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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울며 방송", '6시 내고향'의 코로나19 극복 방법

[장수 프로①] 30주년 맞는 KBS1 <6시 내고향> 촬영 현장

등록|2021.03.27 19:48 수정|2021.03.30 18:16

▲ 방송 30주년을 맞은 KBS1 교양프로그램 <6시 내 고향>. 17일 오후 생방송을 하기에 앞서 제작진들과 진행자인 윤인구와 가애란 아나운서, 리포터인 노지훈 가수와 임대호 배우, 전 씨름선수 백승일이 방송준비를 하고 있다. ⓒ 이정민


"안녕하십니까. < 6시 내고향 >입니다."

매일 오후 6시 늘 똑같은 인사말과 함께 찾아오는 < 6시 내고향 >이 올해로 30주년을 맞았다. 조용하고 어두웠던 스튜디오에 조명이 켜지면 MC와 출연자들이 매무새를 가다듬고 자리에 앉는다. 카메라들이 촬영 준비를 하는 동안 스튜디오 한 켠에서 스태프는 리포터들이 읽을 수 있도록 커다란 전지에 쓴 대본을 들고 대기하고 서 있다. 오후 5시 58분이 되면 잠깐의 정적과 함께 곧 생방송이 시작된다.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KBS 신관 지하 스튜디오에서 진행된 KBS 1TV < 6시 내고향 > 생방송 현장에 다녀왔다.

방송 1시간여 전, 조용한 스튜디오에 가장 먼저 도착한 사람은 '수요일엔 수산물' 코너를 담당하는 리포터 천하장사 백승일이었다. 지난주 경북 포항 호미곶으로 아귀 조업을 다녀온 그는 담당인 박지영 작가와 함께 편집된 VCR 영상에 맞춰 대본 연습에 몰두하고 있었다. 매번 이렇게 일찍 오냐는 질문에 그는 "조금 늦을 때도 있는데 리딩 때문에 최대한 일찍 오려고 하는 편이다. 생방송이니까, 실수하면 안 되니까"라고 웃으며 답했다.

준비된 대본을 생동감 있게 읽어내려가던 백승일은 "포항에 가서 저처럼 잘생긴 생선(아귀)을 만나고 왔다고 할까요?"라며 틈틈이 작가에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하기도 했다.

"아 저는 오히려 선생님의 귀여운 반전 매력을 생각했거든요? '뿌잉뿌잉' 이렇게 해보시는 건 어때요?"
"'뿌잉뿌잉'은 내 덩치에 좀 그런 것 같은데... 차라리 반전으로 갈까요?"
"좋아요."


한동안 이어진 논의 끝에 정리된 대본은 좀더 재미있고 유쾌해졌다.

"그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얼굴은 못생겨도 맛은 좋다.' 제가 직접 보니까 (아귀가) 정말 못생겼더라고요. 그래도 맛이 일품인 매력적인 반전 수산물. 저 백승일과 경북 포항으로 가보시죠, 출발!"

"멀미약을 먹어도 파도가 치면 소용이 없다"
  

▲ 방송 30주년을 맞은 KBS1 교양프로그램 <6시 내 고향>. 17일 오후 생방송을 하기에 앞서 리포터인 전 씨름선수 백승일이 원고를 읽으며 리허설을 하고 있다. ⓒ 이정민


촬영은 보통 1박2일로 진행된다. 수산물 코너를 담당하는 만큼 매주 전국 어촌들을 돌아다니고 있는 백승일은 지난주에는 경기도 시흥에 봄 주꾸미를 잡으러 다녀왔으며 그 전 주에는 경남 통영에서 멍게를 채취하고 왔다고.

"하루 전날 미리 도착해요. 오전 7시즈음 배가 뜨거든요. 저는 거의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바닷가에 도착하는 것 같아요. 30분~40분 정도 배를 타고 바다로 (조업을) 나가면 짧게는 7~8시간, 기본 10시간 가량 조업을 합니다. 다음날 해산물 요리를 먹고 이야기 나누는 촬영까지 하고 서울로 오죠."(백승일 리포터)

일주일마다 하루씩 종일 조업을 하는데도 뱃멀미는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단다. 그는 "멀미약을 먹어도 파도가 치면 소용이 없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도 "몸은 힘들어도 맛있는 걸 먹고 나면 힘든 게 다 풀린다"며 웃었다.

이틀을 꼬박 고생하며 촬영하지만 방송에 나가는 분량은 약 12분 내외. 그래도 그는 어민들의 힘든 사정을 듣다 보면 "제가 더 열심히 수산물을 홍보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라며 "힘든 시기를 이겨내는 데 작은 보탬이라도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늘 열심히 한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 포항 편에는 '코로나 19'로 일손을 구하기 어려워진 상황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어민들의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지난주 방송된 '수요일은 수산물' 통영 편에서 역시 양식장을 덮친 빈산소 수괴(산소 부족 물 덩어리)와 고수온 때문에 멍게들이 집단 폐사하는 등 피해 입은 어민들의 고통을 전했다.

코로나 19 이후 < 6시 내고향 > 기획 역시 어려운 농어촌 현실에서 노력하고 있는 지역민들의 모습을 전하고 농수산물 판로를 개척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는 추세다. 백승일과 함께 포항으로 1박 2일 조업을 다녀왔다는 박지영 작가는 "(어민들이) 힘든 걸 방송에 더 많이 비추려고 한다. 코로나 19에도 불구하고 어민들이 수산물 품질 관리를 위해 이렇게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이런 부분들을 시청자분들께 알려 드리면서 수산물의 가치를 제고하는 방향으로 기획을 틀어서 구상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30년 동안 자리를 지켜온 < 6시 내고향 >도 코로나 때문에 프로그램 존폐 위기를 겪기도 했다. 메인 작가인 남수진씨는 "난생 처음 마주한 위기 상황이었다. 이 프로그램을 존립시킬지, 뉴스 특보로 갈지 기로에 서 있을 정도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 6시 내고향 >은 종영 대신 '코로나 19, 위기 속의 작은 영웅들' 특집기획을 준비하면서 위기를 타개해 나갔다.

"< 6시 내고향 >이 이 시간을 지켜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보시는 분들에게 위로가 되고 '우리가 함께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전국에 너무 너무 감사한 영웅들이 많이 계셨다. 그 분들이 모두 작지만 위대한 일을 하고 계셨고 위로와 감동을 주셨다.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들로서 (몸은) 힘들었지만 오히려 에너지를 많이 얻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땐 정말 매일매일 울면서 방송했다."(남수진 메인 작가)

"무언의 신뢰, 그게 < 6시 내고향 >팀의 장점"
 

▲ 방송 30주년을 맞은 KBS1 교양프로그램 <6시 내 고향>. 17일 오후 생방송을 하기에 앞서 진행자인 윤인구와 가애란 아나운서가 방송준비를 하고 있다. ⓒ 이정민


6시 정각 생방송을 20분여 앞두고 윤인구, 가애란 아나운서가 스튜디오에 등장했다. 이미 5층 회의실에서 오늘 방송 내용에 대한 회의와 대본 검토를 마친 두 사람은 미리 스튜디오에 나와 준비하고 있던 리포터들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눴다. 환한 조명과 여러 대의 카메라 앞에서 다소 긴장한 듯 보였던 리포터들은 그제야 편안한 웃음을 지었다.

"오늘 출연하는 사람들과 합을 잘 맞추는 게 가장 중요하다. 방송 때만 이야기하는 내용으로는 분위기가 잘 안 산다. 20분 전부터 농담도 하고 '어제 뭐했나, 뭘 먹고 왔나, 얼마나 힘들었나' 사소한 일상의 잡다한 이야기들을 하면서 서로 긴장을 푸는 거다. 그래야만 생방송에 뜻밖의 위기가 와도 잘 넘길 수 있다. 갑자기 밖에서 '윤인구 아나운서, 2분만 시간을 끌어줘야겠다'고 할 수도 있다. 그 시간 동안 어떻게 MC 혼자서만 말을 하겠나. 내가 갑자기 누군가에게 질문을 던져도 카메라가 돌아가고 자연스럽게 답변이 나오려면, 무언의 신뢰가 있어야 한다. 그게 < 6시 내고향 > 팀의 가장 큰 장점인 것 같다."(윤인구 아나운서)

"처음 방송에 나오시는 분들은 긴장을 하셔서 프롬프터를 준비해드려도 실수를 하실 때도 있다. 당황하셔서 잘 안 보이실 때도 있고. 그래도 촬영한 내용을 잘 전달하려고 미리 대본을 준비하는 거지, 꼭 대본대로 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 그럴 때는 저도 유쾌하게 정리하면서 상황을 넘기려고 하는 편이다."(가애란 아나운서)


지난 2018년부터 < 6시 내고향 > 팀에 합류한 윤인구 아나운서는 "30년 중에 3년이면 오래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인연이 깊은 편"이라고 말했다. 지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당시 서기철 아나운서가 올림픽 중계를 위해 베이징 현지로 출장을 간 사이 윤인구 아나운서가 대신 진행을 맡은 적이 있다고. 꼬박 10년 만에 다시 돌아온 < 6시 내고향 >은 현재 그의 하루 중에 가장 중요한 일상이 됐다. 윤인구 아나운서는 "저한테 중요한 건 매일 저녁 6시 만큼은 최상의 컨디션을 만드는 것이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 프로그램. 그게 저한테 익숙해진 일상인 것 같다"고 말했다.

"< 6시 내고향 >은 (시청자가) 보기 편안한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편한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서는 수면 밑에서 엄청 열심히 노를 저어야 한다. 시청자들이 어떻게든 1시간 동안 편안하고 유쾌하고 가슴 따뜻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포장을 한다는 게 아니라 가감없이 보여주더라도 농민, 어민분들은 물론이고 보시는 시청자분들에게도 위로가 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프로그램의) 최우선의 가치다."(남수진 메인작가)

남수진 작가의 말대로, 시청자들이 마음 편히 볼 수 있는 방송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카메라 뒤에서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최근에는 주로 전화로 사전조사와 섭외를 진행하고 있다는 남 작가는 촬영 며칠 전부터 16명의 작가들이 농어촌 어르신들의 생활 패턴에 맞춰 수시로 전화 통화를 한다고. 사전 조사가 철저해야 현장에서 더 원활하게 촬영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저마다 한 편의 드라마를 쓸 수 있을 만큼 애달픈 사연들이 많단다. 남 작가는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며 "소소한 드라마들을 찾아내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의료 사각지대에 있는 시골 농어촌 어르신들에게 의사가 직접 찾아가 건강을 되찾아드리는 코너 '내 고향 닥터'를 예로 들며 설명했다.

"시골에는 의료 사각지대에 계신 분들이 정말 많다. 다리가 아프신데 먹고 사느라, 일이 너무 바빠서 병원에 못 가시는 것이다. '내 고향 닥터'에 나오시는 분들의 사연은 언제나 마음이 너무 아프다. 전화 통화를 해도 현장에 가면 더 많은 드라마같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어머님들은 '오지 마, 나 찍을 거 없어'라고 하시는데, 막상 가면 그분들의 인생 자체가 다 드라마다."

이게 바로 < 6시 내고향 >이 30년 동안 유지될 수 있었던 힘이 아닐까. 윤인구 아나운서는 얼마 전 지인과 나눈 대화에 빗대 프로그램의 가치를 강조했다.

"늘 한결같은 것. 그래서 내 일상과 같다는 거겠지. 저도 방송이 잘 안 될 때가 있다. 한 번은 제 친구랑 술 한잔 하면서 이야기하다가 넋두리처럼 '요즘 방송이 잘 안 돼' 했는데 그 친구가 해준 말이 내겐 방송의 교본같았다. '밥이 질게 될 때도 있고 되게 될 때도 있고 그런 거지 어떻게 늘 똑같이 하겠냐.' 어떤 날은 재미없을 때도 있고, 어떤 날은 되게 재밌을 때도 있고, 어떤 날은 슬플 때도 있고, 어떤 날은 되게 웃길 때도 있다. 무엇보다 나랑 동떨어진 세상의 이야기가 아닌, 내가 살던 곳의 이야기를 하면 되지 않겠나. 늘 그 자리에 있었듯 시청자들이 기대하는 대로, 우리 삶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것. 그게 < 6시 내고향 >이 30년 동안 지속해 올 수 있었던 힘이 아닌가 싶다."(윤인구 아나운서)
 

▲ 방송 30주년을 맞은 KBS1 교양프로그램 <6시 내 고향>. 17일 오후 생방송을 하기에 앞서 임대호 배우와 제작진들이 원고를 읽으며 방송 준비를 하고 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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