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권고에도 장애인 경사로 설치 거부한 시흥 아파트 논란
주민투표로 이동약자 편의시설 '반대', 장애인단체 "차별 조장" - 아파트 측 "경사 때문에"
▲ 전단지가 붙어 있는 계단, 장애인들은 이 계단을 휠체어가 다닐수 있는 경사로로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다. ⓒ 김영주
"누구는 다닐 수 있고, 누군가는 다닐 수 없으면 그건 차별의 길이다."
이들 단체에 따르면, 앞서 시흥 A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등 관리주체는 장애가 있는 주민 공아무개씨(64세)의 '계단 경사로 설치' 요구를 "비용이 많이 든다"며 거절했다.
시흥시가 "아파트는 법률로 규정된 장애인 등 편의시설 설치 대상"이라며 "장애인, 노인, 유모차가 다닐 수 있도록 하라"고 권고했음에도 경사로를 설치하지 않았다. 대신 A아파트는 이 문제를 주민 투표에 붙였다.
투표 결과 총 240표 중 찬성은 불과 24표, 반대는 130표로 압도적이었다. 나머지 86세대는 기권했다.
계단 경사로 설치를 요구한 공씨는 이날 <오마이뉴스>에 "이게 투표를 할 일인가"라고 반문하며 "투표한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정말 참담했다. 부결됐을 때는 인권을 유린당한 기분이었다"라고 털어놨다.
"500m, 장애인에게는 무척이나 먼 거리"
▲ 장애인 이동권 보장 촉구 기자회견 ⓒ 김영주
공씨의 요구는 계단으로 돼 있는 아파트 후문을 휠체어가 다닐 수 있는 경사로로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공씨 집에서 계단이 없는 정문을 거쳐 오이도역까지 가는 거리는 700m나 된다. 만약 후문을 이용하면 200m밖에 되지 않는다.
공씨는 "500m가, 비장애인에게는 그리 먼 게 아니지만 장애인에게는 무척 먼 거리"라고 후문에 경사로 설치를 요구한 이유를 설명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주민 투표를 실시한 자체를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한 참가자는 "차별을 없애야 좋은 세상인데, 오히려 차별하자는 투표를 했다. 그 투표 과연 정당한가"라고 되물었다.
또 다른 참가자는 "누구는 다니고 누군가는 다닐 수 없다면 그건 차별의 길"이라며 "온전한 길이 되려면 계단을 허물어야 한다. 시흥에 있는 모든 길은 누군가도 갈 수 있는 길이어야 한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누군가의 권리를 박탈하기 위한 투표"라고 목소리를 높인 참가자도 있었다.
해당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관계자는 이 문제와 관련해 "경사가 심해 (휠체어) 운전미숙으로 미끄러져 곧장 도로로 진입하게 되면 자칫 큰 사고가 날 위험이 있다"라고 해명했다. 사고가 날 위험이 있어 경사로를 설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공씨는 기자회견에서 "이 정도 경사면 휠체어 타고 충분히 내려갈 수 있다"라고 반박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장애인단체 활동가, 정의당 당원 등 30여 명이 참여했다. 장애인 10여 명도 휠체어를 타고 나와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참가자들은 "장애인도 주민이다. 이동권을 보장하라"는 구호가 적힌 전단을 후문 계단에 붙이는 퍼포먼스를 하며 기자회견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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