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빚' 2000조원으로 GDP 추월? 그 계산은 틀렸다
자산-부채=순자산 504조원... 제무제표상 부채를 나라빚으로 보면 안돼
▲ 강승준 기획재정부 재정관리관이 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총세입과 총세출, 재정수지, 국가채무 등 2020회계연도 국가결산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 연합뉴스
우선 '나라빚'이 무엇인지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지난 6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20회계연도 국가결산'을 보면, 지난해 우리나라 국가채무는 846조9000억원으로 집계됐다. 같은 해 명목 GDP 1924조5000억원의 44% 수준이다.
7일 기재부 관계자는 "자료에 부채가 나오니 (일부 언론이) 연금까지 다 국가 빚이라고 하면서 (나라빚이) 800조원에서 2000조원이 됐다"고 지적했다. 재무제표상 부채를 국가채무, 즉 '나라빚'이라고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도 같은 지적을 하고 있다. 최배근 건국대 교수는 페이스북에서 "일반 국민들이 채무와 부채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을 이용해 (언론들이) 장난을 친 것"이라며 "채무는 주택담보대출금처럼 갚아야 하는 빚인 반면, 부채는 헬스장 연회비처럼 헬스장이 문을 닫기 전에는 돌려줄 필요가 없는 '잠재적 채무'"라고 설명했다.
이날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그는 "나라빚은 846조9000억원이 정확한 수치"라고 강조했다.
총자산 2500조는 왜 언급 안 하나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도 페이스북을 통해 "많은 언론에서 2000조원이라고 표현하는 국가부채는 재무제표상 부채 총액을 뜻한다"며 "이를 국가부채라고 칭하면 정말 황당해지는 이유가 바로 충당부채(지출의 시기나 금액이 불확실한 부채)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부채총액이 408조원이고 이 가운데 예수부채(소비자가 맡긴 예금)가 330조원인 은행이 있다고 하자. 이 은행의 자산총액은 438조원인데 이 중 은행이 돌려 받을 수 있는 대출채권이 327조원이며, 금융자산도 16조원에 이른다고 하면 이 은행의 재무건전성을 따지기 위해서는 부채 총액만이 아니라 자산도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이 이 연구위원의 설명이다.
국가 재정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우리나라 자산·부채 현황을 보면, 총자산은 전년보다 190조8000억원 늘어난 2490조2000억원이었고, 총부채는 241조6000억원 증가한 1985조3000억원으로 나타났다. 총자산에서 총부채를 뺀 순자산은 전년보다 50조8000억원 줄어든 504조9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순자산이 2019년보다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자산총액이 부채총액보다 더 많은 상황이다.
또 일부에서 제기된 '1인당 국가채무 1634만원'이라는 주장 역시 잘못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국가채무 846조9000억원을 주민등록인구 5182만명으로 나눠 계산해보면 이런 숫자가 나오는데, 사실과 다른 정보라는 것이다.
1인당 나라빚 1643만원도 잘못된 결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이 연구위원은 "1인당 국가채무는 완전히 틀린 계산이다, 재고할 가치도 없다"며 "분모에 해당하는 주민등록인구에 (정부가 발행한 국채 등에 투자해 이후 국가로부터 돈을 돌려 받을 수 있는) 채권자까지 포함되기 때문"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국채 관련 채권자의 약 85%는 우리나라 국민이라고 그는 부연했다. 2020년 국가채무 846조9000억원 가운데 정부가 발행한 국채 관련 채무는 815조2000억원이다. 다시 말해, 국가채무에 대한 채권자 대부분이 국민이라는 얘기다.
이어 이 연구위원은 "채무 중에는 적자성 채무가 있고, 금융성 채무가 있다"며 "예를 들어 10억원짜리 집을 사면서 1억원을 대출 받은 경우 이는 소득이 아닌 집이라는 자산을 통해 상환할 수 있는 (금융성) 채무로 분류된다"고 덧붙였다. 국가가 자산을 늘리는 데 쓴 금융성 채무는 재정 건전성에 큰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작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1인당 국가채무를 따져볼 땐 적자성 채무에 대해서만 계산해야 한다"며 "그러지 않고 채무총액을 단순히 인구수로 나누게 되면 아예 틀린 결과가 나온다, 이런 계산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피 흘리기 싫어 수술 안 할 수 없어"
▲ 국회예산정책처 재정경제통계시스템 ⓒ 국회예산정책처
나라빚 증가속도가 과거에 비해 빨라지고 있어 문제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은 이견을 표했다. 한국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2001년 17.2%에서 2019년 41.9%, 2020년에는 44%로 상승했는데, 이는 당초 관련 수치가 매우 낮았던 것에 대한 기저효과라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별 2001년과 2019년의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보면, 미국의 경우 53.1%에서 108.7%로 올랐고, 일본의 경우 146.8%에서 238%로 상승했다. 프랑스는 58.3%에서 98.1%로, 스페인은 54.1%에서 95.5%로 올랐다. 과거 한국에 비해 국가채무비율이 높았던 다른 선진국의 해당 비율이 2배가량 오르는 동안 우리나라는 2.4배 상승했다.
최 교수는 "예를 들어 100에서 10이 증가하면 증가율은 10%가 되는데, 1000에서 50이 증가하면 증가율은 5%가 된다"며 "우리나라의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다른 나라보다 낮았기 때문에 증가속도는 상대적으로 빠를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과거보다는 증가속도가 빠르지만, (코로나19로 경기가 악화해) 재정을 투입하지 않으면 GDP가 줄어들기 때문에 (속도 상승에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 연구위원도 "나라빚 증가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이 엄중하다는 의미"라며 "국채를 발행하면 재정건전성이 나빠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발행하지 않는다면 정부가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해 내수경기가 나빠지면서 중장기 경제 상황도 악화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 부채 발행을 반대하는 것은)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 피를 흘리면 안 되기 때문에 수술하면 안 된다고 하는 것과 같다"며 "피를 조금 흘리는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수술을 해야 한다는 얘기"라고 부연했다.
기재부 관계자도 "오는 2023년부터는 코로나19가 종식될 것"이라며 "내년까지는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재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이후 강력한 효율화를 통해 건전성을 회복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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