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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점퍼' 입은 금태섭의 소신과 배신

[取중眞담] '82년생 김지영' 돌리던 금태섭, 퀴어퍼레이드에 참석하던 금태섭

등록|2021.03.24 15:19 수정|2021.03.24 16:00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선거대책위원회 회의에서 금태섭 공동선거대책위원장에게 응원 점퍼를 입혀주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금태섭 전 의원(전 서울시장 무소속 예비후보)이 붉은 점퍼를 입었다. 가슴팍에 '국민의힘' 네 글자가 적혀 있었다.

어쩌면 자연스런 수순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의 단일화 경쟁에서 패배한 금 전 의원은 "좋은 결과 있길 바란다"며 승복했고, 안 후보 역시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에게 패배한 후 "힘껏 힘을 보태겠다"고 했으니 말이다.

2016년 3월~2020년 2월 정치부와 법조팀에서 일하며 금 전 의원의 활동을 자주 봐왔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취재하며 그의 발언을 여럿 보도하기도 했다.

금 전 의원의 자산은 '소신'이었다. 법제사법위원회에선 검경수사권 조정 등 검찰개혁과 관련된 사안에 자신이 소속된 더불어민주당과 다른 목소리를 냈다. 금 전 의원이 검사 출신임을 강조하며 '배신'을 이야기하는 여론도 있었으나, 정부·여당의 안이 무조건 정답은 아니었기에 그의 의견 중 귀담을 점도 있었다.

이후 총선을 앞두고 금 전 의원은 지역구 경선에서 패배했다. 금 전 의원이 당에 밉보여 공천을 받지 못했는지, 애초에 지역구 관리가 소홀했는지를 두고 여전히 다양한 평가가 나오지만 어쨌든 그의 공천 탈락에 당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 것도 사실이다.

 

▲ 금태섭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018년 7월 14일 서울퀴어문화축제를 방문하고, 개인 SNS에 글을 남겼다. ⓒ 금태섭 페이스북 갈무리


금 전 의원의 소신은 우리 사회의 약자를 거론하는 모습에서 빛났다. 그가 2017년 3월 여성의 날을 앞두고 동료의원 298명에게 <82년생 김지영>을 선물했을 때 큰 울림을 줬다. 지금도 일부로부터 '꼴페미'라고 지탄받는 그 책 말이다. 당시 그는 "우리 주위에는 수많은 '김지영'들이 있다"며 "'82년생 김지영'들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그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선 '현상'을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금 전 의원은 성소수자 인권과 관련해선 독보적인 위치에 있었다. 2018년과 2019년 퀴어퍼레이드에 참여해 페이스북에 "차별과 혐오 없는 세상을 기원하면서 즐겁게 하루 놉시다"라고 쓴 것은 당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번 단일화 과정에서 나온 '거부할 권리'라는 반인권적 발언(안철수 전 후보) 앞에서도 그는 "소수자 옆에 서는 것이 정치인의 가장 중요한 임무"라고 강조했다.
 

그랬던 금 전 의원이 오세훈-안철수 단일화 다음날인 24일 '오세훈의 품'에 안겼다. 입당설은 부인했지만 오 후보가 입혀준 점퍼엔 국민의힘 네 글자가 박혀 있었다.

앞서 오 후보는 단일화 과정에서 나온 퀴어퍼레이드 관련 질문에 "소수자 인권 보호"를 이야기했다. 이전 자신의 행보와는 꽤 다른 답변이었다. 다만 "서울시에는 서울시광장사용심의위원회라는 결정기구도 있고 규정도 있다. 시장 개인이 '해도 된다, 하면 안 된다'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며 열린 결말(?)의 답을 내놨다.

오 후보의 "소수자 인권 보호"란 말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는 직전 총선에서 그가 한 말을 떠올려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는 후보자 토론에서 "저는 동성애에 반대한다. 고민정 후보는 반대합니까, 찬성합니까"란 질문을 던졌다.

이러한 오 후보의 생각과 지금은 너무도 당연한 '서울광장 신고제'를 그가 서울시장 재임 시절 어떻게 막아왔는지 곱씹어본다. "시장 개인이 '해도 된다, 하면 안 된다'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는 오 후보의 열린 결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렵지 않게 추측해볼 수 있다. 문제를 오 후보로 국한하지 않고 국민의힘으로 확장하면 그 심각성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물론 금 전 의원이 몸담았던, 그리고 박차고 나온 더불어민주당도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잊을만하면 여성·성소수자 폄훼 발언이 터져 나오고 차별금지법 추진 역시 소극적인 게 더불어민주당의 현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유가 있더라도 오늘 금 전 의원의 모습에 마냥 고개를 끄덕이긴 힘들다. 앞서 언급한 그의 소신과 '그 분야 최악 정당'의 결합이 도저히 정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오십보 백보'란 말이 있지만, 백보가 오십보의 2배인 건 엄연한 사실이다.

앞서 금 전 의원 정치 인생엔 두 차례 큰 변화가 있었다. 하나는 안철수를 떠난 것이고, 둘은 더불어민주당을 박차고 나온 것이다. 그때마다 금 전 의원을 폄하하는 이들도 많았지만, 한 번도 그 행위를 '배신'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몸담았던 진영을 떠나는 일은 정치권에서 자주 있는 일이다. 더구나 그의 자산이기도 한 소신이 큰 명분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오늘 붉은 점퍼를 입은 금 전 의원의 모습엔 배신이란 평가를 내리고 싶다. 진영에 대한 배신이 아닌 소신에 대한 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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