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얼굴 헷갈리는 노인... 마지막이 묵직했다
[미리보는 영화] 안소니 홉킨스의 <더 파더>
▲ 영화 <더 파더> 관련 이미지. ⓒ 판시네마
평온한 표정으로 잠에서 깨고 우아하게 음악을 틀며 아침을 맞이하려는 이 노인. 표정이 왠지 거북하다. 딸과 단둘이 산다고 믿었건만 웬 낯선 남자가 자신 앞에 앉아서 태연하게 신문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노인의 질문에 남자는 망설임 없이 딸의 남편이라 답한다. 노인의 표정은 더욱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영화 <더 파더>는 주인공 안소니(안소니 홉킨스)가 평생 일궈온 삶의 터전인 한 아파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리고 있다. 80을 넘은 노인이자 두 딸을 둔 아버지로서 여생을 나름 불만 없이 보내고 있는 안소니는 어느 날 자신이 알고 있던 사실과 믿고 있던 가족이 자신의 기억과 다르다는 걸 느끼게 된다. 사고로 죽었다는 둘째 딸을 자꾸 찾고, 첫째 딸 얼굴은 어제와 오늘이 크게 달라져 있다. 노인 입장에선 이해하기 어려운 일련의 사건을 제시하며 관객 또한 노인의 시점으로 현상을 바라보도록 한다.
본격 심리극을 표방했던 연극처럼, 영화 또한 노인의 각종 심리 변화를 끈질기게 쫓는다. 노인은 자신이 평생 번 돈으로 마련한 집이 알고 보니 딸의 집이었다는 사실에 분노하기도 하고, 웬 낯선 남자의 등장에 낯설어하기도 한다. 종국엔 뭐가 맞는 기억인지 몰라 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 영화 <더 파더> 관련 이미지. ⓒ 판시네마
▲ 영화 <더 파더> 관련 이미지. ⓒ 판시네마
감정의 고저와 변화 폭을 스크린으로 완벽하게 구현하기 위해선 배우의 역량이 절대적이었을 것이다. 명배우 반열에 올라 있는 안소니 홉킨스는 자신의 이름을 딴 노인 안소니 역할을 맡아 적재적소에 필요한 감정 연기를 선보인다. 첫째 딸로 등장하는 올리비아 콜맨은 그런 안소니의 에너지를 제법 훌륭하게 받아내며 팽팽한 긴장감을 조성한다.
멀리서 보면 노환으로 병약해져 가는 한 인간의 환상 내지는 착각일 텐데 <더 파더>는 기묘하면서도 때론 섬뜩한 분위기로 관객을 매 장면 휘어잡는다. 분명 노인의 기억 왜곡이 맞는 것 같지만 끝까지 영문 모르게 벌어지는 상황에서 관심을 떼기 어렵다. 관객 입장에선 노인이 측은하게 보이기도 할 테고, 첫째 딸 앞에서 내내 둘째 딸 얘기만 하는 노인의 모습이 미워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한 캐릭터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의 가능성을 <더 파더>는 영리하게 열어놓았다. 서사 구조를 탄탄하게 이어 붙여 관객의 목덜미를 잡고 끌고 가는 게 아니라 순간마다 제한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최소한의 추리를 할 수 있게 여건을 조성한다. 그렇기에 어떤 관객은 첫째 딸의 열등감을 더 깊게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제법 간단한 설정과 아이디어로 채워진 <더 파더>는 우선 명배우들의 연기 호흡만 즐겨도 충분히 제 가치를 다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영리함 덕인지 이 작품은 2021년 아카데미 작품상,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 등 6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있다.
한줄평: 구관이 명관임을 증명하다
평점: ★★★☆(3.5/5)
영화 <더 파더> 관련 정보 |
감독: 플로리안 젤러 출연: 안소니 홉킨스, 올리비아 콜맨, 마크 게티스, 올리비아 윌리암스 등 수입 및 배급: 판씨네마 러닝타임: 97분 관람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개봉: 2021년 4월 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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