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려 본 책에 붙인 포스트잇 한 장이 끼친 엄청난 결과
돌고 도는 위로와 응원의 효과... 저도 받은 그 응원 돌려드리겠습니다
내가 유치원 교사였을 때의 일이다. 당시 난 7세 반 담임이었고 그날은 현장 학습에 다녀와서 무척 피곤했다. 현장 학습에 다녀온 후에는 보통 그림 그리기 활동을 한다. 현장 학습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어떤 사건들이 있었는지 이야기 나눈 후 그중 자신이 가장 즐거웠던 일을 그리는 거다.
"자, 다 그린 사람은 선생님께 내세요."
아이들은 한 명씩 나에게 와 자신의 그림을 설명한다. 난 아이의 설명을 간단히 그림 아래 적고 기계적인 칭찬을 했다. 그림을 내고 들어가던 아이의 혼잣말이 들렸다.
"치. 선생님은 맨날 잘했대."
난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 아이를 봤다.
"뭐라고?"
"선생님은 맨날 잘했다고 한다고요. 진짜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순간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아이의 말에 뭐라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칭찬은 좋은 거니까 습관처럼 했던 말. 잘했어. 그 말에 진심이 들어 있는지 없는지는 유치원생도 안다. 그 뒤로 나는 칭찬을 하거나 응원의 말을 할 때, 위로하거나 격려할 때 진심을 담아 말하려고 노력했다.
고르고 골라 하는 위로의 말
상대에게 적절한 격려와 응원의 말을 고르는 일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잘 될 거야"라고 하고 싶지만, 사실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안 될 수도 있다. "힘내. 기운 내"라고 하고 싶지만, 상대방이 힘을 낼 수 없을 것 같기도 하다. "할 수 있어"라고 하려는데 상황을 살펴보니 상대방이 할 수 없을 것도 같아서다.
말주변 없는 내가 확신이 없는 응원의 말을 입 밖으로 삐죽 꺼낼 때마다 상대보다 내가 먼저 민망해졌다. 덮어놓고 긍정하는 낙관은 아무런 힘이 없다.
3~4년 전, 친한 친구가 진로 문제와 여러 가정 문제가 겹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면 절로 한숨이 나왔다. 친구를 응원해 주고 싶은데 도무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도 예전에 비슷한 일을 겪었어. 너 지금 이런 마음이지?'와 같은 섣부른 짐작도,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는 흔한 말도 위로가 될 것 같지 않았다.
난 말을 고르다 고르다 솔직하게 네가 얼마나 힘든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 힘듦의 깊이를 알 수 없다고. 하지만 네가 힘들어하니 너무 속상하다고. 내가 항상 네 편인 걸 잊지 말라고 말하고는 써 온 엽서를 건네주었다.
작년에 그 친구의 집에 갈 일이 있었는데 친구의 침대 머리맡 벽에 내가 줬던 엽서가 예쁜 마스킹 테이프로 붙어 있었다. 그걸 보는 순간, 괜히 울컥했다. 보고서도 못 본 척 다른 얘기만 실컷 하다 친구 집에서 나왔다. 친구는 날 바래다주며 말했다.
"내 침대 맡에 네가 예전에 준 엽서 붙여 놨는데 봤어?"
"아니, 못 봤는데?"
난 봤으면서도 청승맞게 눈물이 날 것 같아 시치미를 뚝 뗐다.
"내가 한참 힘들 때 네가 해준 말이 힘이 많이 됐어. 네가 어떤 말을 했었는지 기억나?"
난 알면서도 고개를 저었다.
"그래? 넌 내가 얼마나 힘든지 그 깊이를 차마 가늠할 수 없다고 했어."
"내가 그런 말을 했어? 에휴, 별말도 아닌데 그게 무슨 힘이 되냐."
친구가 힘들어 했던 시절이 생각나 친구를 쳐다보지도 못한 채 말했다. 내 마음과 솔직한 말이 친구에게 가 닿았다는 사실에 괜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위로를 받은 건 친군데 왜 내가 더 위로받은 것 같은지.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응원의 말
최근에 이런 일도 있었다.
작년 여름, 코로나19로 오랫동안 도서관이 문을 열지 않았다. 도서관이 문을 열 땐 책을 많이 읽지도 않았으면서 도서관이 문을 닫으니 무척이나 책이 읽고 싶어졌다. 읽고 싶은 책을 다 사야 하나, 난감했던 차에 글쓰기 모임을 같이하는 친구가 서로의 책을 빌려보자고 제안했다.
동의하는 사람끼리 카톡방을 만들고 자신의 책 사진을 올렸다. 사진을 보고 빌릴 책을 고른 후, 만나서 책만 교환하고 쿨하게 헤어졌다. 그때 내가 빌린 책 중 일본 작가의 에세이가 있었는데, 아무리 읽어 봐도 그 에세이보다 그 책 주인이 쓰는 글이 훨씬 더 나은 것 같았다. '이 책보다 OO님이 쓴 글이 더 재미있다'라고 책 안에 포스트 잇을 붙인 후 책을 돌려주었다. 며칠 전 그 책의 주인이신 분이 진짜 작가가 됐다. 책이 나왔다고 선물로 주셨는데 책 앞 면지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빌려 본 책보다 제 글이 더 재밌다는 말 큰 힘이 되었어요. 고마워요!"
난 잊고 있었는데 누군가에게 힘이 되었다니. 도리어 내가 감사하고 기뻤다. 힘이 난 사람은 상대방인데 내가 더 기분이 좋아진다. 내가 무척이나 쓸모있는 사람이 된 것 같다. 사람은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이번엔 내가, 이번엔 네가 서로 어깨를 대어주고 발을 받쳐주며 나아가게 한다.
나에게 응원이 되었던 것들을 곰곰이 떠올려본다. 동화 공모전에 떨어져 시무룩한 나에게 다 두더지 심사위원들이라며 날 웃게 해준 글쓰기 모임 친구들의 격려, '이야기꾼 기질이 보인다'는 작가 선생님의 말, 내 이야기를 들으며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어?"라며 궁금해하는 딸 아이의 목소리, 이야기를 잘 꾸며낸다고 지나가며 툭 던진 남편의 말, 내 글을 읽으며 큭큭 웃는 엄마의 웃음소리, 내 글 밑에 달린 사람들의 댓글.
진심만 있다면 꼭 포장된 그럴듯한 말이 아니어도 괜찮다. 진심 어린 몸짓과 말과 글이 날 일으키고 나아가게 한다. 이 길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떨치고 오늘도 노트북을 열게 한다. 모두 기다리시라, 언젠간 이 응원을 감사로 다 돌려줄 터이니.
"자, 다 그린 사람은 선생님께 내세요."
"치. 선생님은 맨날 잘했대."
난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 아이를 봤다.
"뭐라고?"
"선생님은 맨날 잘했다고 한다고요. 진짜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순간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아이의 말에 뭐라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칭찬은 좋은 거니까 습관처럼 했던 말. 잘했어. 그 말에 진심이 들어 있는지 없는지는 유치원생도 안다. 그 뒤로 나는 칭찬을 하거나 응원의 말을 할 때, 위로하거나 격려할 때 진심을 담아 말하려고 노력했다.
고르고 골라 하는 위로의 말
▲ ⓒ elements.envato
상대에게 적절한 격려와 응원의 말을 고르는 일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잘 될 거야"라고 하고 싶지만, 사실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안 될 수도 있다. "힘내. 기운 내"라고 하고 싶지만, 상대방이 힘을 낼 수 없을 것 같기도 하다. "할 수 있어"라고 하려는데 상황을 살펴보니 상대방이 할 수 없을 것도 같아서다.
말주변 없는 내가 확신이 없는 응원의 말을 입 밖으로 삐죽 꺼낼 때마다 상대보다 내가 먼저 민망해졌다. 덮어놓고 긍정하는 낙관은 아무런 힘이 없다.
3~4년 전, 친한 친구가 진로 문제와 여러 가정 문제가 겹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면 절로 한숨이 나왔다. 친구를 응원해 주고 싶은데 도무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도 예전에 비슷한 일을 겪었어. 너 지금 이런 마음이지?'와 같은 섣부른 짐작도,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는 흔한 말도 위로가 될 것 같지 않았다.
난 말을 고르다 고르다 솔직하게 네가 얼마나 힘든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 힘듦의 깊이를 알 수 없다고. 하지만 네가 힘들어하니 너무 속상하다고. 내가 항상 네 편인 걸 잊지 말라고 말하고는 써 온 엽서를 건네주었다.
작년에 그 친구의 집에 갈 일이 있었는데 친구의 침대 머리맡 벽에 내가 줬던 엽서가 예쁜 마스킹 테이프로 붙어 있었다. 그걸 보는 순간, 괜히 울컥했다. 보고서도 못 본 척 다른 얘기만 실컷 하다 친구 집에서 나왔다. 친구는 날 바래다주며 말했다.
"내 침대 맡에 네가 예전에 준 엽서 붙여 놨는데 봤어?"
"아니, 못 봤는데?"
난 봤으면서도 청승맞게 눈물이 날 것 같아 시치미를 뚝 뗐다.
"내가 한참 힘들 때 네가 해준 말이 힘이 많이 됐어. 네가 어떤 말을 했었는지 기억나?"
난 알면서도 고개를 저었다.
"그래? 넌 내가 얼마나 힘든지 그 깊이를 차마 가늠할 수 없다고 했어."
"내가 그런 말을 했어? 에휴, 별말도 아닌데 그게 무슨 힘이 되냐."
친구가 힘들어 했던 시절이 생각나 친구를 쳐다보지도 못한 채 말했다. 내 마음과 솔직한 말이 친구에게 가 닿았다는 사실에 괜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위로를 받은 건 친군데 왜 내가 더 위로받은 것 같은지.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응원의 말
▲ '이 책보다 OO님이 쓴 글이 더 재미있다'라고 책 안에 포스트 잇을 붙인 후 책을 돌려주었다. ⓒ elements.envato
최근에 이런 일도 있었다.
작년 여름, 코로나19로 오랫동안 도서관이 문을 열지 않았다. 도서관이 문을 열 땐 책을 많이 읽지도 않았으면서 도서관이 문을 닫으니 무척이나 책이 읽고 싶어졌다. 읽고 싶은 책을 다 사야 하나, 난감했던 차에 글쓰기 모임을 같이하는 친구가 서로의 책을 빌려보자고 제안했다.
동의하는 사람끼리 카톡방을 만들고 자신의 책 사진을 올렸다. 사진을 보고 빌릴 책을 고른 후, 만나서 책만 교환하고 쿨하게 헤어졌다. 그때 내가 빌린 책 중 일본 작가의 에세이가 있었는데, 아무리 읽어 봐도 그 에세이보다 그 책 주인이 쓰는 글이 훨씬 더 나은 것 같았다. '이 책보다 OO님이 쓴 글이 더 재미있다'라고 책 안에 포스트 잇을 붙인 후 책을 돌려주었다. 며칠 전 그 책의 주인이신 분이 진짜 작가가 됐다. 책이 나왔다고 선물로 주셨는데 책 앞 면지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빌려 본 책보다 제 글이 더 재밌다는 말 큰 힘이 되었어요. 고마워요!"
난 잊고 있었는데 누군가에게 힘이 되었다니. 도리어 내가 감사하고 기뻤다. 힘이 난 사람은 상대방인데 내가 더 기분이 좋아진다. 내가 무척이나 쓸모있는 사람이 된 것 같다. 사람은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이번엔 내가, 이번엔 네가 서로 어깨를 대어주고 발을 받쳐주며 나아가게 한다.
나에게 응원이 되었던 것들을 곰곰이 떠올려본다. 동화 공모전에 떨어져 시무룩한 나에게 다 두더지 심사위원들이라며 날 웃게 해준 글쓰기 모임 친구들의 격려, '이야기꾼 기질이 보인다'는 작가 선생님의 말, 내 이야기를 들으며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어?"라며 궁금해하는 딸 아이의 목소리, 이야기를 잘 꾸며낸다고 지나가며 툭 던진 남편의 말, 내 글을 읽으며 큭큭 웃는 엄마의 웃음소리, 내 글 밑에 달린 사람들의 댓글.
진심만 있다면 꼭 포장된 그럴듯한 말이 아니어도 괜찮다. 진심 어린 몸짓과 말과 글이 날 일으키고 나아가게 한다. 이 길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떨치고 오늘도 노트북을 열게 한다. 모두 기다리시라, 언젠간 이 응원을 감사로 다 돌려줄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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