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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식이 아이유처럼 컸으면" 이러지 않으렵니다

마흔 둘에 쓰는 꿈 이야기... '꿈 앞에 나이는 무관하다'는 말의 증거가 되고 싶다

등록|2021.04.22 19:14 수정|2021.04.22 19:14
요즘 <유 퀴즈 온 더 블록>을 자주 시청한다. 다양한 직업군의 이야기를 듣는 게 참으로 흥미롭다. 최근 가장 인상 깊게 본 것은 아이유와 BTS 편이다. 국내 정상 아티스트들의 고민과 애환들을 들을 수 있어 몰입해서 보았다. 
 

▲ 그들의 열정에 "아, 좋다. 좋아" 하며 콩콩 뛰는 가슴을 부여잡았다. ⓒ tvN


특히 BTS가 힘들었던 옛 시절을 얘기하며 감성에 젖은 눈빛으로 꿈 얘기를 할 때 '아미'가 아닌 나도 '어우응'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오며 가슴이 울컥해지기도 했다. 아이유는 또 어떤가? 다재다능한 '끼'와 철저한 멘탈 관리까지. 꿈이란 놈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한 그들의 열정에 "아, 좋다. 좋아" 하며 콩콩 뛰는 가슴을 부여잡기도 했었다. 그런 나를 보며 남편이 옆구리를 툭 치며 다 안다는 투로 말했다.

"어이구, 그 마음 알지 알아. 우리 애들이 저렇게 컸으면 좋겠지?"

알긴 뭘 안단 말인가...?

"뭐래~ 난 내가 저렇게 되고 싶은데?!"

남편이 머쓱한 표정을 하고 말을 더듬었다.

"아... 그래?..."

그 뒤에 잇지 못한 말줄임표가 무엇을 말하는지 대충 알 것 같았다. 그러니까, 내가 저렇게 열정의 대명사들을 보며 꿈을 키우기엔 마흔둘이라는 나이가 거시기하다는 뜻일 것이다. 아마 남편이 아니더라도 대부분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이 나이쯤 되니 '꿈이란 내가 꾸는 게 아니라 자식이 대신 꾸어 주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비슷한 일을 많이 겪어 왔기 때문이다.

자식보다 더 간절하고 시급한 내 꿈

꿈을 이룬 사람, 인격이 훌륭한 사람, 성공한 사람 이래 저래 다 멋져 보이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얘기한다 '내 자식이 저렇게만 커주면 얼마나 좋을까?' '내 애도 저렇게 돼야 할 텐데..." "저런 자식을 둔 부모는 얼마나 좋겠어?"라고.

그런데 나는 모성애보다 자기애가 더 큰 인간인지 어쩐 건지, 자식보다 내 꿈이 더 간절하고 시급하다. 기필코 자식을 그렇게 만들겠다가 아니라 기필코 내가 그 멋진 부류가 되고야 말고 싶은 것이다.

일정한 나이가 되면 대부분 누군가의 엄마, 회사원의 직함으로 살아간다.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할 일들에 맞춰 살아가고 그 틀이 더 익숙하고 편하다. 주체적인 꿈을 갖는 건 왠지 어색하고 낯간지러운 일로 여겨진다. 도전적이고 이상적인 꿈은 어린아이들이나 청춘들의 일쯤으로 치부해 버린다.

언젠가 내가 꿈에 관한 얘기를 하자 누군가 그랬다 "너는 참 그 나이에 세상 물정 모르고 한가한 얘기만 하는구나"라고. 한가한 얘기라... 마흔에 꾸는 꿈은 한가해 보이는구나 싶어 괜히 머리를 긁적였다. 나이와 상관없이 꿈 얘기를 실컷 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을 기다리고 있지만 아직은 먼 것 같다.

인생이라는 긴 선로 위에 내가 서 있는 지점은 어느 정도일까? 이제 겨우 절반쯤 지났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인생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나는 꿈 리모델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집도 40년을 살면 대대적으로 리모델링이나 재건축을 하는데 왜 내 꿈은 옛날 모습 그대로에 멈춰 있는가?

나는 어린 시절 작가를 꿈꿨다. 열심히 노력했고 지금 얼추 그 꿈을 닮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마흔이 넘은 지금, 그 꿈을 리모델링해 베스트셀러 동화 쓰는 할머니라는 꿈을 다시금 꾸고 있다. 앞으로 할머니가 되려면 20~30년 남았으니 시간은 충분하다. 꿈을 이룬 아들 딸의 덕을 보며 사는 게 아니라 내 자식들이 꿈을 이룬 엄마의 덕을 보게끔 하고 싶은 것도 꿈의 일부다.

도전하고 꿈꾸는 것이 당연한 세상
 

▲ 영화 <미나리>에 ‘순자’ 역으로 출연한 배우 윤여정의 모습. ⓒ 판씨네마(주)


지난해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동화 공모전에 응모하는 등, 꿈을 향한 도전을 해나갔다. 그에 관한 얘기를 SNS에 올리자 이름 모를 한 엄마가 내게 다이렉트를 보내왔다. 내용은 이러했다.

"4살 된 아이 키우는 엄마입니다. 매일 밤이 되면 애 때문에 지쳐서 핸드폰만 보다 잠드는 일상이었는데 '마흔이 넘어 꿈을 꾼다'라는 님의 글을 보며 저도 용기가 생겼습니다. 저도 오늘부터 제 꿈이 무엇인지 찾고 적극적으로 도전해봐야겠어요. 감사합니다."

수줍게 건네 온 그 말이 내게 큰 울림이 되었다. 한가한 여자의 배부른 소리쯤으로 여기지 않고 가슴 속 불씨로 삼아준 이름 모를 그녀에게 나는 외려 더 감사했다. 그녀가 나를 불씨로 삼은 것처럼 나는 요즘 이 분을 보며 열정을 지피고 있다.

영화 <미나리>로 일흔넷의 나이에 국제대회에서 굵직한 상들을 수상하고 강력한 오스카 여우조연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요즘 가장 핫한 배우 윤여정이다. 나는 그녀가 일군 성과가 내 일처럼 반갑고 기쁘다. 내 삶의 모델링이 되어주는 그녀에게 나 역시 감사의 메시지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다.

다만 윤여정 배우의 사례가 특출난 사례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꿈 앞에 나이는 무관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계속 나왔으면 좋겠다. 그래서 일흔, 여든, 아흔에도 도전하고 꿈꾸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 오길 간절히 바란다.

나이 때문에 못 꿀 꿈은, 키즈 모델밖에 없다고 했다. 꿈을 말하는 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트로트 가사 얘기가 아니라, 자신에게 해야 할 말이다. 그리고 꿈은 셀프, 자식에게 전가하지 말고 나를 위한 꿈을 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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