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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 박지수의 '여왕 즉위', 삼성생명이 발목 잡을까

[여자프로농구] 7일부터 시작되는 KB와 삼성생명 챔피언 결정전 미리보기

등록|2021.03.06 09:21 수정|2021.03.06 09:23
지난 1993-1994 시즌 미 프로농구(NBA) 서부 컨퍼런스 8위(42승40패)였던 덴버 너기츠는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서부 1위(63승19패)를 차지한 시애틀 슈퍼소닉스를 만났다. 국내외 모든 농구팬들이 '우승후보' 시애틀의 무난한 승리를 전망했지만 결과는 2패 후 3연승을 기록한 덴버의 역스윕이었다. 이는 NBA 역사상 플레이오프에서 8번시드가 1번시드를 꺾었던 최초의 사례였다.

이번 시즌 여자프로농구에서도 정규리그 14승을 기록했던 4번 시드 삼성생명 블루밍스가 22승을 거둔 1번 시드 우리은행 위비를 꺾는 대이변이 발생했다. 삼성생명은 지난 2019년에 이어 2회 연속으로 플레이오프에서 우리은행의 덜미를 잡으며 '천적'으로 떠올랐다. 정규리그 4위 팀이 1위 팀을 꺾고 챔피언 결정전에 오른 것은 2001년 겨울리그의 한빛은행(우리은행의 전신) 이후 정확히 20년 만이다.

하지만 삼성생명이 이번 시즌을 진정 '해피엔딩'으로 끝내기 위해서는 플레이오프에서 신한은행 에스버드에게 2연승을 거둔 KB스타즈의 벽을 넘어야 한다. 플레이오프에서도 많은 농구팬들이 우리은행의 승리를 예상했던 것처럼 이번 챔프전에서도 대부분의 농구팬들은 KB의 우승을 전망하고 있다. 과연 삼성생명은 챔프전에서도 한 수 위의 전력을 가졌다고 평가 받는 KB의 발목을 잡을 수 있을까.

22득점 25.5리바운드, 박지수 막을 자 누구인가
 

▲ 현 시점에서 WKBL에 박지수를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선수는 아무도 없다. ⓒ 한국여자농구연맹


봄 농구에서만 5번의 트리플 더블을 기록했던 정선민에 이어 포스트시즌에서 역대 두 번째로 트리플더블을 기록한 김단비의 저항이 거셌지만 역시 신한은행은 KB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KB는 플레이오프 미디어데이에서 박지수가 공언했던 것처럼 단 2경기 만에 신한은행을 꺾고 챔피언 결정전까지 4일의 휴식일을 벌었다. 홈코트 어드벤티지는 물론이고 체력적으로도 더욱 유리한 시리즈를 펼칠 수 있다는 뜻이다.

정규리그 7관왕의 주인공이자 현존하는 WKBL 최고의 센터 박지수는 플레이오프 2경기에서 22득점 25.5리바운드 4.5어시스트 3블록슛을 기록하며 골밑을 완전히 지배했다. 신한은행 선수단이 플레이오프 2경기에서 기록한 전체 리바운드 55개의 92.7%를 박지수 혼자 기록한 것이다. 박지수가 골밑에서 보여준 지배력만 보면 1차전 23득점, 2차전 21득점이 오히려 아쉽게 느껴졌을 정도.

박지수의 위력을 잘 알고 있는 신한은행은 박지수가 골밑에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도록 철저한 도움수비에 들어갔다. 하지만 KB는 유기적인 볼 움직임을 통해 외곽에서 슛기회를 만들며 신한은행의 도움수비를 무력화시켰다. 특히 1차전에서 3점슛성공률 21%에 그치며 고전했던 KB는 2차전에서 45.45%의 확률로 10개의 3점슛을 적중시켰다. 그 중에는 2쿼터 경기의 기선을 제압한 박지수의 3점슛도 있었다.

챔피언 결정전에서도 삼성생명 선수들은 철저한 압박수비로 박지수를 괴롭힐 것이다. 따라서 KB는 박지수가 많은 득점을 책임지기 보다는 팀 플레이를 통해 심성영, 강아정, 최희진으로 이어지는 '외곽 삼총사'에게 많은 기회를 주는 작전을 들고 나올 확률이 높다. KB의 외곽슛이 원활하게 터지면 삼성생명 수비가 박지수에게만 집중할 수 없고 삼성생명의 수비가 외곽으로 분산되면 KB는 더욱 편안하게 시리즈를 이끌어 갈 수 있다.

KB는 프로 출범 후 준우승만 6번 기록하다가 박지수가 생애 첫 MVP를 수상한 2018-2019 시즌 처음으로 통합 우승을 차지했다. 박지수는 이번 시즌 두 번째 MVP트로피를 들어 올리면서 "앞으로 10번은 더 받고 싶다"는 소감을 밝혔고 KB 역시 박지수와 함께 하는 동안 계속 우승컵을 들어 올리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다. 현 시점에서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을 이을 다음 시대의 왕조에 가장 가까운 팀이 KB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플레이오프 기세 몰아 챔프전까지 달린다
 

▲ 삼성생명의 최고령 선수 김보미는 몸을 사리지 않는 투혼으로 후배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 한국여자농구연맹


승률 .467(14승16패)의 삼성생명이 플레이오프에서 승률 .733(22승8패)의 우리은행을 잡았다. 심지어 두 팀은 정규리그에서도 우리은행이 5승1패로 일방적으로 앞서 있었다. 양 팀의 승률이나 상대전적만 보면 삼성생명의 플레이오프 승리를 우연이나 기적이라고 표현해도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삼성생명의 이변은 우연도 기적도 아닌 임근배 감독과 삼성생명 선수들이 만들어 낸 '실력'이었다.

1차전을 5점 차이로 아쉽게 패한 삼성생명은 안방으로 자리를 옮긴 2차전에서 26득점 11리바운드의 윤예빈, 22득점 9리바운드의 김한별, 3점슛 4방을 터트린 김보미의 활약에 힘입어 시리즈의 분위기를 바꾸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3차전에서 16득점 7리바운드의 배혜윤, 11득점 10리바운드의 김단비가 선전하면서 무기력한 경기를 펼친 우리은행을 64-47로 완파하고 2018-2019 시즌에 이어 두 시즌 만에 다시 챔프전에 진출했다.

삼성생명에는 KB의 박지수나 우리은행의 박혜진 같은 확실한 에이스가 없다. 실제로 삼성생명은 플레이오프 1, 2, 3차전에서 팀 내 최다득점 선수가 각각 김단비, 윤예빈, 배혜윤으로 경기마다 모두 달랐다. 3차전에서는 2000년생 신예가드 신이슬이 3점슛 2방과 함께 5스틸을 기록하며 '깜짝 활약'을 펼쳤다. 다시 말해 삼성생명은 코트에 나선 모두가 주역이 될 수 있을 만큼 고른 전력을 자랑한다는 뜻이다.

물론 삼성생명이 KB에 비해 객관적인 전력이 떨어지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팀 내에 35세 전후의 베테랑 선수가 많고 우리은행과 3차전까지 가는 접전을 치르면서 체력적으로도 지쳐 있다. 게다가 KB의 기둥 박지수는 배혜윤이나 김한별이 1대 1로 제어할 수 있는 빅맨이 아니다. 삼성생명이 KB를 잡기 위해선 기발한 '묘수'가 필요한데 6시즌 째 삼성생명을 이끌고 있는 임근배 감독이 KB를 상대로 어떤 전략을 들고 나올지 주목된다.

WKBL 출범 후 6시즌 동안 4번의 우승을 차지했던 삼성생명은 박정은과 변연하, 이종애가 활약했던 2006년 여름리그를 끝으로 15년 동안 챔프전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다. 같은 시기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이 찬란한 왕조시대를 보냈고 KB가 본격적으로 전성기를 맞은 데 비해 삼성생명의 지난 15년은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따라서 과거의 영광을 되살리고 싶은 삼성생명에게 이번 챔피언 결정전은 대단히 중요한 시리즈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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