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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의 문명 수준 궁금하면, 공중화장실을 보라

[이런 시장을 원한다!] 후보님들 어떤 화장실을 만드시겠습니까?

등록|2021.03.23 07:26 수정|2021.03.23 10:49
2021년 4월 7일 재·보궐선거가 치러집니다. <오마이뉴스>에서는 각계각층 유권자의 목소리를 '이런 시장을 원한다!' 시리즈로 소개합니다. '뉴노멀' 시대 새로운 리더의 조건과 정책을 고민해보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합니다.[편집자말]
 
한 나라의 문명이 어떤지 보려거든 세 가지만 살펴보면 된다.
你要看一个国家的文明,只需考察三件事
첫째, 사람들이 어린아이를 어떻게 대하는가.
第一看他们怎样待小孩子
둘째, 사람들이 여성을 어떻게 대하는가.
第二看他们怎样待女人
셋째, 사람들이 여가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는가.
第三看他们怎样利用闲睱的时间

중국 문인 호적(胡適; 1891~1962)의 말이다. "어린이, 여성, 여가시간(rest)을 어떻게 대하는가?"를 문명의 기준으로 제시한 그의 말은 반세기가 훌쩍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어린이와 여성은 세상에서 가장 수가 많은 소수자 집단이며, 이들을 어떻게 대하는가가 곧 사회의 성숙을 가늠하는 척도로 기능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세 가지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바로 '공중화장실(restroom)'이다.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적인 공간이면서 아주 사적인 시간이 보장되어야 하는 곳, 화장실은 우리 사회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준다.
 

▲ 공중화장실 표지판 ⓒ pixabay


이번 보궐선거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도시, 서울과 부산에서 치러진다. 두 도시의 문명이 곧 한 나라의 문명을 대변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도심의 공중화장실을 떠올려보자. 여성 소변기 칸에는 불법촬영이 범죄임을 알리는 스티커가 붙어 있고, 만일에 대비한 '안심벨'이 설치되어 있다. 지하철 역사 안이나 백화점 등 규모가 큰 건물의 여자 화장실에는 기저귀 교환대, 남아 화장실, 파우더룸이 딸려 있기도 하다. 남자 화장실에는 대부분 없는 것들이다.

공중화장실은 성별이 분리되어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그 사회의 성차를 나타낸다. 여성은 아이를 돌보고 화장도 고치면서 불법촬영을 경계해야 한다. 반면 남자는 편하게 용무를 보고 나오면 그만이다. 화장실만 봐도 양육 부담이 전적으로 여성에게 지워지며 불법촬영과 성폭행 위험에 시달리는 현실이 보인다.

여자 화장실에만 있는 아동용 시설의 의미

국민의힘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는 다른 후보들에 비해 '공중화장실' 관련 공약을 구체적으로 내놓고 있다. 과거 서울시장 재임 당시 시행했던 '여행(女幸) 화장실' 인증제도를 계승하겠다는 취지다.
 

'여행(女幸)화장실' 인증 마크심사를 통과한 공중 화장실은 입구에 서울시 여행(女幸)시설 인증마크가 부착되었다. ⓒ 서울특별시청


변기 수가 남자 화장실보다 많이 확보되어 있고, 기저귀 교환대와 어린이용 대소변기, 가방걸이, 손 건조기, 선반 및 비상벨과 CCTV 등 안전시설을 갖춘 여자 화장실을 '여성이 행복한 화장실'로 인증해주는 정책이다. 간이 화장대가 있다면 더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데, 이 점수표에서 여성이 행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란 화장대이고 생리용품 자판기는 빠져 있다.

화장대에서 꾸밈노동을, 기저귀 교환대에서는 돌봄노동을, 바깥에서 생리용품을 찾아 헤매야 하며, 다시 안에서는 불법촬영 카메라가 있는지 살펴야 하는 위험 부담까지 존재하는 공중화장실이란 여성의 행복과 거리가 멀다.

오 후보는 남자 화장실 내 아동용 시설 확충 계획은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2009년 서울여성가족재단은 정책 평가보고서를 통해 "향후 남자 화장실 내에도 아동용 시설이 적극 확대 권장되어야 한다"고 제안한 바 있다.

안전과 평등은 분절된 문제가 아니다

'여성이 행복한 화장실'을 내세웠지만 돌봄노동으로부터 남성의 자유로움을 재확인하는 정책이다. 여자 화장실에서는 남아용 소변기를 볼 수 있지만 남자 화장실은 그렇지 않다.

여성의 돌봄노동 부담 해소를 위해서는 남자 화장실 내 어린이 시설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아이의 안전이 보장되어야 한다. 문제는 돌고 돌며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결국 '공중화장실 성차별'은 단순히 화장실에서 끝나지 않고 사회구조적 문제로 확장되는 것이다. 불평등한 노동환경 개선, 여성·아동 대상 범죄예방, 보육 정책 등 전방위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따라서 화장실 출입구에 CCTV를 달아 24시간 감시하고 온 도시에 비상벨을 두는 미봉책에서 답을 찾기란 한계가 뚜렷하다. 여성과 아이에 대한 범죄가 만연한 사회에서는 아무리 많은 감시와 보호, 분리로 겹겹이 무장하더라도 약자는 불안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화장대나 가방걸이를 바라지 않는다. 그저 누구나 안전한 공간에서 사적인 시간을 누릴 수 있는 공공시설을 요구할 뿐이다. 안전하고 차별 없는 공공시설은 기본 중 기본이다. 나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수가 많은 소수자인 여성과 아동이 더 이상 범죄 위험에 노출되지 않을 때, 모든 시민이 안전하고 행복한 도시가 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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