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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식 엄마'가 된 나, 항상 체한 기분입니다

[집밥 해방이 필요해] 코로나가 만들어낸 '돌밥' 일상... '밥짓기 노동'에도 퇴근을 달라

등록|2021.04.14 07:59 수정|2021.04.14 07:59
코로나로 비대면 수업과 재택근무가 늘어나면서, 집에서 끼니를 챙기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가사 분담이 늘어났다곤 하지만, 여전히 집안 구석구석 다양한 노동을 담당하고 있는 여성들에게 이같은 상황은 크나큰 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습니다. '급식 엄마가 된 것 같다'는 토로는, 괜히 나온 게 아닐 겁니다. 생생한 경험담을 바탕으로 여성들의 그림자 노동을 향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며 '집밥 해방'을 외치는 시민기자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편집자말]
"쨍그랑."

결국 꽃그림 가득한 내 찻잔이 깨지고 말았다. 분풀이라도 하듯 설거지통에 그렇게 우격다짐으로 때려 넣는 게 아니었는데. 찻잔이 무슨 죄가 있다고. 후회해도 늦었지만 뭔가 억울한 마음에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이게 벌써 몇 달째인가. 지난 겨울방학 때부터 시작한 밥 짓기 노동이 1년하고도 3개월째이다. 올해 마스크를 벗을 수 없겠다는 전망이 나왔을 때만 해도 사실 무덤덤했었다. 까짓것, 일 년 동안 했으니 또 해볼 만하겠지 뭐, 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데 이게 웬일. 밥을 하는 일상이 왜 이렇게 갈수록 어렵게 느껴지는지, 가끔은 먹은 것도 없이 아침부터 체한 느낌이다. 가슴 저 밑바닥부터 차오르는 갑갑함. 요즘 '프로돌밥러'(돌밥, '돌아서면 밥한다'의 줄임말)이자 '급식 엄마'로 살아가는 내 일상이다.

밥이랑 무슨 원수를 졌길래 
 

▲ 설거지 ⓒ pixabay


온라인 수업을 하는 중학생과 초등학생을 둔 엄마인 나는, 하루에 7번 내지는 8번 정도 밥을 차린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규칙적인 일상이 사라지니 각자의 생체리듬대로 밥을 먹어서다. 본능이 이끄는 식욕을, 시간 맞춰 먹으라고 다그친들 허공을 떠도는 메아리에 불과할 뿐이라 나는 잔소리를 그만두고 아이들에게 각자의 시간에 맞춰 밥을 차려준다.

작은 아이와 큰 아이가 번갈아 식사를 마치고 나면, 비로소 점심 메뉴 고민이 시작된다. 요즘 내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바로 "엄마 오늘 점심 뭐예요?"다. 질문의 모양새를 띠고 있지만 '엄마가 주려고 계획한 것이 내가 먹고 싶은 것과 일치하는지 확인'하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먹을 것이 귀한 시대가 아니다 보니, 호불호가 확실한 아이들은 원하는 메뉴 또한 제각각이라 메뉴 일치를 보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만장일치로 의견이 모일 때는 배달음식이나 포장음식을 먹을 때였는데, 배달음식을 받을 때마다 넘쳐나는 포장재를 보고는 쉽게 배달음식을 시켜 먹자 소리가 나오지 않았고, 무엇보다 경제적 타격도 만만치 않았다.

점심이 무사히 끝났다고 다 끝난 것은 아니다. 아직 저녁식사가 남아 있다. 아이들의 학원 시간과 남편의 퇴근시간이 모두 달라 저녁 역시 세 번을 차린다.

장을 보러 나가고, 밥을 하고, 먹은 그릇들을 치우고, 설거지를 하고 간식을 챙겨내는 일이 매일매일 끊임없이 한 템포도 쉬지 않고 이어지니 대체 내가 전생에 밥과 무슨 원수가 졌길래 이렇게 매일 밥과의 전쟁을 치르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밥 짓기 노동'은 당연하지 않다 

내 얼굴이 메뉴판으로 보이는지 가족들은 요즘 내 얼굴만 보면 '오늘의 메뉴'를 물어본다. 참다못한 어느 날, 진중한 표정으로 작심하고 한 마디를 꺼냈다.

"나는 밥하는 게 너무 싫어."

멀뚱히 내 말을 듣던 남편은 "나도 일하러 나가기 싫어"라고 했고, 아이들도 덩달아 "나도 공부하기 싫어"라고 했다. 말장난을 하자는 건 아니었는데, 식구들의 대답은 장난스러웠다. 나의 진심 어린 다큐를 고민 없이 조크로 받아버린 그들 앞에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은연중에 가족들은 엄마의 '밥 짓는 노동'을 매우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어쩌면 내가 진짜 힘든 것은 밥을 준비한다는 것보다 이 일이 엄마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구분 지어지는 방식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 요리 ⓒ pixabay


직업이 없는 엄마로 살면서 글을 쓰고 싶다는 핑계로 밥을 소홀히 하는 것은 도저히 죄책감 때문에 못하겠는 이 지점이 나와 밥 사이의 아이러니다. 문제는 엄마가 엄마로만 살고 싶지 않은 시대에 살면서, 밥에 대한 무한 책임의 강요를 온몸으로 견뎌야 한다는 것이다.

이참에 저출산 대책의 하나로 엄마를 밥에서 해방시켜보는 정책을 한번 연구해보는 것은 어떨까. 매년 저출산대책에 쓰는 그 어마어마한 예산을 나누어 인구 대부분이 아파트에 거주하는 나라에서 아파트 1층을 공동의 식당으로 용도를 지정하는 것이다. 집 밥을 먹는 것은 자유요, 식당을 이용하는 것도 언제든 가능한 구조로 말이다. 언뜻 생각해도 고용 창출에 식비 절감에 여성인력 낭비도 막는 일석삼조의 아이디어 같은데, 말이다.

엄마인 나도 급식판을 들고 싶은 간절함이 만든, 밥에 대한 고찰이 이렇게 끝 간 데 없이 뻗어 나갈 즈음, 나의 상념을 깨우는 카톡 알람이 울렸다.

"날씨 너무 좋다. 우리 다음 주에 애들 등교하면 김밥 싸서 소풍 가자."

그렇지. 벚꽃 찬란한 계절에 소풍과 김밥을 잊는 것은 계절에 대한 직무유기다. 아니나 다를까 "까톡까톡까톡" 순식간에 단톡방이 소란스러워진다. 다들 소풍이 그리웠구나 싶었는데 이게 웬일, 단톡방을 확인하니 벚꽃과 소풍에 대한 언급은 없고, 온통 "김밥은 싸지 말고 사자", "김밥은 사는 맛", "김밥은 절대 안 싸"라는 대답이 도배를 했다. 밥에 지친 엄마가 나뿐이 아니었나 보다.

그러나 어쩌겠나. 밥을 먹이는 일은 생존에 관련된 기본적인 돌봄의 영역이니 받아들일 수밖에. 코로나를 탓할 일이지 밥에 대고 삿대질을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나저나 하루 이틀 새에 끝날 것 같지 않은 코로나, 나는 이참에 급식 엄마의 밥 퇴근시간만이라도 강하게 밀어붙여 봐야겠다.

"같은 시간에 밥 먹지 않으면 밥 안 차릴 거야!"

가벼운 협박으로 끝내도 될 일을, 괜히 내 아까운 찻잔만 깨졌다.
덧붙이는 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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