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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 투기 의혹, 학생들에게 물어보니... "저라도 할 거예요"

[아이들은 나의 스승] LH 논란에도 고등학생들이 무덤덤한 이유

등록|2021.03.15 12:38 수정|2021.03.15 12:38

▲ 지난 4일 오전 경남 진주시 충무공동 한국토지주택공사(LH) 본사 앞에 빨강 신호등이 켜져 있다. ⓒ 연합뉴스

 
이 와중에도 아이들은 놀라지 않았다. 그런 상황이면 누구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태연하게 말했다. 예외도 거의 없었다. 얻게 되는 이득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 선택이 다를 수 있다며 이죽거리는 아이가 몇 있었을 뿐이다. 억 단위라면 물어보나 마나라고 답했다.

LH 직원들의 투기 의혹에 대한 요즘 아이들의 반응이다. 격분하는 여론을 모르지 않을 텐데도 아이들은 새삼스럽지 않다는 듯 심드렁한 얼굴이다. 곧장 이게 어디 어제오늘의 일이냐며, 누구나 부동산 하면 반사적으로 투기라는 단어부터 떠올리게 되지 않으냐고 되묻기도 했다.

"지금 나는 LH 직원이다. 업무 특성상 정부의 개발 계획을 알게 됐다. 복무 규정상 그렇게 얻은 정보로 사적 이익을 취하지 못하게 돼 있다. 그런데, 위법을 증명하기 힘든 까닭에 법적 처벌의 위험 부담이 적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이렇게 물었다가 조롱만 당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학급마다 한두 명 빼곤 답변이 똑같았다. 그 한두 명도 실제로 그런 일을 맞닥뜨리면 어떤 선택을 할지 모르겠다고 한 발 뺐다. 몇몇은 대놓고 물어볼 걸 물어보라며 면박을 줬다. 열이면 열 모두 '투기'를 선택했다.

'10억만 준다면 기꺼이 감옥에 가겠다'는 아이들을 너무 순진하게 본 것일까. 무엇이 올바른 선택인지 모르진 않지만, 누구도 그 올바름에 연연하지 않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올바름을 위해 눈앞의 이익을 포기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는 한 아이의 말이 가슴에 박혔다.

"아니꼬우면 우리 회사에 오든가…"

국민적 공분을 일으킨 한 LH 직원의 이 말조차 아이들은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기분은 나빠도 누구나 인정하는 현실 아니냐는 거다. 드물게는 재수 없이 걸렸다거나, 속내를 솔직하게 표현한 것도 죄가 되느냐며 짐짓 두둔하는 아이도 있었다.

놀랍게도, 아이들은 그들의 위법 행위를 공기업의 특혜 정도로 여기는 듯했다. 공기업을 두고 '신의 직장'이라고 부르는 건 아이들이라고 다를 바 없다. 대학에만 서열이 있는 게 아니라, 직장에도 엄연히 위계가 있다고 선선히 말한다. 요즘 들어 장래 희망이 공기업 취직이라고 말하는 아이도 적지 않다.

그들은 부모님의 건물이나 토지, 사업 등을 물려받을 수 있는 소수 특권층이 아니라면, 직장 서열에 따라 계급이 결정된다고 말한다. 중소기업 위에 대기업과 공무원이 자리하고, 맨 꼭대기에 공기업이 있다는 거다. 한 아이는 그 수직적 피라미드 구조를 인도의 카스트 제도에 비유했다.

하긴 지난해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의 일괄 정규직 전환 방침을 두고 극단적인 사회적 갈등이 야기된 것도 그곳이 '신의 직장'이었기 때문이다. 변변찮은 일반 기업이었다면, 오히려 갈등은커녕 모범사례라며 모두가 격려를 보냈을 것이다. 이는 아이들도 동의하는 바다.

천신만고 끝에 정정당당 시험을 통해 공기업에 합격했다면, 노력에 대한 합당한 보상이 있어야 한다. 아이들이 이구동성 말하는 '공정'과 '정의'란 이런 것이다. 수백, 수천 대 일의 경쟁률을 뚫어야 하는 공기업이라면 보상의 규모는 더욱 커져야 한다고 믿는 이유다.

아이들은 인천국제공항공사 직원의 높은 연봉과 처우에 문제의식을 느끼기는커녕 당연하게 여긴다. '신의 직장' 중에서도 단연 으뜸이라는 곳이니, 그만한 보상이 없다면 오히려 정의롭지 못한 것이라고 말한다. 취업하기 힘든 곳일수록 보상은 비례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LH 직원의 평균 연봉이 8100만 원에 이른다는 뉴스에도 부러워할지언정 뭐가 문제냐고 잘라 말했다. 아이들 대다수는, 말 그대로, 아니꼬우면 시험 봐서 합격하면 되지 않느냐며 대놓고 반문한다. 고작 '있는 놈들이 돈을 더 밝힌다'며 손가락질하는 게 전부다.

"남들 다 하는데 나만 안 하면 바보 아닌가요?"

요즘 아이들에겐 극단적인 경제적 양극화도 '공정'하면 '정의'로 인식된다. 그러하기에 경쟁에서 끝내 이긴 자가 누리는 특혜와 특권 의식도 용인된다. 도리어 그것을 지적하는 이가 있다면, 대번 지질한 몽니라고 비난하기 일쑤다. '패자는 말이 없어야 한다'는 거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LH 직원들의 투기 의혹에 대한 들끓는 분노에 온도차가 느껴진다. 몇몇 아이들은 정부와 언론을 향해 호들갑을 떤다고 표현했다. 초등학생조차 장래 희망을 건물주라고 적는 마당에, 정부의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 선포가 생뚱맞게 들린다고 덧붙였다.

"남들 다 하는데 나만 안 하면 바보짓 아닌가요? 너 혼자 잘났냐며 자칫 놀림감이 될 수도 있어요. 관련 부서 내에 그런 분위기가 팽배해있었을 거라고 봐요."

한 아이는 이번 사달을 학교생활에 빗댔다. 해서는 안 될 일인 줄 뻔히 알면서도 선후배와 친구들에 휩쓸려 일탈 행위를 저지르는 경우와 비슷할 거라고 확신했다. 자신의 경험이라면서, 친구도 그렇게 사귀었고, 한때 술과 담배도 그렇게 배웠단다.

혼자라면 엄두도 못 낼 일도 함께하면 만용을 부리게 된다는 아이의 경험담은 묘한 설득력이 있다. 그는 목을 건다는 시늉을 하며 LH 내의 오랜 관행이었을 거라고 장담했다. 결국 '꼬리가 밟힌' 일부 직원들을 일벌백계한다고 뿌리 뽑히긴 어려울 거라고 확언했다.

시험 때의 커닝에 비유하는 아이도 있었다. 적발될 확률은 낮고 일순간에 내신 등급을 끌어올릴 수 있다면, 누구라도 앞뒤 잴 것 없이 시도하게 된다고 말했다. 인지상정 아니냐고 되묻기까지 했다. 그는 커닝을 옳고 그름이 아닌, 배짱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로 여겼다.

요지인즉슨 이랬다. 세상에 커닝 한 번 안 하고 학교를 졸업한 사람은 없다. 사람들은 마치 학창 시절의 추억인 양, 커닝이라는 부정행위를 은근히 두둔한다. 그런데, 대수롭지 않게 내뱉는 이 말이 커닝을 주저하는 아이들에게 용기를 주게 되고, 교실에서 커닝이 횡행하도록 만든다는 논리다.

아이들조차 핵심을 꿰뚫고 있다. 이번 사달은 LH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갈 땅과 집이 이윤을 창출하는 상품이 돼버린 세상에서 누가 LH 직원이 되든 '생선을 가득 손에 쥔 고양이'일 수밖에 없다는 거다.

아이들은 LH를 '도둑놈의 소굴'이라고 욕하면서도 틈만 나면 부동산 투자 정보를 검색하는 기성세대의 행태를 문제 삼았다. 온 국민이 '잠재적 부동산 투기꾼' 아니냐는 거다. 한 아이는 LH 직원들의 위법 여부를 떠나 상대적 박탈감에다 내심 부러움이 뒤섞인 '이기적인 분노'라고 꼬집기도 했다.

온 국민이 잠재적 부동산 투기꾼이라는 아이들
   

▲ 광명·시흥 신도시가 들어설 부지를 LH 직원들이 조직적으로 사들였다는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4일 LH 직원 매수 의심 토지인 시흥시 과림동 현장에 묘목이 식재돼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LH 이야기로 수업의 절반을 흘려보냈다. 실은 실시간 쌍방향 수업 시작 전 네트워크가 불안정해 시간을 벌기 위해 꺼낸 주제였다. 접속이 원활하지 못한 상황에서 일부 아이들을 배제한 채 무작정 진도를 나갈 수는 없었다. 그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LH 계기 수업'이 돼버렸다.

아이들은 이구동성 투기 의혹이 있는 LH 직원들만 엄벌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고 못 박았다. 대화 도중 몇몇은 대체 '부동산 투기'와 '부동산 투자'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묻기도 했다. 온 국민이 부동산으로 '한탕'을 노리는 사회가 이번 사달의 '숙주'라는 점에는 모두가 동의했다.

여기서 간과해선 안 될 문제가 있다. '투기'라며 손가락질을 받든, '투자'라며 부러움을 사든, 부동산을 통해 이윤을 추구하는 것에 대해 아이들은 별 문제의식이 없다는 점이다. 그들은 어차피 모든 걸 상품으로 사고파는 세상에서 부동산이라고 다를 게 뭐냐고 되묻는다.

요즘 금융과 부동산 전문가를 꿈꾸는 아이들이 크게 늘었다. 그들의 꿈을 폄훼하는 것 같아 조심스럽긴 하지만, 거칠게 말해서,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뜻이다. 서둘러 어른이 되고 싶은 이유를 로또를 사기 위해서라고 천연덕스럽게 대답하곤 한다. '인생은 한 방'이라면서.

아이들도 안다. 부를 자랑하며 가난한 이들 위에 군림하지 않는 사회가 되지 않고서는 '한탕주의'가 결코 뿌리 뽑히지 않을 것임을. 투기 등 불의한 방법으로 축적한 부조차 부러워하는 현실이 바뀌지 않는 한 그 어떤 제도가 도입돼도 편법이 난무하게 될 것임을.

하지만, 도덕적 당위와 근본적인 해법은 물신이 지배하는 현실과 욕망 앞에서 힘을 잃는다. 신자유주의의 세례를 받으며 나고 자란 요즘 아이들에게 물신주의는 극복해야 할 사회 문제가 아니라 몸에 밴 일상이다. 여론이 들끓는 이 와중에도 그들이 무덤덤한 이유다.

사족.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임대 아파트와 분양 아파트의 격리와 차별 행위가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곤 했는데, 요즘 아이들은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들끼리 어디에 사는지, 집값이 얼마인지 공공연히 묻고 끼리끼리 사귄다. 경제력이 학업성적과 정비례한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닐뿐더러, 아이들에겐 그것도 '공정'이고 '정의'다. 머지않은 미래, 우리 사회가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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