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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사람들, 오늘도 '걷쥬' 하고 있쥬?

충남체육회에서 개발한 앱 '걷쥬'의 도움으로 매일 걷기 운동에 나서는 사람들

등록|2021.04.23 11:38 수정|2021.04.23 11:38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다. 여행도 별로이고 돌아다니는 것 자체를 즐기지 않는다. 어쩌면 비대면과 집콕 시대에 최적화된 체질인 셈이다. 전염병의 시대라는 명분 속에 집 안에서의 생활을 즐기며 잘 지내는 나날이었다.

전염병의 시간이 겨울을 통과하는 동안 바깥 세상을 더욱 랜선으로만 접하면서 행동반경을 집안으로만 제한한 생활을 즐겼다. 역마살을 타고 난 사람들에겐 전염병의 시국이 견디기 어렵겠지만 외부 활동을 즐기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합리적인 핑계로 집안에 머무를 기회가 생긴 셈이었다.

겨울이 지나도 전염병은 여전히 극성이었고 나에게는 '아무것도 하지 않음'에 대한 후유증이 찾아왔다. 어느 날부터 손이 저렸다. 피가 통하지 않는 듯 손마디에 저릿한 통증이 왔다. 예정된 질병의 신호였다. 이미 대사증후군 고위험군 진단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음을 즐긴 대가였다.

'집콕'이 체질이지만
 

서동요 출렁다리의 새벽이 다리를 건너 둘레길이 연결되어 있다. '걷쥬' 도전 이후 이 다리를 날마다 건넌다. ⓒ 오창경


혈액 내 중성지방이 비중이 높아서 생기는 대사 증후군의 전조 증상이었다. 섭취하는 것에 비해 소비되는 열량이 적을 때 생기는 전형적인 증상이었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체질적으로 움직임을 싫어하고 바깥 활동을 하지 않은 당연한 결과였다. 다시 운동을 시작하기로 마음먹기는 쉬웠지만 몸을 움직이기는 쉽지 않았다. 이불 속에서 현관까지가 천 걸음이었다.

사실 작년 정기 건강검진에서 참담했던 결과를 받고 난 후에 큰맘을 먹고 '걷기 운동'을 시작했었다. 집 근처에는 출렁다리가 놓인 멋진 둘레길도 있었다. 한적한 시골 동네에 누가 운동을 할까 싶었지만 어디에서 오는지 걷는 사람이 끊이지 않았다. 벼 베기가 끝난 농로에도 걷는 사람들이 있었고 눈길이 머무는 들판마다 사람들이 걷고 있었다. 도시에 걷는 공원이 잘 조성되어 있다면 시골마을에서는 농기계가 다니는 농로가 걷기 운동 코스로 자리잡아가고 있었다.

농사일에 기계 작업이 보편화 되면서 시골 사람들도 예전만큼 몸을 많이 쓰지 않는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관절 질환과 대사증후군으로 인한 합병증을 공기 좋은 곳에 사는 시골 사람들도 피해가지 못했다. 지자체 보건소 차원에서 걷기 운동을 장려하면서 시골 마을에서도 틈틈이 걷는 운동으로 건강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놀이의 인간, '호모 루덴스'처럼 '걷는 인간'이라는 용어를 하나 만들고 싶을 정도였다.
 

봄의 둘레길 파워워킹으로 이 둘레길을 걷는다 ⓒ 오창경

  

새벽의 걷기 운동둘레길에서 일출을 맞이한다. 다시 도전하는 걷기에서 만난 일출 ⓒ 오창경


그 걷기 무리에 합류해서 날마다 걸었다. 새벽 블루아워 속에 서동요 출렁다리를 힘차게 걸어서 건너던 날들이 있었다. 매일 1.65Km의 둘레길을 세 바퀴씩 걸었더니 손이 저리던 증상도 없어졌고 생활에 활력도 생겼다.

날마다 똑같은 풍경을 마주하면서 걷는 것 같지만 어딘가 달라지는 자연의 다채로운 변화도 좋았다. 정기적인 운동을 하지 않을 때와는 다른 정서적인 충족감이 생겼다. 걸으면서 생각했던 것이 글이 되는 즐거움도 있었다. 운동 중독은 신체의 변화뿐만 아니라 기분까지 정화시키는 내적 만족감을 느껴본 사람에게 생기는 것이라는 것을 경험했다.

걷기로 봄을 맞이하는 '걷쥬' 인간

그런 걷기중독 경지의 직전에 왔을 때 겨울 추위가 닥쳐왔다. 눈도 자주 내렸다. 지난 겨울의 기후 장벽을 넘지 못하고 걷기 운동을 중단하고 말았다. 이후 운동하기 좋은 날씨가 회복되었지만 다시 걷기에 동참하지 못하고 있었다. 여전히 전염병의 시국이라는 명분 속에 움직이기를 싫어하는 체질 탓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언제나 지속가능이 문제였다.

"오늘은 몇 걸음 걸었슈?"
"새벽에 한 시간 걷고 작두콩밭 말목(말뚝)을 박고 그물 치느라고 걸은 것만으로도 만 육천보가 넘었다니께."


동네 사람들과 저녁을 먹던 자리에서 오가는 대화의 주제가 걷기 운동이었다.

"일주일에 7만보 도전하는 그거 시작했남유?"
"벌써 포인트도 받았는디 쓸 줄을 몰라서 손녀딸들이 오면 주전부리거리라도 바꿔주려고 모아놓고 있당게. 그 쬐끔이 뭐라고 경쟁심이 생겨서 하루에도 몇 번씩 몇 걸음이나 걸었는지 전화기를 자꾸 열어보게 된다니께."

 

걷쥬 앱. 하루에 걷는 걸음걸이가 전부 기록된다. 이 앱을 깔면 누구나 '걷쥬'의 인간이 된다. ⓒ 오창경

충남 체육회에서 코로나19 시대의 건강걷기 활성화 방안으로 '걷쥬'라는 앱을 개발해서 도민들에게 스마트폰에 깔아주기 사업을 시작한다고 하더니 어느새 우리 동네 사람들이 '걷쥬의 인간'들이 되어 있었다. 농로를 걷기운동 코스로 만들어버린 우리 동네의 '걷는 사람'들은 알고 보니 '걷쥬의 인간'들이었던 것이었다.

"'걷쥬' 하고 있지? 언젠가 지나가다 보니께 출렁다리 둘레 길에서 혼자 걸어댕기고 있대? 하루에 몇 보 정도 걷는겨?"

나는 아직 '걷쥬'의 인간이 아니었다. 나만 아직 '걷쥬'의 인간이 아니었다. 동네 사람들의 스마트폰 생활이 이렇게 깊게 들어와 있는 줄 몰랐다. '바깥 활동을 즐겨하지 않음'을 즐기는 내가 그런 앱을 깔 리가 만무했다.
 

서동요 둘레길매일 새벽마다 걷기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 언제나 지속가능이 문제다. ⓒ 오창경


주로 사진을 찍고 메모를 하는 용도로 스마트폰을 이용했지 '걷쥬'의 인간이 되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다. 당연히 '걷쥬'를 잘 이용하면 편의점 쿠폰을 받을 수 있다는 이벤트에도 참여한 적이 없었다.

슬며시 '걷쥬' 앱을 전화기에 깔았다. 걸음걸이를 세고 이벤트에도 참여하며 '걷쥬'의 인간이 되기로 했다. 겨울을 핑계로 멈췄던 걷기 운동을 다시 시작할 명분이 생겼다. 날씬하게 살지는 않아도 대사증후군에 시달리며 살고 싶지는 않았다.

"저도 하루에 만보씩은 걷고 있쥬."

이미 '걷쥬'의 인간이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말했다. 나 다시 도전한다. '걷쥬'의 인간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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