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군산이라는 도시를 좋아하지 않았다. 발전도 없어 보이고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매일 가던 곳만 가는 작은 이 도시가 답답해 보였다. 큰 도시에 가서 더 멋지게 살고 싶었다. 그냥 더 크고 문화적 혜택이 많은 곳에서 살면 내 삶이 더 풍요로워지고 행복해질 것 같았다.

마흔일곱이 된 지금도 나는 고향에 살고 있다. 타지역에 사는 친구들이 내려오면 언제나 나를 먼저 찾았다. 나는 친구들 사에에 '통로' 같은 사람이었다. 다른 친구도 있는데 왜 나를 통해서 친구들을 모이게 하고 만나려고 하는지 궁금했던 적이 있다.

"네가 편하니까. 넌 한결같으니까. 네가 분위기를 잘 이끌어 주니까."

친구들에게 들은 말들은 이렇게 단순하면서 따듯한 말들이었다. 그래도 가끔은 나도 다른 지역에 살고 고향에 내려왔을 때 나를 반겨주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도 사실 이런 생각을 아주 가끔은 하며 산다.

하루에 만 보를 걸으며 깨달은 것 

코로나로 여행도 못 가고 사방이 막히고 약간의 무력감과 우울감이 찾아왔을 때, 나는 그것들로부터 벗어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시를 필사하고, 그림을 그리고, 그림책을 함께 만드는 모임에도 들어가서 그림책도 만들어 보고, 서점에 가서 책을 읽고, 한길문고에서 어떤 강연을 할지 기대하며 기다리고, 에세에를 쓰고, 하루에 만 보를 걷고, 비대면 그림책 수업도 찾아 듣다보니 나의 생활은 언제나 바빴고 우울 따위는 내 근처에 얼씬도 못 하게 되었다.

하루에 만 보를 걸으며 '내 고향이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구나'를 새삼 느꼈다.

'그동안 내가 잘 안 걸어 다녔나? 이런 곳이 다 있었구나.'
 
지금은 친구들에게 군산만 오면 내가 좋은 곳을 안내해주겠다고 큰소리를 뻥뻥 친다. 산책할 때 매일 같은 길로 가지 않는다. 군산에서 유명한 은파호수공원에 가더라도 새로운 길이 보이면 일단 그 길로 가본다.

솔직히 좀 겁은 난다. 난 길치라서 길이 아닌 곳으로 들어가 막혀 있는 곳에서 당황했던 적이 많았다. 그래도 매번 도전한다. 그래서 혼자 다니기를 좋아한다. 창피하니까. 오늘도 아는 선생님과 저녁 산책을 하는데 다른 길로 갔더니 역시나 막힌 곳이었다. 창피해서 얼른 돌아 나왔다. 헛웃음이 나왔다. 내가 많이 변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건 변하지 않는구나.
   
은파에는 물빛 다리와 별빛 다리가 있다. 별빛 다리는 최근에 생긴 다리라 작년부터는 그 다리를 통해 많이 걷는다. 오늘도 아름다운 노을을 감상했다. 엊그제 본 노을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시간이 달랐기 때문에 오늘은 해가 거의 들어가고 하늘이 오렌지빛으로 물들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우리는 각자의 폰으로 정성껏 사진을 찍었다. 내가 사랑하게 된 별빛다리.

월명공원은 군산의 대표적인 공원이다, 나는 지금까지 어릴 때부터 다니던 이성당에서 직진해서 올라가는 길과 나운동에서 청소년수련원을 통해 가는 길로만 다녔다. 작년 봄에 산책을 하다 보니 걷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인적이 드문 길을 찾다 보니 월명공원으로 가는 다른 길을 발견했다. 그 길로 다니는 사람은 정말 드물다.

어느 땐 혼자 걷기도 한다. 생일이라고 친구가 세종에서 내려왔다. 우리는 밥도 먹지 않고 산으로 갔다. 나는 그 멋진 길로 친구를 안내했다. 동백꽃과 벚꽃이 가득 한 그 길로 걸어가면 친구는 맨발로 걷고 싶다며 신발을 벗었다.

동백숲을 보며 '너무 신비롭다, 군산에 이런 곳이 있었냐'며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 맨발로 사뿐사뿐 걷다가 춤을 추며 깔깔대며 웃었다. 이 나이에 동심이 가득한 친구가 너무 사랑스러웠다. 사람이 없으니 가능한 일이었다. 꼭대기로 올라가면 발길이 닿는 바람의 언덕. 그 곳에 서서 군산을 내려다보니 내 고향이 꽤 괜찮은 곳이라는 자부심이 들었다.
   
군산은 새만금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몇 번 갔지만 작년 겨울에 발견한 나의 힐링 코스. 바로 비응도 '마파지길'이다. 바다도 실컷 볼 수 있고 데크길로 산책도 할 수 있고 노을 사진을 찍기에도 아주 멋진 곳이다.

바다가 보고 싶을 때 조용히 드라이브할 겸 다녀오곤 한다. 파도 소리에 집중하다 보면 잡념도 사라진다. 혼자여도 좋고 둘이여도 좋은 곳, 거기서 찍은 사진만 100장은 될 것이다. '군산에도 제주도 같은 곳이 있다'며 타지역에 사는 친구들에게 자랑을 하곤 한다.
 
요즘에는 골목길 투어를 하는 중이다. 어린 시절 살던 삼학동, 서흥남동, 미원동으로 걷다보면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나곤 한다. 추억에 잠기기도 하고 새로 생긴 상가가 신기해서 바라보다가 들어가 보기도 한다. 때로는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 호떡을 먹기도 한다. 골목길 투어는 시간이 날 때마다 할 것이고 다른 길로 다녀보며 군산의 구석구석을 살펴볼 생각이다.

'정말 나는 내 고향을 제대로 걸어보지도, 알려고 하지도 않았구나.'

어쩌면 코로나로 인해 이런 변화도 생긴 것 같아 지금 이 순간이 답답하지만은 않다. 감사하고 소중하다.

내 나이 오십을 바라보는 어느 날부터 서서히 내 고향, 군산을 사랑하게 되었다. 군산의 아름다운 길들이 사라지지 않고 머물러 주기를.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한길문고'와 '그림책 앤' 같은 동네 책방들이 사라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