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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루이스 쇼 후손, 외국인 독립유공자후손 장학생 선발

2021 민화협-롯데장학재단 '독립유공자후손장학사업' 심사 현장

등록|2021.04.04 20:45 수정|2021.04.06 17:11
고향 출신 왕산 허위 13도 창의군 군사장을 몰랐던 부끄러움

"남의 강제 지배에서 벗어난 사회는 당연히 전체 교육과정에서 '민족해방사'를 따로 가르쳐야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했다."

강만길 선생이 나의 저서 <항일유적답사기>에 부친 추천사의 일부다. 그 말처럼 나는 학교교육에서 독립운동사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서울 동대문에서 청량리로 가는 '왕산로'의 유래도 몰랐다. 그 부근 산 이름이 왕산인 줄 알았다. 그러다가 그 '왕산'이 내 고향 구미 임은동 출신 한말 13도 창의군 군사장 허위의 호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그 순간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 임은동 항일의병장은 모르면서 그 앞마을 상모동 일본군 장교는 알았던 그 부끄러움으로 애써 독립운동사를 펼쳤다. 그러면서 국내 항일 유적지는 물론, 중국, 러시아 등지까지 가장 낮은 자세로 선열의 발자취를 더듬었다.
 

▲ 심사위원들이 회의장 벽에 설치된 파워포인트 심사자료 화면을 바라보고 있다(왼쪽부터 심옥주, 김병기, 김진, 원희복 심사위원, 건너편 이시종 민화협 사무차장, 박도, 이종찬 심사위원장, 김삼웅 심사위원). ⓒ 민화협 / 김민아


선열의 계시

2020년부터 롯데장학재단(이사장 허성관)과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대표상임의장 이종걸)는 독립유공자후손 장학사업을 벌이고 있다. 올해는 제2회로 지난 2월 8일부터 장학생 지원자를 공모해 지난 3월 11일 서류접수를 마감했다. 그 결과 총 351명(2020년 150명)으로 지난해보다 지원자가 배 이상 늘어났다.

지난 3월 17일 제2차 심사위원회에서 심사위원이 351명 전원의 서류를 검토하는 데 무리가 있다고 판단, 1차 심사는 지원자가 많은 국내에 한해 3등분으로 배분 심사키로 했다. 그리하여 제1반(김삼웅·심옥주), 제2반(김병기·원희복), 제3반(김진·박도)으로 나눴다.

3월 19일 민화협에서 접수한 서류를 모두 정리한 뒤 메일로, 이를 출력해 책자로도 보냈다. 나는 이 서류들을 살펴보면서 몹시 괴로웠다. 조국과 겨레에 바친 선열후손의 서류를 감히 심사하기가. 잠시 멈추고 밤하늘을 바라봤다. 그때 어디선가 선열의 계시가 들리는 듯 했다.

'박 선생, 너무 괴로워하지 말아요. 내 후손보다 다른 동지의 후손을 먼저 챙겨주시오.'

그 순간 마음이 편해졌다. 그리하여 내 양심대로 심사, 소정기일 내 1차 선정 자료를 반송할 수 있었다.

지난 4월 2일 11시 30분, 제3차 심사위원회가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 무궁화실에서 열렸다. 그 자리에서 심사의 어려움을 토로하자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도 비슷한 말을 했다. 그날 1차 심사결과를 파워포인트로 띄우자 한 반이었던 김진 선생과 나의 심사 채점표가 비슷했다. 그분의 말씀이다.

"사전 의논도, 전화 한 통도 하지 않았는데..."

이날 지원자가 적은 해외 지원자 분야 심사를 먼저 진행했다. 그런 뒤 국내 재학생, 신입생, 대학원생은 2배수로 선정하고, 제4차 회의 때 마무리한 다음 4월 하순에 공표키로 했다.
 

▲ 2015년 4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조지 루이스 쇼(1880~1943). ⓒ 국가보훈처/독립기념관


2021 독립유공자 후손 제1호 장학생

마침 광복회 호주지회에서 영국인 조지 루이스 쇼(George Lewis Shaw, 1880~1943)의 외고손녀로 호주에 거주하는 조지아 사시(Georgia Sassi)를 추천했다. 심사위원들은 만장일치로 외국인을 2021년 독립유공자후손 제1호 장학생으로 선정했다.

조지 루이스 쇼는 아일랜드계 영국인이다. 그는 일제강점기 중국 단둥에 이륭양행이라는 무역회사를 차리고, 그 회사 2층에 대한민국임시정부 교통국을 설치했다. 이 교통국을 통해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출입국 편의와 독립군자금, 폭탄, 비밀 정보 문서들을 국내외로 전달할 수 있었다.

그는 기업인으로 자신의 사업에만 골몰치 않고 우리 독립운동가를 비밀히 돕다가 끝내 내란죄로 일제에 체포 구금돼 4개월여의 옥고까지 치렀다. 그가 우리 독립운동가를 헌신적으로 도운 것은 그의 조국 아일란드도 영국 식민지로 동병상련의 아픔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963년 대한민국 정부는 그에게 독립장을 추서했다.
 

▲ 조지 루이스 쇼 외고손녀 조지아 사시 ⓒ 광복회 호주지부


다음은 그의 후손 조지아 사시 '자기 소개서' 일부다.
 
2015년 한국여행을 갔습니다. 이전 조지 루이스 쇼라는 분은 상상의 일부였습니다. 한국 방문을 통해 그분의 삶이 제 마음에서 되살아났습니다. 한국 정부로부터 업적을 기리는 상을 받았을 때 그분의 위대하고 자랑스러운 희생정신을 느꼈습니다. …

그분의 최종 목표는 인종, 종교, 성별에 관계없는 인류의 자유, 평화, 그리고 정의였습니다. 저는 그 위대한 정신을 물려받아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노력을 할 것입니다.
 

그를 추천한 황명하 광복회 호주지부장은 해외 거주 독립유공자나 그 후손은 그동안 정부로부터 훈장만 받았을 뿐, 다른 혜택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이날 심사위원들은 어려운 가운데 해외에서 독립운동에 이바지한 그분들의 희생을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데 뜻을 모았다.

그리하여 이번 신청자 가운데 결격 사유가 없는 한 모두 우대 선발키로 했다(단, 한 독립유공자후손 1인만). 이는 죽은 영혼도 결초보은한다는, 지난날 입은 은혜를 되갚는 우리 사회의 '정의'요, 한국인의 훈훈한 '인간애'이리라.
덧붙이는 글 최근 우리 사회의 불신은 매우 심각하다. 나의 공직 생활 체험에 따르면 불신 해소의 지름길은 오직 공정과 공개, 그리고 투명성이다. 그리고 그 과정도 유리처럼 투명하면 불신은 저절로 해소되기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이 심사 과정을 시시콜콜 중계 공개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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