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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명당 주인이 말하는 10년 전 1등 당첨자의 현재

[인터뷰] 포항 복권판매점 운영자 이두성씨의 철학 "형편 맞게 즐기며 행운을 기다려라"

등록|2021.03.20 16:43 수정|2021.03.22 09:48
8145060분의 1. 로또복권 1등에 당첨될 확률이다. 사람이 하루에 벼락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맞을 확률과 비슷하단다. 가능성이 제로(0)에 가깝다는 이야기. 그럼에도 매주 적지 않은 이들이 로또복권을 구입한다.

복권 구매자들은 말한다. "5천 원, 혹은 1만 원짜리 한 장으로 사서 지갑에 넣어둔 로또로 인해 직장생활의 스트레스를 잊고 한 주를 웃으며 견딜 수 있다"고.

서울의 아파트 한 채 가격이 20~30억 원을 가볍게 뛰어넘는 한국. 큰 부자들에겐 10~20억 원을 오가는 로또복권 당첨금이 크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서민들에게 이 돈은 '상상 바깥에 존재하는 거금'이다.

2021년 한국의 최저임금은 182만2480원. 로또당첨금은 최저임금을 받은 이들의 50~100년치 연봉에 해당되는 금액. '삶의 조건'을 바꿀 수 있는 돈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경상북도 포항시 육거리엔 '로또 명당'으로 불리는 복권 판매점이 있다. 여기서 로또 1등 당첨의 행운을 선물 받은 사람은 7명. 2등은 무려 35명이다. '1등 당첨 7명·2등 당첨 33명'이란 현수막을 만들어 건 이후에도 2등 당첨자가 2명 더 나왔다고 한다.

이 로또 판매점을 운영하는 사람은 이두성(68)씨. 조부 때부터 3대째 같은 장소에서 장사를 해왔다. 그는 로또 1등 당첨자의 기쁨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이다. 게다가 1등 당첨자가 선물한 소고기와 대게를 맛보기도 했다.

로또복권을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대체 어떤 사람들이 1등에 당첨되는 걸까?' '로또 1등 당첨자들은 어떤 꿈을 꾸었을까?'라는 궁금증을 가졌을 터. 나 역시 그걸 알고 싶었다.

궁금증을 풀기 위해 지난 11일 육거리 로또 판매점에서 이두성씨를 만났다. 그는 편안한 미소를 지으며 1등 당첨자들에 대한 이야기와 더불어 자신이 가진 '복권 철학'까지 숨김없이 들려줬다. 아래 그날 오간 이야기를 요약해 옮긴다.

아내가 '금반지 꿈' 꾸던 날, 첫 1등이 나왔다
 

▲ 로또 1등 당첨자가 7명 나온 판매점을 운영하는 이두성 씨는 "복권에 과도하게 몰입하는 건 좋지 않다"고 충고한다. ⓒ 홍성식


- 육거리에서 가게를 한 건 언제부터인가.

"난 1953년생이다. 이 위치에서 할아버지 때부터 가게를 운영했다. 내가 이어받아서 한 것도 40년에 가깝다."

-로또 판매점을 시작한 시기는?

"로또복권 판매가 시작된 게 2002년 12월이다. 기획재정부 산하 복권위원회가 로또복권 사업을 시작한 지 20년에 가깝다. 1회가 시작될 즈음 판매점 모집을 대행하던 회사가 찾아와 판매점을 해보라고 권했다. 우리 가게 위치가 좋아서였을 것이다.

이전에 스포츠토토복권 판매점 제의가 있었을 때는 구매자들이 어렵게 생각할 듯해 하지 않았다. 하지만, 로또는 게임 방법이 간단하고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제의에 응했다. 로또복권이 처음 시작됐을 때 포항엔 판매점이 대략 50개쯤이었다."

- 같은 자리에서 오래 가게를 운영했는데.

"조부에 이어 아버지가 담배와 잡화 등을 판매하는 육거리상회를 운영했다. 내가 포항제철에 근무하다가 30대에 가게를 이어받았으니 3대째 장사를 하고 있는 셈이다. 로또 판매점을 하기 전에는 슈퍼마켓을 했다. 예전엔 이 근처에 큰 극장이 있었고, 거기서 예비군·민방위 교육, 공무원 관련 강연 등이 열려 오가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지금처럼 24시간 편의점이 많이 생기기 전엔 장사가 꽤 잘됐다."
   
- 첫 번째 로또복권 1등 당첨자가 나온 날은 어떤 기분이었나.

"119회 때다. 그때 나는 등산 중이어서 우리 가게에서 1등이 나왔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다만, 당첨자가 나오기 전날 아내가 '금반지가 내 눈앞에서 반짝이는 꿈을 꾸었어요'라고 하는 이야길 들었다. 복권 판매점을 시작한지 대략 2년쯤 지나서 첫 번째 로또 1등 당첨자가 나온 것이다."

- 로또복권 추첨 초기에는 판매점에도 장려금을 줬다고 들었다.

"초창기 때는 그랬다. 내가 기억하기로 1등 당첨자가 나온 판매점에 장려금 5천만 원을 줬다. 그러다가 그게 2천만 원으로 내려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장려금 제도는 사라졌다. 나는 장려금은 받은 적이 없다."

- 이 가게에서 로또 당첨자가 많이 나왔다. 주위에선 어떤 반응인가.

"1·2등 당첨자가 포항에서는 가장 많이 나온 것으로 안다. 대구·경북 전체로 봐도 15번 정도 1등이 나온 대구의 한 판매점과 10여 차례 가까이 1등 당첨자를 낸 경주의 한 판매점 등과 더불어 우리 가게가 다섯 손가락 안에는 든다.

몇 해 전 역학(易學)을 공부하는 분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포항 육거리가 동빈대교와 서산터널의 가운데 위치해 좋은 기운이 자유로이 오갈 수 있는 지역이라고 했다. 거기에 바로 건너편에 오래전부터 금융기관(은행) 자리해 있다. 그게 로또 1등 당첨자가 나온 비결이라면 비결 아닐까싶다(웃음). 선대(先代)로부터 좋은 땅의 가게를 물려받았으니 앞으로도 정직하고 성실하게 장사를 해나가야겠다는 생각이다."

- 가장 기억에 남는 1등 당첨자는 누구인가.

"428회 추첨 때 나온 우리 가게 4번째 1등 당첨자다. 인터넷으로 당첨 결과를 확인해 본 후 한 번 더 재차 확인하기 위해 가게를 찾아왔다. 그때 '이 가게에서 큰 행운을 얻었으니 선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일주일 후쯤 큼직한 택배 상자가 하나 도착했다. 거기엔 한우와 대게가 160만 원어치나 들어있었다. 나와 아내만 먹기가 그래서 동네 주민들과 함께 나눠 먹었다.

그 당첨자는 현재 60대인데 지금도 인연이 이어져 우리 가게에서 가끔 로또복권을 구입하곤 한다. 최근 939회 추첨의 1등 당첨자는 포항의 한 회사 직원인데, 찾아와서 인사를 전했다. 이게 쉽지 않은 일인데, 자신에게 찾아온 행운에 고마움을 전하는 그들의 마음 씀씀이에 나 역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내가 1등 당첨? 기부도 조금 더 많이 하고, 좋은 일에..."
 

▲ '포항의 로또 명당'으로 불리는 육거리 로또복권 판매점. ⓒ 홍성식


- 로또 1등 당첨자들은 좋은 꿈을 꾼다고 들었다.

"428회(2011년 2월 12일) 1등 당첨자에게 아내가 '꿈이 좋았나요?'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어두운 바다에 빠졌는데 거북이가 나타나 등에 태우고 물속에서 빠져나오는 꿈을 꾸었다'는 대답을 들려줬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꿈보다는 평소 좋은 마음을 가지고 선량하게 살아왔으니 행운이 찾아온 게 아닐까?"

- 주로 어떤 사람들이 로또복권을 구입하는가.

"세상살이가 힘들어지고, 경제 상황이 좋지 않으면 복권 판매량이 늘어난다. 우울한 상황이 지속되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복권에 희망을 거는 이들이 많아지는 것 같다. 하지만 복권 구입에 모든 걸 걸면 곤란하다. 가벼운 마음으로 1~2만 원어치 구입하고, 지갑에 들어있는 복권 한 장으로 일주일을 웃으며 사는 게 좋을 듯하다. 아무리 좋게 말해도 복권당첨금이란 노력 없이 얻는 불로소득 아닌가."

- '로또 명당'으로 소문이 나면서 판매량도 많을 것 같다.

"다른 가게에 비해선 잘 팔린다. 웬만한 월급쟁이 수입보다는 우리 가게 복권 판매수익이 많을 듯하다(웃음)."

- 만약 당신이 로또복권 1등에 당첨된다면?

"재밌는 질문이다. 지금도 몇 가지 사회활동을 하며 적게나마 기부를 하고 있다. 복권에 당첨된다면 기부도 좀 많이 하고, 지역사회를 위해 좋은 일을 해보고 싶다. 우리 가게에서 행운을 선물 받아 로또 1등에 당첨되는 분들을 보면 질투가 난다거나, 부럽다는 생각보단 '참으로 잘됐다'는 마음이 먼저 생긴다. 앞으로도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아갈 생각이다."

- 복권 구매자들에게 한마디 해 달라.

"복권 판매금으로 진행되는 각종 복지사업은 유익하고 좋은 것이지만, 지나치게 복권에만 몰두하면 사행심을 부추기는 역효과가 생긴다. 자신의 형편에 맞게끔 적당한 금액의 복권을 사고, 편안한 마음으로 행운을 기다려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경북매일>에 게재된 것을 일부 보완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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