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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신고서' 한 장으로 아이의 운명이 갈라졌다

[베이비박스 심층리포트 ④] 가정보호 최우선 원칙 지켜야 할 책임, 국가와 지자체에 있다

등록|2021.04.23 20:25 수정|2021.04.26 15:59

▲ 지난 1월 어느 화요일 오전. 10분 간격으로 두 아이의 운명이 갈라졌다. 한 아이는 입양으로 다른 한 아이는 시설로. 차이라고는 출생신고서 한 장 때문이었다. ⓒ 김지영


2021년 1월 어느 화요일 오전, 포대기에 싸인 두 아이의 운명이 갈라졌다. 한 명은 입양으로, 다른 한 명은 시설로.

2주 간격으로 베이비박스에 온 아이들이었다. 아이를 놓고 돌아서는 생모를 뛰어가 만나 모두 상담을 했다. 먼저 아이를 포기하지 않고 키울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모든 걸 설명하고 설득했다. 제 새끼 싫어서 놓고 가는 생모는 별로 없었다. 대체로는 죽을 만큼 힘든데 아이라도 살려보려고 그 먼 길을 일부러 달려온다. 둘 다 아이를 다시 데려가기에는 주변을 둘러싼 환경이 가혹하고 혹독했다.

도저히 키울 수 없으면 입양이라도 보내야 하지 않겠냐고 설득했다. 입양은 베이비박스에 아이와 함께 놓인 생모의 편지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다. 자신보다 더 좋은 조건의 부모를 만나게 해달라는 말은, 그들이 아이에게 가지는 미안함 만큼의 절박함이다. 언제라도 다시 찾아가기를 원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아이가 시설에서 자라길 원하는 생모는 없다.

출생신고서로 갈린 두 아이의 운명

현행법은 입양을 보내려면 반드시 출생신고서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 대체할 것도 없다. 무조건 그것이어야 한다. 베이비박스에 아이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시점은 입양특례법이 시행된 2012년부터다. 몇십 명에 불과하던 아이들이 갑자기 200명대로 폭증했다. 출생신고를 할 수 없어 아이를 두고 간다는 편지는 지금도 줄지 않는다. 두 아이의 생모도 같은 편지를 가지고 왔었다.

둘 중 한 생모는 도저히 출생신고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미성년자였고 부모 몰래 출산했으며, 베이비박스에 와서야 아이 탯줄을 끊을 정도로 몸을 추스르기도 벅찬 참담한 상황이었다. 어린 생모는 아이에게 좋은 부모를 만나게 해 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남겼다. 아이의 태명은 은하수였다.
 

▲ 입양이 결정된 서연이는 입양부모와의 결연 전까지 입양기관 위탁가정에서 보호된다. 가정보호와 시설보호로 운명을 달리하는 순간 각자 가야 할 곳도 달라진다. 가정보호는 위탁가정으로 시설보호는 일시보호소를 거쳐 아동보육시설로 간다. ⓒ 김지영


다른 생모는 오랜 얘기 끝에 출생신고를 결심했다. 이 아이 이름은 서연이다. 사실 출생신고도 쉽지 않은 환경이지만, 아이를 위한 최선을 그녀는 외면하지 않았다. 이처럼 출생신고가 두려워 베이비박스를 찾았다가 상담을 통해 출생신고를 하고 아이를 입양 보낸 생모가 2016년부터 매년 20명을 꾸준히 넘고 있다.

베이비박스에 와서 일주일 동안 함께 있었던 두 아이는 그날 오전 10분 간격으로 서로 다른 길로 가야 했다. 출생신고가 된 서연이는 입양기관에서 데려가고, 출생신고가 안 된 은하수는 유기아동으로 분류되어 관악구청에서 데려갔다. 이후 서울시 아동복지센터를 거친 후 보육원으로 불리는 아동복지시설에 입소했다.

똑같이 생모로부터 양육이 포기된 두 아이의 운명을 입양과 시설로 가른 유일한 서류가 출생신고서였다. 단 한 장의 서류가 가정으로 갈 수 있는 아이를 시설로 밀어 넣었다. 그렇다고 은하수가 18세가 될 때까지 시설에서만 살아야 하는 운명은 아니다. 은하수가 다시 새로운 가정에서, 엄마 아빠의 사랑 속에서 자랄 기회는 아직 남아 있다. 입양특례법 제 11조 1항은 입양 대상 아동의 자격 조건을 이렇게 적시한다.

'양자가 될 아동의 출생신고 증빙 서류.'

국가의 외면

처음에 아이들이 시설로 가야 했던 이유가 생모가 포기했던 출생신고서라면 이 아이들이 다시 가정으로 갈 수 있는 서류도 '출생신고 증빙 서류'다. 출생신고서가 포기된 유기아동의 출생신고는 법적 후견인이 절차를 밟아 완료한다.

출생신고가 완료된 아동은 곧 입양대상이다. 그 후 아이는 우리나라 아동복지 보호체계의 원칙에 따라 가정보호를 위한 입양이나 위탁 절차를 밟아 가정에서의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없는 이 일은 국가의 책임하에 공적구조 안에서 해결하게 되어 있다. 문명국가의 당연한 도리다.

그러나 우리나라 아동복지의 차가운 현실은 이 당연한 도리를 외면하고 있다. 그리고 누구도 그에 대해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유기아동의 가정보호 조치를 위한 적극적인 시도에 찬물을 끼얹는다.

2019년 11월 발표된 감사원 보고서의 한 대목을 옮겨본다.
 
'2014년부터 2018년까지 베이비박스에 유기된 아동 962명 중 929명(96.6%)이 임시 보호되다가 아동양육시설 등 시설로 보호조치 되었고, 가정보호로 조치된 아동은 33명(3.4%)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기아동이 발생한 초기 단계에서 이미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아동보호에 대한 적극적 조치 대신, 적극적으로 모른 체 했다. 보고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이어진다.
 
'더욱이 이와 같이 아동복지시설로 최초 보호조치된 베이비박스 유기 아동(929명) 중 차후에 가정보호로 변경된 아동은 입양 111명, 가정위탁 17명으로 총 128명(13.8%)에 불과하였고 대부분(748명, 80.5%)의 아동은 현재까지 아동복지시설에서 보호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말하자면 2014년부터 2018년 동안 발생한 베이비박스 유기아동의 80.5%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외면 속에서 아동복지 시설에서 자란다. 이 아이들에게 가정보호 최우선 원칙인 문재인 정부의 포용적 복지국가는 그저 아름다운 구호에 불과하다.

관련 법령조차 지키지 않는 현실

유기아동 발생 초기에 대응을 하지 못했다면, 사후에라도 적극적 보호조치에 임해야 한다. 이는 상식에 속하는 공적 책무다. 가정보호 최우선 원칙을 시설보호 최우선 원칙으로 바꾸지 않는 한은 그렇다.

시설에 사는 748명의 아이들은 애초에 유기아동이었다. 부모로부터 완전히 양육이 포기된 이 아이들도 분명히 새로운 부모를 만나 가정 안에서 자랄 권리가 있고, 그 권리에 대한 책임을 국가가 지게 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어떤 공적 기관도 그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회피하고 있다. 앞서 말한 구청에서 데려간 은하수를 따라가 보면 우리는 그 이유를 알게 된다.

관악구청 사회복지 담당 직원이 아이를 데려간 곳은 보라매 병원이다. 여기서 검진을 받은 몇 시간 뒤 아이를 안고 이동한 곳은 강남구 수서동에 있는 서울시 아동복지센터 일시보호소다. 이곳에서 아이가 시설 내 규정에 의해 보호받을 수 있는 기간은 3개월이고, 한 차례 연장할 경우 최대 6개월까지다.

이 기간 법적으로 해야 할 국가적 책무, 즉 유기아동에 관한 관계법령에 따른 지침을 담은, 보건복지부 발행 아동보호서비스 매뉴얼(아동분야 사업안내1) 절차를 순서대로 하면 다음과 같다.
 

▲ 보건복지부. 2020 아동분야 사업안내 1. 매뉴얼에서는 유기아동 성본창설을 위한 법령에 근거한 지방자치단체의 책임과 추진업무에 대한 지침을 분명히 적시하고 있다. ⓒ 김지영

 
1. 유기아동을 발견 또는 발견통지를 받은 경찰공무원은 24시간 이내에 그 사실을 시(구)·읍·면의 장에게 통보하여야 함(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제 52조 제1항)
2. 시·읍·면의 장은 직접 또는 시(구)·군 아동복지 담당 등을 통해 유기아동 발견 즉시 보호조치를 하도록 함.
3. 아동을 보호하고 있는 시설 등의 관할 시·군·구(또는 읍·면·동) 담당자는 보호조치 후 즉시 성 및 본 창설을 위한 법원 허가절차를 진행하여야 하며, 법원 허가에 따라 이름과 등록기준지를 정하여 등록부에 기재하여야 함.

서울시 아동복지센터 일시보호소에 인계된 아동은 그 보호소에서 최장 6개월을 머물 수 있고, 그 기간 동안 시(구) 아동복지 담당자에 의해 즉시 성 및 본 창설을 위한 법원 허가절차를 거쳐, 출생신고에 따른 단독호적(성본창설)을 만든 후 가정위탁이나 입양을 통한 가정보호 조치가 되어야 한다. 이를 국가 스스로 관계법령을 통해 분명히 못박고 있다.

이 매뉴얼대로만 했다면 유기아동 발생 초기 가정보호율 3.4%라는 부끄러운 수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80.5%라는 기록적인 수치 역시 가정보호 최우선 원칙에서 배제된 아이들의 삶이라는 걸, 참담한 우리나라 아동복지 현실이라는 걸 이렇게 조명할 일도 없을 것이다.
 
매뉴얼과 법령대로라면 은하수는 서울시 아동복지센터 일시보호소에서 최장 6개월까지 보호받으면서, 지방자치단체장을 후견인으로 하는 성본창설 절차를 밟아야 한다. 그러는 와중에 해당 자치구의 아동복지심의위원회로부터 입양대상 아동임을 통보받으면 입양기관에서 운영하는 위탁가정으로 인계되어 곧바로 가정보호조치에 들어간다.

이후 예비입양 부모와의 결연을 거쳐 입양으로 이어진다. 절차상 입양기관 위탁가정으로 인계되기까지 필요한 2~3개월 정도의 보호기간을 지방자치단체에서 책임 있게 보호하고, 가정보호를 위한 법적 행정적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게 마땅하다.

은하수가 일시보호소에서 머문 기간, 단 하루

하지만 현실은 이런 최소한의 공적 보호를 허락하지 않는다. 은하수가 서울시 아동복지센터 일시보호시설에서 머물 수 있는 기간은 하루나 이틀이 전부다. 30명 정원인 일시보호소의 공간 문제와 영유아 전담 보호 직원의 부족 등을 이유로 2014년 이전부터 이미 유기아동에게 일시보호소는 시설로 건너가기 위한 매표소 역할만 해왔다.

유기아동이 일시보호소를 거쳐야 하는 법적 문제만 만족 시키면 아이는 서류에 잉크도 마르기 전에 바로 시설로 보내져 버린다. 이는 관행이 된 지 오래다. 부족한 시설과 인력은 넓히고 채우는 게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하지만 지난 십 년 동안 시설도 인력도 변함 없다. 말하자면 의지가 없다. 베이비박스가 소재한 관악구청과 서울시 입장에서는 이런 오랜 관행이 골치 아픈(?) 유기아동 문제를 손쉽게 해결하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

관악구청에서는 유기아동을 바로 아동복지센터에 보내면서 아동에 대한 성본창설 책임을 떠넘길 수 있다. 서울시에서는 일시보호시설에서 아이를 보호하지 않고 바로 보육원 등의 시설로 넘기면서 정원 부족의 공간 문제를 해결하고, 아이를 보호하는 과정에서 밟아야 할 행정적인 부담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진다.

아이가 시설로 넘어가는 순간 이 아이의 법적 후견인으로서 모든 권리가 해당 시설장에게 함께 넘어가기 때문이다. 그 시설은 이 아이 앞으로 나오는 사회복지 보조금뿐 아니라 이 아이에 대한 모든 권리를 함께 이양받게 된다. 이제 이 아이의 운명은 순전히 시설장에게 달려 있다.

아이가 시설로 넘어가는 순간 지방자치단체는 이 아이에 대한 모든 책임에서 벗어난다. 아동복지시설에 보호조치 된 후 13.8%에 불과한 가정보호로의 변경 조치도 사실은 해당 시설장의 허락이 없이는 불가능한 수치다. 은하수가 베이비박스에 와서 시설에 가기까지 해당구청과 서울시에서 한 일은 이 아이를 서둘러 시설로 보내는 일이었다. 현행 입양특례법이 시행된 2012년부터의 일이다. 추산으로 천 명이 넘는 아이들이다.

유기아동에 대한 국가적 책무를 담은 매뉴얼이 지금 이 순간에도 시퍼렇게 살아 지침으로 남아 있지만, 현실은 매뉴얼로만 남아 있다. 은하수가 아동복지센터 아동일시보호소에서 머문 기간은 겨우 단 하루였다. 유기아동에 대한 책임을 포기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스스로 만든 매뉴얼의 주어를 '시·읍·면'이나 '시(군)·군 아동복지 담당자'가 아닌 '아동복지시설장'으로 변경하고, 유기아동 보호를 포기한다고 선언해도 지장이 없는 게 현실이다.

매뉴얼은 그것대로 하라는 지침이지 그렇게 되기를 원하는 선언이 아니다. 지켜지지 못한 데 대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그 책임을 오롯이 아이들이 자기들의 삶을 희생 당하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다.

은하수는 지금 시설에 산다. 2018년 이후 변동이 없다면 태어난 지 곧 백일이 되는 은하수가 시설이 아닌 가정에서의 삶을 살아갈 확률은 13.8%다. 그것도 입양에 매우 적극적인 시설장을 운 좋게 만났다는 가정하에서 가능한 일이다.

시설장에 따라 극명하게 엇갈릴 이들의 운명
  

▲ 낳은 부모로부터 양육이 포기된 아동을 대신 보호해야 할 국가가 유기아동을 외면하고 있다. 포대기에 쌓여 차를 타는 이 아이의 운명이 가정보호 최우선 원칙에 따라 시설에서 다시 위탁이나 입양으로 결정될 확률은 2018년까지 13.8%였다. ⓒ 김지영


지난 1월 어느 화요일 오전 은하수와 10분 간격으로 다른 길로 갔던 서연이는 지금 새로운 부모를 만나 입양재판을 진행하는 중이다. 서연이는 입양 전제 위탁으로 새로 만난 엄마 품에서, 벌써 저 하나만 바라보는 엄마 아빠의 사랑 속에 백일을 맞이하고 있다.

서연이가 가정보호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생모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출생신고를 해주었기 때문이다. 출생신고를 외면한 은하수의 생모를 대신해야 할 대상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였다. 그건 법으로도 지침으로도 분명하게 적시되어 있는 국가적 책무였다. 하지만 그건 지켜지지 않았고 오히려 적극 배제되었다.

2012년 이후 지난 십 년 가까운 세월 동안 천 명이 넘는 아이들이 이렇게 허무하게 자기 삶을 희생당했다. 발견 즉시 보호조치하고, 아동일시보호소에서 충분히 보호받는 동안 성본창설을 거쳐 가정보호 최우선 원칙을 지켜내야 할 책임은 관악구청과 서울시의 몫이었다. 아동보육시설로의 이동은 그런 최선의 원칙이 지켜진 후의 경로여야 했다.

올해 1월부터 3월까지 베이비박스에 들어 온 아동은 41명. 이 중 6명은 생모의 품으로 다시 돌아가고 8명의 아이는 생모로부터 출생신고 된 후 입양절차를 밟고 있다. 홀로 남아 유기아동이 된 29명의 아이는 지난 10년 동안의 관행대로 서울시 아동복지센터의 일시보호소를 잠깐 거친 후 시설로 보내졌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포기한 이 아이들의 운명은 이제 시설장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극명하게 엇갈릴 것이다. 태어나 백일이 가까워 오는 은하수가 다시 가정에서 자랄 확률은 2018년 기준으로 13.8%다. 지금 시설에 사는 은하수에게 그것마저도 국가의 몫은 아니다. 서울시와 관악구청은 처음부터 은하수의 가정보호에 관심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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