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들이 테이블에 손으로 칠한 하나밖에 없는 예술작품너희들의 어지러운 마음의 환한 탈출구가 되어줄게! ⓒ 진실애
초반에 일 시작할 적엔 이모저모로 아이들을 찬찬히 관찰해야 했다. 아동 관련 분야에 오래 종사해 본 적도, 아이를 키워본 적도 없는 나에게 더군다나 다른 문화권의 아이들은 큰 숙제였다. 한 살 남짓부터 취학 전 아이들이 섞여 있는 우리 코끼리 가족반은 다양한 문화권의 (그래도 대부분 독일어가 모국어인) 17명의 아이들과 세 명의 교사 그리고 견습생인 나까지 총 네 명의 교사가 함께하고 있다.
그중 한 아이 O는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몇 번이고 정확히 "Ich bin traurig, ich bin traurig(나는 슬퍼요, 나는 슬퍼)"라고 말했다. 3살 아이가 명확한 감정의 단어를 본인의 표정과 몸의 언어를 동원하여 표현하는 것이, 일단 눈에 띠어 오래도록 그 아이를 관찰했다. 동료들에게 물어 알아낸 정보로는 아이는 해군인 아빠와 거의 떨어져 지내는 것이 오래인 데다가, 언어적 발달이 조금 남달라 테라피를 받고 있다고 했다.
나는 매일 조금씩 아이에게 천천히 다가가 "아 지금 네가 슬프구나. 왜 슬퍼? 무엇이 너를 슬프게 만들었어?" 하나씩 질문을 던지면 아이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기를 며칠 아이의 그 말이 조금씩 다르게 들리기 시작했다. "Ich bin traurig. Ich bin traurig." "나는 지금 지루해요. 관심이 필요해요. 나랑 놀아주세요."
아이 O에게는 심심하거나 지루하다는 단어적 표현이 없어서, 자신이 알고 있는 감정의 가장 부정적인 단어를 골라 상황을 표현했던 것이었다. 성향상 먼저 다른 애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쉽지도 않은 데다가, 본인이 놀이를 도모할 수 있는 방법은 자신 나름대로 슬프다고 외치는 것이 유일했던 것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아이의 슬프다는 문장에 너무 심각하게 반응하지 않는 대신, "O야, 오늘은 뭐 하고 놀고 싶어? 오늘은 이걸로 같이 놀까?"라고 빙그레 웃으며 질문을 던졌다. 아이는 이제 더 이상 슬프다는 얘기를 하지 않는다.
이렇게 모든 아이는 저마다 다른 언어를 가지고 있다. 자라나는 많은 시간의 동반자로서 천 개의 마음과 귀로 그들의 이야기를 온 마음을 다해 듣는 것, 이것이 이 직업의 가장 우선되는 자세가 아닐까.
(너희들의 어지러운 마음의 환한 탈출구가 되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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