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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군 가슴에 전동 드릴 돌린 상관... 황당한 1심 판결

[군사법원 성범죄판결 집중분석 ⑤] 위험한 물건 아니다?... 너무 다른 강제추행 감별법

등록|2021.05.12 07:08 수정|2021.05.12 07:08
군사법원의 빗장이 드디어 풀렸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2월 1일 국방부 판결문 열람 서비스 시작과 동시에 최근 2년간 각 군 성범죄 판결문 158건을 전수분석했다. 국정감사때 마다 등장하는 군사법원 '솜방망이 처벌'의 실체와 판결문 속에 만연한 '군 중심주의'를 파헤쳤다. 8회에 걸친 연속보도를 통해 군사법원의 존재 이유를 묻는다. [편집자말]
 

▲ 여군 가슴에 전동 드릴을 돌린 상급자, 1심과 2심의 판단이 달랐다. ⓒ free image


강제추행. 군사법원 성범죄 사건 판결문 속 흔하디흔한 죄명 중 하나다. 폭행이나 협박으로 사람에게 추행을 행한 죄를 말한다.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문제는 이 죄를 판단하는 군사법원의 시각이 피해자의 피해 호소보다 재판부의 자의적 판단에 기대고 있다는 점이다. 


전동드릴=위험한 물건... 왜 2년이나 걸렸을까

2017년 10월 오후 1시께, 경기도 파주의 한 유격훈련장 지휘통제실 텐트 안. 20대 초반의 여군 하사 등 뒤로 전기 드릴이 다가 오고 있었다. 증거기록에 따르면 길이 31.5센티미터, 높이 24센티미터, 무게 1~2킬로그램의 공구. 2~3초씩 짧게 3회씩 "윙-윙-". 공포로 굳어버린 그의 왼쪽 어깨 위로 전기 드릴이 돌아갔다. 

가해자는 같은 부대 상관인 A씨. 위험천만한 행동 직후 '조용히 하라'는 상급자 소령 D의 제지가 멀리서 날아왔다. A는 잠시 멈췄다가 다시 드릴을 잡았다. 이번엔 피해자의 가슴 가까이에 대고 처음 보단 낮은 소리로 "윙-" 드릴을 돌렸다. 아무도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피해자는 공판 과정에서 "찔러서 아픈 것보다는 몸을 찌른다는 것이 위협적이어서 무서웠다"고 했다.

사건 발생 약 1년 뒤인 2018년 9월, 제1군단보통군사법원은 이 드릴이 "위험한 물건이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가해자에게 특수강제추행죄를 적용하지 않았고 특수폭행죄도 인정되지 않았다.

사용시간과 장소, 피해 부위와 접촉 정도, 당시 현장 사람들의 반응을 종합한 결론이라고 했다. '당시 현장 사람들의 반응'을 증언한 목격자는 피고인에게 제지 명령을 내렸던 같은 부대 소령이자, 피고인을 위해 탄원서를 작성해준 인물이었다. 가해자가 1심에서 받은 형량은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이다.
 
전기적 힘을 이용해 날을 돌려 금속이나 목재 등 다른 물체에 구멍을 뚫거나 나사를 고정하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로 경우에 따라 출혈까지 일으킬 위험이 있고 피부를 뚫고 지나가면 고통을 유발할 수 있다.

"위험한 물건에 해당한다"는 답이 나오기까지, 피해자는 계속 "너무 무서웠다"고 호소해야 했다. 1심에서 인정하지 않은 추행 부위의 문제점도 다시 짚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폭행 행위로 드릴을 접촉한 부위는 팔이나 어깨인 반면, 추행 부위는 여성에게 있어 성적으로 매우 민감한 가슴 부위라 접촉 신체 부위만으로도 피고인의 범행의도가 분명히 다르다"고 판시했다. 가해자는 결국 2심에서 경합범 가중으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과 아동청소년 관련기관 취업제한 3년을 받았다. 죄는 늘어났지만, 역시 실형은 면했다.
  
군사법원의 최근 2년간 성범죄 판결을 분석하면서, 항소심에서 강제추행의 정도가 바로잡힌 건 이 사례를 제외하고 극히 드물었다. 추행 자체를 소극적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들 판결문엔 똑같거나 비슷한 문구가 자주 등장했다.
 
사회통념상 성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거나 성적 흥분을 일으키는 신체부위라고 하기 어렵다.

군사법원이 '만져도 괜찮은 부위' 판별법, 사회적 통념 
 

▲ 원심과 항소심에서 모두 증거로 채택됐던 '드릴'. ⓒ 고등군사법원 판결문 인쇄본


'사회통념상 성적 의미를 가진 부위'란 어디일까? 손목, 종아리, 뒷목, 허리, 팔뚝, 무릎, 손... 일부 고등군사법원 강제추행 판결에서 '성적 의미가 없는 부위'로 판별된 곳들이다.

2018년 10월부터 한 달 가까이 함정 안에서 발생한 해군 강제추행 사건이 대표적이다. 사건은 상관 사무실, 취사장  등등 대부분 항해 중이거나 정박 중인 함대 안에서 벌어졌다. 피해자는 20대 중반의 여성 하급자 두 사람이었고, 가해자는 그들의 상관이었다. 가해자는 일부 추행만 유죄로 인정 돼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으로 벌금 200만 원을 선고받았다.

강제추행 여부를 바라본 1심 재판부인 제2함대사령부 보통군사법원과 2심 고등군사법원 제1부의 시각은 동일했다.
 
(○○)는 상대방 허락 없이 만질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성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거나 성적으로 민감하고 성적 흥분을 일으키는 신체 부위라고 보기 어려운 점.

해당 문구는 판결문에서 토씨하나 바뀌지 않고 3차례 반복됐다. 빈칸에는 각각 팔뚝과 무릎, 손이 번갈아 들어갔고, 피해자들이 추행으로 인식한 상황이 묘사돼 있었다.

흔들리지 않는 배 안에서 '배가 흔들린다'면서 갑자기 피해자의 좌우 팔뚝을 잡으며 만진다거나, '요즘 힘든 것 있느냐'며 의자에 앉게 한 뒤 다리를 벌려 무릎과 무릎을 접촉하고, 피해자가 쥔 핫팩 위로 손을 올려 지긋이 잡고 흔드는 등의 행위였다. 모두 당시 피해자들의 의사에 반한 행동이다.

'브래지어 끈'을 천천히 위아래로 쓰다듬거나, 당시 현장에 있던 제3자가 '여군 앞에선 좀 부적절한 표현 같다'고 말한 "촉촉히 젖으러 가자"는 발언 등 일부 행위만은 유죄로 판단했다. 같은 부위에 대한 다른 판단도 있다. 지난해 6월 고등군사법원 제2부에서 선고된 육군 사건에선 브래지어 끈 부위에 대한 추행을 "인격적 존재로서 수치심이나 모욕감을 느끼게 할 만한 것이라고 평가하기 어렵다"며 무죄로 봤다.

군사법원 재판을 주기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는 현장 전문가들은 강제추행에 대한 군사법원의 '복사-붙여넣기' 판결에 우려 섞인 비판을 던지고 있다. 군 특유의 상명하복 구조에서 계급 간 성 범죄 유형이 다양하게 발생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이런 식의 판결로는 그러한 범죄들을 단죄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방혜린 군인권센터 상담지원팀장은 "아직 일부 판결에선 군 지휘부의 의중을 기계적으로 수용해 결론을 내리기도 하고, 피고인과 피해자 사이 권력 관계나 상황들을 고려해 판단하는 판결은 보기 드물다"라면서 "민간 법원과 군사 법원의 판결을 비교했을 때, 군사법원의 결론이 천편일률적인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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