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금니 두 개와 맞바꾼 내 인생의 책
[내가 쓴 '내 인생의 책'] 13화 <논어>
▲ 공자 동상 ⓒ pixabay
밥 먹는 것조차 잊게 했던 <논어> 저술 작업
중국인들은 공인(公人)으로 사회 생활의 공간에서는 유교를 지향하면서 살고, 사인(私人)으로서 개인 생활의 공간에서는 도교를 지침으로 삼아 살아간다는 말이 있다. 중국 사회와 중국인들의 의식과 사상의 저변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논어>와 '노자(老子)'라는 두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는 말이리라.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를 "배우고 때로 익히니"라고 옮기면 잘못입니다
<논어(論語)>는 유학에서 가장 중요한 경전으로서 가히 동양 사유체계의 토대를 조형해낸 기본서이자 모태(母胎)였다. 동양 사회의 형성과 그 사유체계는 결코 <논어>와 분리시켜 논하기 어렵다. 그만큼 <논어>의 영향력은 그 연원이 심오하고 뿌리가 깊다.
<논어>는 철학, 정치, 경제, 교육, 법률, 문예 등 모든 분야를 두루 다루고 있다. 비록 전체적으로 문장 구성은 간략하지만 그 의미는 오히려 대단히 풍부하고 그 내용 또한 심오하여 이후 동양 사회의 모든 분야에 근본적이고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논어> 첫 문장인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는 흔히 "배우고 때로 익히니"로 해석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전통적' 해석은 이후 유학을 사회적 실천에서 분리시키고 '수신(修身)'의 개인적 차원과 '이론'의 추상성에만 가두는 틀로서 작동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해석은 공자의 사상에서 '수신(修身)'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반면 실천과는 분리시킴으로써 결국 유학의 '이론 지상주의'와 생동감을 잃은 '죽은 학문'의 경향성을 강화하는 요인으로 작동해왔다. '습(習)'이라는 한자의 본래 뜻은 '어린 새가 날기를 연습하다'로서 어디까지나 '실천하다'로 해석되어야 한다. 즉,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의 뜻은 "배우고 때로 실천하니"여야 한다.
공자가 강조한 것은 어디까지나 '학이치용(學以致用)'이고 '실천'이었다. 실제 공자의 일생 자체가 시종여일 실천을 가장 우위에 둔 삶이었다. 그는 <논어> '자로'편에서 "말을 하게 되면 반드시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言之必可行也)"라고 하여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실천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굳이 나의 길을 간다"
흔히 공자를 딱딱하고 보수적이며 권위적인 인물로 생각하지만, 실제 그는 손아랫사람이나 하층의 사람에게도 언제든 가르침을 받으려는 자세를 가지고 평생 학문에 열중하고 그 실천에 최선을 다했던 겸손하고 성실한 인간이었다. 반면에 권력을 자기 마음대로 휘두르는 위정자에 대해서는 비록 그 면전(面前)이라도 기탄없이 비판하며 옳은 길을 가도록 설파했으며, 탐욕을 추구하여 오로지 자기 이익만을 좇는 자들의 행위는 맹렬히 비난하였다. 그러나 결코 가난하다거나 배우지 못했다는 이유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았다.
공자는 일평생 세상에 나아가 어진 정치를 펼쳐 난세를 바로잡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는 어디에서도 결국 온전하게 등용되지 못했다. 공자가 의도했던 것은 일시적인 성패득실이 아니었다. 끊임없는 궁중변란과 전란이 이어지고 기근으로 백성들이 도탄에 빠지는 난세 속에서 그가 바라던 것은 사회의 장기적인 안정과 백성들의 행복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당대 통치자들과 타협하지 않고 일이관지, 끝까지 자신의 주장을 실천해 나갔으며,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굳이 그렇게 함(知其不可而爲之)'으로써 제세구민(濟世救民)의 삶과 정신을 구현하였다. 그리하여 현실정치에서 그는 실패한 듯 보였지만 그러나 그는 위대한 성취를 이뤄냈고, 마침내 그의 사상은 중국을 비롯한 동양 사회에서 주도적인 지위를 점하였다.
'내재화된 마음의 양식'으로서의 <논어>
공자는 국가 운영에서 민심(民心)이 가장 중요한 관건이라고 강조하였다. 그는 정치란 민중의 신뢰가 없으면 결코 존립할 수 없다고 단언하면서, 군사보다 양식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민중의 신뢰 그리고 민심이라고 강조하였다. 또한 걱정해야 할 것은 '재부의 부족'이 아니라 바로 '재부 분배의 불균형'이라는 '환불균(患不均)'을 역설하였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오늘날 우리 시대에서도 가장 강력한 기본이며 원칙이 아닐 수 없다.
<논어>는 우리 선조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겨온 '마음의 양식(糧食)'이었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도 '내재화된 마음의 양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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