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온' 최수영 "이 악물고 살지 마" 대사에 울컥한 까닭
[인터뷰] JTBC 드라마 <런온> 배우 최수영
▲ ⓒ 사람엔터테인먼트
"지금같은 시대에 (서)단아같은 캐릭터가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배우 최수영은 지난 4일 종영한 JTBC 드라마 <런온> 속 서단아 캐릭터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극 중에서 재벌 2세로 태어났지만 여성이란 이유로 부당한 차별을 받는 서단아가 "주어진 것에 만족하기보다, 벽을 깨고 헤쳐나가는 주체적인 캐릭터"라서 좋았다고.
"저는 서단아가 자기가 하고싶은 거 다 했으면 좋겠다. 욕심이 엄청 많은데 그게 밉지는 않다. 정당하고 정의롭게 욕심을 부리니까. 그동안 드라마에 이런 캐릭터가 있었나? 싶을 만큼 특별한 캐릭터같기도 하다. 시청자분들께도 '우리 단아 하고싶은 거 다 하면서 살아라' 응원할 수 있는 인물로 남았으면 좋겠다."
지난 8일 온라인 화상 인터뷰를 통해 최수영을 만났다.
드라마 <런온>은 같은 한국말을 쓰면서도 소통이 어려운 시대, 서로 다른 세계에 살던 사람들이 각자의 언어로 소통하고 관계 맺으며 사랑을 향해 달리는 이야기다. 최수영은 극 중에서 서명그룹 상속자 서단아 역을 맡아 똑똑한 젊은 리더의 모습을 소화했다. 그는 "서단아를 단순하게 틀에 박힌 재벌 2세처럼 연기하고 싶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텀블러를 들고 다니는 모습이나 늘 운동화를 신는 설정 등은 그런 최수영의 고민 끝에 탄생한 결과물이었다.
"서단아가 요즘 젊은 세대처럼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깨어 있는 젊은 리더들과 많이 만났고 상담도 했다. 최근에는 남들이 다 가는 대학교에 가서 누구나 다 할 법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자신만의 재능으로 일찍 성공한 친구들이 많지 않나. 서단아도 자신의 비상한 두뇌를 십분 발휘해서 그 자리에 올라간 리더처럼 보였으면 좋겠다 싶더라. 그런 이유 있는 자신감이 엿보였으면 했다. 서단아가 텀블러를 들고 다니고 환경을 생각하는 점도 그래서 나온 결과다. 단아가 유학 시절 가장 집중했을 법한 게 뭘까 고민하다가, 환경 쪽을 생각했다. 언제든 부르면 달려갈 수 있게 운동화를 신고다니는 점도 그런 면에서 나온 것이다."
드라마 팬들 사이에서는 서단아 캐릭터가 전통적인 '로맨틱 코미디' 장르 속 재벌 남자주인공과 비슷하다는 반응도 많았다. 극 중에는 "나 이런 거 처음 먹어봐", "나같은 사람을 문전박대 하다니" 등 '클리셰'같은 대사들도 자주 등장했다. 서단아 캐릭터를 두고 로맨스 공식을 살짝 비틀어 낸 신선한 시도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최수영은 남자 주인공이 할 법한 대사라는 점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고 말했다.
"드라마에서 보던 재벌 남자 주인공 대사같다는 반응을 알고 있었다. 대본을 읽었을 땐 딱히 남자들이 할 법한 대사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냥 이 '또라이'같은 여자가 할 수 있는 얘기라고 느꼈다. 그래도 작가님은 성별 반전에서 오는 재미를 염두에 두고 쓰시지 않았을까? 우리 작가님은 늘 모든 신과 모든 캐릭터에 큰 그림을 갖고 계시더라. 잘 짜여진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어서 굉장히 짜릿했고 재미있었다."
▲ ⓒ 사람엔터테인먼트
서명그룹의 유일한 적통이자 재벌 2세인 서단아는 늘 대접받고 살아온 만큼 상대방을 쉽게 무시하거나 함부로 말하기도 한다. 서단아는 의도치 않게 자신이 추천한 사람 대신 통역 자리를 맡게 된 오미주(신세경 분)에게 "무릎 안 꿇냐?"고 묻기도 하고, 미대생 이영화(강태오 분)에게 그림을 부탁해놓고 '그림 자판기'처럼 취급하기도 한다. 최수영은 "보편적인 시선에서 보면 무례하게 느껴질 수 있는 대사가 많았다. 저도 (연기할 때) 고민이 많았다"면서도 "작가님과 대본을 믿었다"고 털어놨다.
"연기하는 저도 (단아가) 무례하다고 생각하니까, 그냥 무례한 사람으로만 보일 수 있겠더라. 단아에겐 악의가 있는 게 아니다. 이 상황에 흥미를 갖고, 상대방에 대한 호감으로 하는 말이었다고 생각한다. 한번도 자기한테 무릎을 꿇으라고 했던 사람이 없으니까, 그 말을 들었을 때 상대방이 어떤 기분일지 모르고 하는 말일 수도 있다. '네가 얼마나 통역하고 싶으면, 무릎까지 꿇을 수 있어?' 이런 의미였을 것이다.
단아는 참 모르는 게 많다. 이 아이의 성장과정에서 형성된 결핍에서 나오는 방어기제같은 장치라고 생각하니까 오히려 당당하게 연기하게 되더라. 결국에는 제가 얼마나 이 대본을 믿느냐였던 것같다. 단아의 결핍을 작가님께서 해결해주실 거라고 믿었기 때문에 세게 느껴지는 대사는 거침 없이 세게 했다. 시청자분들이 오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 좀 더 착하게 해볼까? 그렇게 연기했다면 서단아 특유의 느낌이 잘 안 보였을 것 같다. 후반부에 작가님이 다행히 단아의 결핍과 성장을 잘 풀어주셔서, 시청자분들도 응원해주셨던 것 같다."
극 중에서 서단아는 남들이 보기에는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지만, 그에게도 말 못할 아픈 상처가 있다. 그는 서명그룹 유일한 적통이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후계 서열에서 연년생으로 태어난 후처의 아들에게 밀려났으며, 가진 것을 빼앗길까봐 늘 전전긍긍 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우리 너무 이 악물고 살지 맙시다. 턱 아프잖아." 극 중에서 오미주는 "내 세계에서는 내가 약자"라며 속내를 털어놓는 서단아에게 이런 말로 툭 위로를 건넨다. 많은 드라마 팬들에게 명대사로 꼽혔던 이 장면은 최수영에게도 가장 기억에 남는 신이었다고. 그는 촬영 당시 울컥 눈물이 날 뻔 했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도 들려줬다.
"오미주 캐릭터가 참 좋았던 게, 세상이 자기를 한없이 거절하는데도 개의치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간다. 자존감이 높은 친구이기도 하고. 저는 '우리 너무 이 악물고 살지 맙시다, 턱 아프잖아.' 그 신을 너무 좋아하는데, 연기할 때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제가 우는 신이 아니었는데, 마지막 대사를 할 때 눈물을 엄청 참았다. 두 여성이 사는 세계는 다르지만, 결국 겪은 건 같다. 미주도 미주의 세계에서 여자로 살면서 겪었던 감정, 서단아도 자기 세계에서 겪고 있는 우여곡절 그런 것들을 나누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단아보다 더 힘든 일을 겪었을 법한 미주가 그런 위로를 건넨다. 그 대사가 신세경이 내게 하는 말 같기도 해서 눈물이 났다."
2007년 데뷔 이후 오랜 기간 걸그룹 소녀시대 멤버로서 활동해왔던 최수영은 이 악물고 살고 있었던 서단아에게서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단다. 그는 "내게도 (단아처럼) 완벽함을 추구하는 성향이 있는 것 같다. 늘 준비되어 있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불안하다. 어렸을 때부터 늘 무대를 준비하며 살아와서 그런 것 같다"면서도 이제는 스스로 고삐를 늦춰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던 시점이어서 울컥했다고 눈물의 이유를 설명했다.
"(늘 완벽하게 준비하려고 해도) 저에 대한 편견이나 짐작은 늘 있을 수밖에 없더라. 제 말로 인해 또다른 소통의 불화가 생기기도 하고. 그 과정들을 겪으면서 '결국은 뼛속까지 겸손해지는 수밖에 없구나', '여자 연예인으로 살려면 모두에게 좋은 말만 할 수 있어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런지도 꽤 오래된 것 같다. 이제는 시대가 변해서 어떤 캐릭터도 고유의 개성으로 받아들이는 사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도 모두 응원하는 시대가 됐고. 이 악물고 살던 걸 느슨하게 고삐를 늦춰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던 찰나에 이 작품을 만났다. 그런 차에 신세경의 대사에 더 울컥했다."
▲ ⓒ 사람엔터테인먼트
초등학생이었던 연습생 시절부터 함께 해온 소녀시대 멤버들은 현재 그룹 활동보다는 각자 개인 활동에 집중하고 있지만 여전히 서로에게 가장 힘이 되는 존재들이기도 하다. 최수영은 "시간이 지날수록 주변에 있는 좋은 사람들이 큰 축복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 멤버들도 그렇다"며 "저와 같은 일을 겪고, 같은 시대를 살아온 친구들이 모나거나 모질게 변하지 않고 너무나 좋은 어른으로 성장했다. 그 모습들이 저한테 좋은 자극을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동안 연기에 대한 자신의 열망이 외사랑처럼 느껴졌다는 그는 요즘 좋은 피드백을 많이 받아 신이 난다고도 했다. 최수영은 여전히 고민 많은 배우였지만 "이겨낼 자신이 있다"고 환하게 웃었다.
"고민은 늘 따라온다. 작품을 할 때도 작품이 없을 때도 그렇다. 막연히 (새 작품을) 기다려야 할 때도 있고, 작품을 만들고 나면 '어떤 반응이 올까' 부담감도 따라오는 게 이 직업의 숙명인 것 같다. 다행히 저는 소녀시대 활동으로 인내심을 얻었다. 모든 것에 유연해질 수 있는 자세는 제가 여태까지 한 그룹 활동으로 얻은 가장 큰 자산인 것 같다. 그래서 힘들어도 나락으로 떨어지지는 않는다. 나는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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