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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사 앞 '매화'에서 길가의 '자주제비꽃'까지... 봄날은 온다

3월과 4월 사이에 읽는 안도현의 시

등록|2021.03.27 18:15 수정|2021.03.27 18:15

▲ 봄의 전령사 홍매화 ⓒ 임영열

산서고등학교 관사 앞에 매화꽃 핀 다음에는
산서주조장 돌담에 기대어 산수유꽃 피고
산서중학교 뒷산에 조팝나무꽃 핀 다음에는
산서우체국 뒤뜰에서는 목련꽃 피고
(중략)

안도현(1961~)의 시 <3월에서 4월 사이> 중에서. 시집 <그리운 여우>(창작과 비평사. 1997)

식물들의 경이로운 속성 중 하나는 겨울에 죽은 듯이 움츠려 있다가 봄을 맞아 펼치는 놀라운 생명력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길고 지루했던 겨울이 가고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춘분(春分)을 지나자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봄꽃들의 릴레이 경주가 시작됐습니다.

옛사람들은 봄에 꽃이 피어나는 순서를 두고 '춘서(春序)'라 했습니다.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가끔은 그 순서가 뒤죽박죽되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춘서의 뼈대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합니다.
 

▲ 포충사 담장에 기댄 산수유꽃 ⓒ 임영열


예나 지금이나 춘서의 선두에서 제일 먼저 봄을 알리며 전령사 역할을 하는 매화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추운 겨울에도 추위에 굴하지 않고 꽃을 피우는 매화는 "일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하여 불의에 굽히지 않는 선비들의 표상이 되었습니다.

옛말에 "일화불성춘(一花不成春) 만자천홍재시춘(萬紫千紅才是春)"이라고 했습니다. "한 송이 꽃이 피었다고 봄이 아니라, 온갖 꽃이 다 피어야 비로소 봄이다"라는 뜻입니다.
 

▲ 아파트 베란다 앞의 목련화 ⓒ 임영열


학교 관사 앞 매화에서부터 주조장 돌담에 기댄 산수유, 중학교 뒷산의 조팝나무, 우체국 뒤뜰의 목련화, 초등학교 울타리 너머 개나리, 정류소 가는 길가에 자주제비꽃까지. 다 피어나야 비로소 '봄날'입니다.

법정 스님의 법문처럼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게 아니라 꽃들이 피어나기 때문에 봄을 이루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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