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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일하러 갔다가 돌아왔습니다

경력도 스펙도 마땅치 않은데 어느새 마흔... 글이 쓰고 싶어서 견디는 시간

등록|2021.03.30 12:39 수정|2021.03.30 12:39
이번엔 확실하다. 근무 시간을 조정할 수 있고 공간에 갇히지 않은 1인 활동 업무. 요즘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의 일이었기에 마감 전, 서둘러 지원했고 연락은 바로 왔다. 빌라 청소. 사장은 면접 후 내가 일 잘할 것 같다며 그 자리에서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다. 업무용 자동차 키도 손에 쥐여 주었다.

차 트렁크엔 대걸레, 빗자루, 고무장갑, 극세사 걸레, 세제 등 청소를 위한 도구가 잘 세팅되어 있었다. 회사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며 이만하면 부족함이 없다는 생각에 흥이 나 앞으로 이곳저곳 일하러 다닐 나날을 상상했다. 잘 알지 못하는 직업군에 은근슬쩍 낭만이 끼어드는 순간이었다.

하루에 네 시간, 빌라 열 채. 월, 화, 목, 금, 일주일에 네 번, 급여는 백만 원. 차후에 숙달되면 주5일이든, 6일이든 능력껏 매일 스무 채 이상 청소하고 이삼백만 원이 넘는 급여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운전대를 잡은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당장은 초보니까 반일제로 근무하지만, 더 일하고 더 벌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처음엔 하루 정도 실장과 동행하며 청소하는 스킬을 보라고 했다. 실장은 내 또래인데 십 년 이상 이 일을 해왔고 지금은 청소뿐 아니라, 빌라 이백여 채를 맡아 종합 관리하며 오백만 원 이상 벌어가는 베테랑 일꾼이다.

하지만 출근 당일 사장은 내가 이 분야에 경험이 전무하니 업무를 확실히 익히기 위해 일주일간 수습 기간을 가져보기로 계획을 바꾸었다. 사장과 실장이 나와 함께 다니며 제대로 일을 가르쳐 주겠다고.

빌라 청소일을 시작한 첫 날
 

▲ 청소 일의 모든 동작은 순서에 맞게 정확하고 재빠르게 이루어진다. ⓒ elements.envato


그렇게 시작된 청소 일. 첫날, 첫 시간. 분리수거부터 시작했다. 이 업체가 관리하는 건물의 외부 벽면에는 회사 마크가 그려진 분리수거 안내문과 분리수거 함이 있다. 빌라에 도착하면 일단 곳곳에 쌓인 택배 상자들과 스티로폼을 정리한다. 매대 자루에 같은 종류의 쓰레기끼리 담아 꼭 묶은 다음 수거 업체에서 가져가기 쉽도록 길가에 옮겨 놓는다.

분리수거가 끝나면 주변을 빗자루로 쓸며 담배꽁초, 쓰레기, 낙엽 등을 치운다. 그리고서 본격적으로 빌라 내부 청소에 들어간다. 먼저 입구 유리와 스테인리스 테두리를 깨끗이 닦고 우편함에 광고지를 모아 버린다.

꼭대기 층에 올라가서 바닥을 쓸고 닦으며 내려오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데 올라가는 길에 극세사 걸레로 창문과 소화기, 각 세대 벨과 현관, 손잡이 등을 닦고, 내려오는 길에 비질과 대걸레질을 하며 동시에 난간을 닦는다.

모든 동작은 순서에 맞게 정확하고 재빠르게 이루어진다. 사장과 실장은 계단을 오가며 큰 힘 들이지 않고 쓱싹쓱싹 박자감 있게 움직였다. 어느 한군데 놓치는 구석이 없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도구마다 각각의 요령이 있다.

"아무리 지저분해도 걸레만 지나가면 다 깨끗해져."

어느새 입이 벌어진 나를 보며 실장이 한마디 했다. 하나씩 보고 따라 하니 미숙하지만 할 만했다. 눈썰미가 있고 손이 빨라 금방 잘하게 될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칭찬 같아 기분이 좋았다. 온몸을 움직여 청소를 마치고 반짝거리는 건물을 보니 마음마저 개운했다.

다음 날은 먼 지역으로 나간다고 한 시간 일찍 출근하라고 했는데 아차, 다니던 길이 아니라 막히는 걸 예상치 못했다. 이십 분 정도 지각하고 부랴부랴 도착, 다들 괜찮다고 말해준다. 이동하는 동안 봉고차 뒷좌석에 앉았는데 앞자리에서 출근 시간과 겹쳐 일이 늦어지겠다는 둘의 대화가 들렸다.

다시 어제와 같은 하루가 시작되었고 내 비중은 좀 더 커졌다. 나 때문에 늦었으니 더 잘해야겠다는 마음에 열심을 부렸다. 사장과 실장의 속도를 따라가기 좀 어려웠지만, 하다 보면 늘겠지 하며 부지런히 손발을 움직였다. 중간중간 사장이 내 얼굴을 보고 왜 그렇게 허옇냐며 당 떨어진 것 같다고 음료수를 챙겨 주었다. 할만한지도 계속 물었다. 그때마다 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일을 마치고 어제처럼 회사 차를 운전하며 퇴근했다. 기운은 좀 빠졌지만, 하루의 일당이 쌓이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뿌듯했다. 집에 오자마자 몸이 침대로 향했다. 에구구 앓는 소리가 절로 튀어나왔다. 목덜미, 허리, 손목에 파스를 붙이고 진통제 한 알을 먹었다. 원래 이 정도는 그냥 넘어가지만, 하루, 이틀 일하다 말 것 아니니까. 잠시 쉬다 저녁 준비를 하려는데 사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가라앉은 목소리 톤을 한껏 높여 밝은 목소리로 "네, 사장님!" 사장은 잘 들어갔는지, 들어갈 때 안색이 안 좋아서 전화했다고. "잘 들어왔어요!" 그는 심각한 말투로 계속 일할 수 있는지 묻는다. "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할 수 있을 것 같다가 뭐냐며 할 거면 확실히 대답하라고 한다. 더 큰소리로 또박또박 "잘할 수 있습니다!" 사장은 그러면 독하게 마음먹고 해보라며 전화를 끊는다.

마음이 싸해졌다. 뭐가 사장 마음에 들지 않았나, 근로계약서도 쓰고 차까지 받았는데 지각한 게 문제였을까, 마음가짐이 독해 보이지 않았나, 계단에서 내려오며 걸레질할 때 스텝이 꼬이는 걸 보았을까? 움직임이 너무 느렸지, 걸레질과 비질에 요령이 없었어. 이런 생각이 연이어 들자 머리가 복잡해지고 집안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겨우 이틀 일했고 사장은 초짜 신입이 걱정되어 전화했을 뿐, 다른 생각 말고 내일 더 잘하자 마음을 달리 먹었지만, 잠자리에서 한참 뒤척였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사장이 다시 전화를 해왔다. 밤새 생각해 봤는데 일하는 모습이 불안해 보여 안 되겠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 다리가 후들거려 위험해 보인다, 넘어져 사고라도 나면 큰일이니 본인을 위해서라도 이 일은 그만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말을 길지만 빠르게 꺼냈다.

면접을 볼 때 내 건강에 대한 부분을 제대로 알리지 않고, "건강하다"라고 답변한 게 문제가 될 수도 있단 걸 알았다. 노력하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장님과 통화하며 그분의 마음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부당해고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사장은 차를 가져오면 택시비와 이틀 치 일당을 주겠다 했고 나는 알았다고 대답했다. 그렇지 않아도 몸이 안 좋아 먼저 말하려던 참이었다고.

마흔이 넘도록... 글이 쓰고 싶어서
 

▲ ⓒ elements.envato


지난해 11월 초, 지병이 재발하여 3교대 반도체 공장을 그만두었다. 곧 코로나 시국에 경솔했다는 후회가 덮쳐왔다. 조바심에 지난 사 개월간 여기저기 넣은 이력서만 구십여 통. 연락 온 곳은 열 군데도 되지 않았다. 그중에 일할 기회를 준 곳이 두 군데. 한 곳은 근무 조건이 맞지 않아 내가 나왔고 다른 하나가 여기였다.

반도체 공장도 겨우 일 년 다녔을 뿐, 그전에도 메뚜기처럼 옮겨 다녀 경력도 스펙도 마땅치 않다. 마흔이 넘도록 자리 잡지 못한 까닭은 글이 쓰고 싶어서였다. 어릴 때는 소설가가 꿈이었다. 시에 빠져 시인이 되고 싶은 적도 있었다.

지금은 내 위치에서 보았던 세계에 대해서 쓰고 싶다. 소수자나 사회적 약자, 동물에 관한 글. 그런데 내 삶과 세상의 접점을 찾기가 힘들어 글을 쓰는 것이 쉽지 않다. 딱 일 년만 버틸 만큼 돈을 모으면 제대로 글을 써보겠다고 다짐한 게 이십 년째다.

늘 모자라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물류나 식당, 공장에 나가 밤낮을 있는 힘을 다해 일했다. 그 시간이 나중에 글감이 되리라는 마음으로 버텼다. 이제는 건강도 좋지 않고 지원하는 족족 거절당한다. 마음이 복잡하다.

지금이 바로 오랫동안 바라왔던 일에 집중해야 할 때일까? 아니면 이제라도 오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삶의 기반을 다져야 할까? 무엇이 맞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얻은 시간의 헐거움 덕분에 앉아서 글을 쓸 수 있었다. 지우고만 싶었던 이 어정쩡한 실패의 기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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