서는 아쉽게도 알려진 바가 전혀 없다. 그리고 가사를 지은 이가 누구였는지에 관해서도 아직까지는 아무런 정보가 없다.

비록 소리 없이 촬영된 무성영화이긴 했어도, <쌍옥루>나 <아리랑> 같은 작품은 변사의 해설과 악단의 연주 덕에 상영 현장에서는 의외로 풍부한 소리를 감상할 수 있었다. 필름이 남아 있지 않은 현재 상황에서 그런 소리를 담고 있는 자료, 주제가나 해설(설명) 음반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최초 영화주제가 <쌍옥루>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그런 자료와 기록의 확보, 정리를 통해 좀 더 선명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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