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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인-고의정-이고은, 이번 시즌 V리그 MIP는?

[프로배구] 출전 시간 늘어나면서 지난 시즌 대비 기량 크게 향상된 선수들

등록|2021.03.09 07:35 수정|2021.03.09 07:35
NBA에서는 매 시즌이 끝나면 MVP와 신인상, 식스맨상, 올 NBA 팀, 올 NBA 디펜시브팀과 함께 MIP(Most Improve Player)를 선정한다. 말 그대도 이전 시즌과 비교해 가장 기량이 발전한 선수에게 주는 상이다. 트레이시 맥그레디, 폴 조지(LA 클리퍼스), C.J. 맥컬럼(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 야니스 아테토쿤포(밀워키 벅스) 등 MIP 수상 후 NBA를 대표하는 슈퍼스타로 성장한 선수도 적지 않다.

V리그에서도 컵대회에서 MIP를 선정해 대회 종료 후 수상한다. 하지만 V리그 컵대회의 역대 기량발전상 수상자들을 보면 이전 대회에 비해 기량이 발전한 선수보다는 아쉽게 MVP수상에 실패한 선수에게 주는 '장려상' 또는 '아차상'의 성격이 강하다. 실제로 지난 2013년부터 제정된 역대 컵대회 MIP 수상자를 보면 단 한 번도 빠짐없이 준우승팀에서 가장 활약이 좋았던 선수가 수상자가 됐다.

하지만 만약 V리그에도 NBA처럼 진정한 의미의 기량발전상이 존재했다면 매 시즌 젊은 선수들 사이에서 대단히 치열한 경쟁구도가 펼쳐졌을 것이다. 이번 시즌 역시 지난 시즌에 비해 기량이 발전한 젊은 선수들이 유난히 많아 MIP라는 타이틀이 있었다면 배구팬들은 물론 선수들에게도 큰 관심을 모았을 게 분명하다.

김다인에게 부족한 건 실력 아닌 '기회'였다
 

▲ 김다인은 이다영 이적 후 이적생 이나연을 제치고 현대건설의 세터 계보를 잇고 있다. ⓒ 한국배구연맹


2017년 현대건설 힐스테이트에 입단한 김다인은 2018-2019 시즌 이다영(현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에 가려 단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다영이 대표팀에 차출돼 출전하지 못한 2019년 컵대회에서 주전으로 활약한 김다인은 고예림과 환상의 호흡을 과시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고 라이징 스타상까지 받았다. 하지만 김다인은 2019-2020 시즌에도 여전히 3경기에서 5세트를 소화하는데 그치며 시즌 내내 웜업존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던 작년 4월, FA자격을 얻은 이다영이 흥국생명으로 이적하면서 김다인에게도 기회가 찾아오는 듯했다. 하지만 현대건설은 V리그를 기준으로 프로 입단 후 세 시즌 동안 단 6경기 밖에 출전하지 못한 경험이 적은 김다인을 주전 세터로 신뢰할 수 없었다. 결국 현대건설은 작년 5월 IBK기업은행 알토스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프로무대에서 잔뼈가 굵은 중견 세터 이나연을 영입했다.

많은 배구팬들이 이번 시즌 현대건설의 주전세터는 이나연이 될 것이라 예상했지만 개막전에서 이도희 감독의 선택을 받은 세터는 바로 김다인이었다. 팀에 합류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기존 선수들과 손발을 맞출 시간이 부족했던 이나연보다는 프로 입단 후 3년 동안 꾸준히 현대건설의 주전 선수들과 연습을 해온 김다인이 공격수들과의 호흡이 더 잘 맞을 거라는 계산이었다.

지난 시즌 정규리그 1위였던 현대건설은 이번 시즌 최하위의 위기에 놓여 있다. 하지만 28경기에서 2512개의 세트를 시도한 김다인은 26경기에서 950개의 세트를 시도한 이나연을 제치고 현대건설의 주전 세터로 활약했다. 시즌을 거듭할수록 공격수들과의 호흡도 점점 좋아지고 있는 김다인 세터가 경험만 더 쌓이면 이숙자(KBS N 스포츠 해설위원)와 염혜선(KGC인삼공사), 이다영에 이어 현대건설의 차세대 세터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인삼공사의 고질적인 약점 지워줄 유망주
 

▲ 수비만 좀 더 안정된다면 고의정은 더욱 위력적인 윙스파이커가 될 수 있다. ⓒ 한국배구연맹


인삼공사의 고질적인 약점은 바로 외국인 선수의 공격 부담을 덜어줄 윙스파이커 자리다. 인삼공사는 과거부터 마델라이네 몬타뇨를 비롯해 조이스 고메즈 다 실바, 헤일리 스펠만, 알레나 버그스마, 발렌티나 디우프 같은 특급 외국인 공격수를 거느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언제나 50%를 넘나드는 공격 점유율을 책임져야 했다. 왼쪽을 책임져야 할 국내 윙스파이커들의 지원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번 시즌에도 인삼공사는 최은지와 짝을 이룰 윙스파이커 문제로 고민이 많았다. 신인왕 출신의 지민경은 건강한 시즌을 찾기가 힘들 정도로 부상이 잦고 고민지는 점점 체격이 커지고 있는 V리그에서 붙박이 주전으로 활약하기엔 신장(173cm)이 너무 작다. 그렇다고 183cm의 좋은 신장을 가진 신인 이선우가 리그에서 통할 수 있는 '경험'이 하루 아침에 쌓이는 것도 아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번 시즌 인삼공사에 고의정이라는 젊고 가능성 많은 유망주가 등장한 것은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시즌 28경기에 모두 출전하며 인삼공사의 주전 윙스파이크로 활약한 고의정은 35.64%의 공격성공률로 141득점을 올렸다. 이는 V리그 정상급 공격수 중 한 명인 박정아(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의 공격성공률(34.55%)을 능가하는 수치다(물론 박정아의 공격시도는 1230회로 고의정의 303회보다 4배 이상 많다).

이제 프로에서 세 시즌째를 보내고 있는 고의정은 앞으로 개선해야 할 부분이 더욱 많다. 특히 이번 시즌 23.85%에 그치고 있는 리시브 효율을 30%대 식중반까지 끌어 올려야만 프로팀의 붙박이 윙스파이커로 활약할 수 있다. 하지만 2000년생에 불과한 고의정은 아직 미래가 창창한 젊은 선수다. 지금 같은 속도로 성장한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충분히 인삼공사의 핵심 윙스파이커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리그에서 가장 바빠진 170cm 단신세터
 

▲ 이고은은 이번 시즌 리그에서 유일하게 3000개 이상의 세트를 시도한 세터다. ⓒ 한국배구연맹


170cm의 단신세터 이고은은 프로 초창기부터 작은 체구의 단점을 뛰어난 수비와 빠른 토스, 그리고 부지런한 움직임으로 커버하는 유형의 세터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신장의 약점은 이고은의 노력이나 지도자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고은은 작은 신장 때문에 언제나 블로킹에서 약점을 보일 수 밖에 없었고 좋은 기량을 인정 받으면서도 언제나 백업 세터 신세를 면치 못했다.

도로공사 시절엔 이효희 세터(도로공사 코치), 기업은행 시절엔 김사니 세터(기업은행 코치)의 백업으로 활약했던 이고은 세터는 2018년 GS칼텍스 KIXX로 이적한 후에도 붙박이 주전으로 활약하지 못했다. 차상현 감독이 상대적으로 신장(175cm)이 더 크고 운동능력이 좋은 안혜진 세터와 이고은 세터를 번갈아 가며 활용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고은 세터는 프로 데뷔 후 7시즌 동안 한 번도 붙박이 주전으로 활약하지 못했다.

그러던 작년 이효희 세터의 은퇴로 세터 자리에 구멍이 뚫린 도로공사의 김종민 감독은 친구인 GS칼텍스의 차상현 감독에게 구조신호를 보냈고 이고은은 트레이드를 통해 도로공사로 이적했다. 그렇게 처음 프로 생활을 시작했던 '친정' 도로공사에 4년 만에 복귀한 이고은은 자신보다 어린 선수가 한 명도 없는 도로공사에서 주전 BEST7 중 가장 나이가 어린 야전사령관으로 팀의 공격을 배분하고 있다.

도로공사에는 백업세터로 182cm의 장신세터 안예림이 있지만 세트 점유율이 1.51%에 불과할 정도로 아직 실전에서 활용하기엔 부족한 부분이 많다. 따라서 이고은 세터가 전 경기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며 8일 현재 무려 3243회의 세트를 시도하고 있다. 이번 시즌 세트시도 3000회를 넘긴 세터는 여자부에서 이고은이 유일하다. 프로에서 한 번도 붙박이 주전으로 활약한 적이 없는 이고은 세터는 이번 시즌 리그에서 가장 바쁜 세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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