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식이 아이유처럼 컸으면" 이러지 않으렵니다
마흔 둘에 쓰는 꿈 이야기... '꿈 앞에 나이는 무관하다'는 말의 증거가 되고 싶다
요즘 <유 퀴즈 온 더 블록>을 자주 시청한다. 다양한 직업군의 이야기를 듣는 게 참으로 흥미롭다. 최근 가장 인상 깊게 본 것은 아이유와 BTS 편이다. 국내 정상 아티스트들의 고민과 애환들을 들을 수 있어 몰입해서 보았다.
특히 BTS가 힘들었던 옛 시절을 얘기하며 감성에 젖은 눈빛으로 꿈 얘기를 할 때 '아미'가 아닌 나도 '어우응'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오며 가슴이 울컥해지기도 했다. 아이유는 또 어떤가? 다재다능한 '끼'와 철저한 멘탈 관리까지. 꿈이란 놈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한 그들의 열정에 "아, 좋다. 좋아" 하며 콩콩 뛰는 가슴을 부여잡기도 했었다. 그런 나를 보며 남편이 옆구리를 툭 치며 다 안다는 투로 말했다.
"어이구, 그 마음 알지 알아. 우리 애들이 저렇게 컸으면 좋겠지?"
알긴 뭘 안단 말인가...?
"뭐래~ 난 내가 저렇게 되고 싶은데?!"
남편이 머쓱한 표정을 하고 말을 더듬었다.
"아... 그래?..."
그 뒤에 잇지 못한 말줄임표가 무엇을 말하는지 대충 알 것 같았다. 그러니까, 내가 저렇게 열정의 대명사들을 보며 꿈을 키우기엔 마흔둘이라는 나이가 거시기하다는 뜻일 것이다. 아마 남편이 아니더라도 대부분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이 나이쯤 되니 '꿈이란 내가 꾸는 게 아니라 자식이 대신 꾸어 주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비슷한 일을 많이 겪어 왔기 때문이다.
자식보다 더 간절하고 시급한 내 꿈
꿈을 이룬 사람, 인격이 훌륭한 사람, 성공한 사람 이래 저래 다 멋져 보이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얘기한다 '내 자식이 저렇게만 커주면 얼마나 좋을까?' '내 애도 저렇게 돼야 할 텐데..." "저런 자식을 둔 부모는 얼마나 좋겠어?"라고.
그런데 나는 모성애보다 자기애가 더 큰 인간인지 어쩐 건지, 자식보다 내 꿈이 더 간절하고 시급하다. 기필코 자식을 그렇게 만들겠다가 아니라 기필코 내가 그 멋진 부류가 되고야 말고 싶은 것이다.
일정한 나이가 되면 대부분 누군가의 엄마, 회사원의 직함으로 살아간다.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할 일들에 맞춰 살아가고 그 틀이 더 익숙하고 편하다. 주체적인 꿈을 갖는 건 왠지 어색하고 낯간지러운 일로 여겨진다. 도전적이고 이상적인 꿈은 어린아이들이나 청춘들의 일쯤으로 치부해 버린다.
언젠가 내가 꿈에 관한 얘기를 하자 누군가 그랬다 "너는 참 그 나이에 세상 물정 모르고 한가한 얘기만 하는구나"라고. 한가한 얘기라... 마흔에 꾸는 꿈은 한가해 보이는구나 싶어 괜히 머리를 긁적였다. 나이와 상관없이 꿈 얘기를 실컷 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을 기다리고 있지만 아직은 먼 것 같다.
인생이라는 긴 선로 위에 내가 서 있는 지점은 어느 정도일까? 이제 겨우 절반쯤 지났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인생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나는 꿈 리모델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집도 40년을 살면 대대적으로 리모델링이나 재건축을 하는데 왜 내 꿈은 옛날 모습 그대로에 멈춰 있는가?
나는 어린 시절 작가를 꿈꿨다. 열심히 노력했고 지금 얼추 그 꿈을 닮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마흔이 넘은 지금, 그 꿈을 리모델링해 베스트셀러 동화 쓰는 할머니라는 꿈을 다시금 꾸고 있다. 앞으로 할머니가 되려면 20~30년 남았으니 시간은 충분하다. 꿈을 이룬 아들 딸의 덕을 보며 사는 게 아니라 내 자식들이 꿈을 이룬 엄마의 덕을 보게끔 하고 싶은 것도 꿈의 일부다.
도전하고 꿈꾸는 것이 당연한 세상
지난해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동화 공모전에 응모하는 등, 꿈을 향한 도전을 해나갔다. 그에 관한 얘기를 SNS에 올리자 이름 모를 한 엄마가 내게 다이렉트를 보내왔다. 내용은 이러했다.
"4살 된 아이 키우는 엄마입니다. 매일 밤이 되면 애 때문에 지쳐서 핸드폰만 보다 잠드는 일상이었는데 '마흔이 넘어 꿈을 꾼다'라는 님의 글을 보며 저도 용기가 생겼습니다. 저도 오늘부터 제 꿈이 무엇인지 찾고 적극적으로 도전해봐야겠어요. 감사합니다."
수줍게 건네 온 그 말이 내게 큰 울림이 되었다. 한가한 여자의 배부른 소리쯤으로 여기지 않고 가슴 속 불씨로 삼아준 이름 모를 그녀에게 나는 외려 더 감사했다. 그녀가 나를 불씨로 삼은 것처럼 나는 요즘 이 분을 보며 열정을 지피고 있다.
영화 <미나리>로 일흔넷의 나이에 국제대회에서 굵직한 상들을 수상하고 강력한 오스카 여우조연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요즘 가장 핫한 배우 윤여정이다. 나는 그녀가 일군 성과가 내 일처럼 반갑고 기쁘다. 내 삶의 모델링이 되어주는 그녀에게 나 역시 감사의 메시지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다.
다만 윤여정 배우의 사례가 특출난 사례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꿈 앞에 나이는 무관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계속 나왔으면 좋겠다. 그래서 일흔, 여든, 아흔에도 도전하고 꿈꾸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 오길 간절히 바란다.
나이 때문에 못 꿀 꿈은, 키즈 모델밖에 없다고 했다. 꿈을 말하는 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트로트 가사 얘기가 아니라, 자신에게 해야 할 말이다. 그리고 꿈은 셀프, 자식에게 전가하지 말고 나를 위한 꿈을 꾸어보자.
▲ 그들의 열정에 "아, 좋다. 좋아" 하며 콩콩 뛰는 가슴을 부여잡았다. ⓒ tvN
특히 BTS가 힘들었던 옛 시절을 얘기하며 감성에 젖은 눈빛으로 꿈 얘기를 할 때 '아미'가 아닌 나도 '어우응'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오며 가슴이 울컥해지기도 했다. 아이유는 또 어떤가? 다재다능한 '끼'와 철저한 멘탈 관리까지. 꿈이란 놈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한 그들의 열정에 "아, 좋다. 좋아" 하며 콩콩 뛰는 가슴을 부여잡기도 했었다. 그런 나를 보며 남편이 옆구리를 툭 치며 다 안다는 투로 말했다.
"어이구, 그 마음 알지 알아. 우리 애들이 저렇게 컸으면 좋겠지?"
"뭐래~ 난 내가 저렇게 되고 싶은데?!"
남편이 머쓱한 표정을 하고 말을 더듬었다.
"아... 그래?..."
그 뒤에 잇지 못한 말줄임표가 무엇을 말하는지 대충 알 것 같았다. 그러니까, 내가 저렇게 열정의 대명사들을 보며 꿈을 키우기엔 마흔둘이라는 나이가 거시기하다는 뜻일 것이다. 아마 남편이 아니더라도 대부분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이 나이쯤 되니 '꿈이란 내가 꾸는 게 아니라 자식이 대신 꾸어 주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비슷한 일을 많이 겪어 왔기 때문이다.
자식보다 더 간절하고 시급한 내 꿈
꿈을 이룬 사람, 인격이 훌륭한 사람, 성공한 사람 이래 저래 다 멋져 보이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얘기한다 '내 자식이 저렇게만 커주면 얼마나 좋을까?' '내 애도 저렇게 돼야 할 텐데..." "저런 자식을 둔 부모는 얼마나 좋겠어?"라고.
그런데 나는 모성애보다 자기애가 더 큰 인간인지 어쩐 건지, 자식보다 내 꿈이 더 간절하고 시급하다. 기필코 자식을 그렇게 만들겠다가 아니라 기필코 내가 그 멋진 부류가 되고야 말고 싶은 것이다.
일정한 나이가 되면 대부분 누군가의 엄마, 회사원의 직함으로 살아간다.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할 일들에 맞춰 살아가고 그 틀이 더 익숙하고 편하다. 주체적인 꿈을 갖는 건 왠지 어색하고 낯간지러운 일로 여겨진다. 도전적이고 이상적인 꿈은 어린아이들이나 청춘들의 일쯤으로 치부해 버린다.
언젠가 내가 꿈에 관한 얘기를 하자 누군가 그랬다 "너는 참 그 나이에 세상 물정 모르고 한가한 얘기만 하는구나"라고. 한가한 얘기라... 마흔에 꾸는 꿈은 한가해 보이는구나 싶어 괜히 머리를 긁적였다. 나이와 상관없이 꿈 얘기를 실컷 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을 기다리고 있지만 아직은 먼 것 같다.
인생이라는 긴 선로 위에 내가 서 있는 지점은 어느 정도일까? 이제 겨우 절반쯤 지났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인생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나는 꿈 리모델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집도 40년을 살면 대대적으로 리모델링이나 재건축을 하는데 왜 내 꿈은 옛날 모습 그대로에 멈춰 있는가?
나는 어린 시절 작가를 꿈꿨다. 열심히 노력했고 지금 얼추 그 꿈을 닮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마흔이 넘은 지금, 그 꿈을 리모델링해 베스트셀러 동화 쓰는 할머니라는 꿈을 다시금 꾸고 있다. 앞으로 할머니가 되려면 20~30년 남았으니 시간은 충분하다. 꿈을 이룬 아들 딸의 덕을 보며 사는 게 아니라 내 자식들이 꿈을 이룬 엄마의 덕을 보게끔 하고 싶은 것도 꿈의 일부다.
도전하고 꿈꾸는 것이 당연한 세상
▲ 영화 <미나리>에 ‘순자’ 역으로 출연한 배우 윤여정의 모습. ⓒ 판씨네마(주)
지난해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동화 공모전에 응모하는 등, 꿈을 향한 도전을 해나갔다. 그에 관한 얘기를 SNS에 올리자 이름 모를 한 엄마가 내게 다이렉트를 보내왔다. 내용은 이러했다.
"4살 된 아이 키우는 엄마입니다. 매일 밤이 되면 애 때문에 지쳐서 핸드폰만 보다 잠드는 일상이었는데 '마흔이 넘어 꿈을 꾼다'라는 님의 글을 보며 저도 용기가 생겼습니다. 저도 오늘부터 제 꿈이 무엇인지 찾고 적극적으로 도전해봐야겠어요. 감사합니다."
수줍게 건네 온 그 말이 내게 큰 울림이 되었다. 한가한 여자의 배부른 소리쯤으로 여기지 않고 가슴 속 불씨로 삼아준 이름 모를 그녀에게 나는 외려 더 감사했다. 그녀가 나를 불씨로 삼은 것처럼 나는 요즘 이 분을 보며 열정을 지피고 있다.
영화 <미나리>로 일흔넷의 나이에 국제대회에서 굵직한 상들을 수상하고 강력한 오스카 여우조연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요즘 가장 핫한 배우 윤여정이다. 나는 그녀가 일군 성과가 내 일처럼 반갑고 기쁘다. 내 삶의 모델링이 되어주는 그녀에게 나 역시 감사의 메시지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다.
다만 윤여정 배우의 사례가 특출난 사례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꿈 앞에 나이는 무관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계속 나왔으면 좋겠다. 그래서 일흔, 여든, 아흔에도 도전하고 꿈꾸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 오길 간절히 바란다.
나이 때문에 못 꿀 꿈은, 키즈 모델밖에 없다고 했다. 꿈을 말하는 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트로트 가사 얘기가 아니라, 자신에게 해야 할 말이다. 그리고 꿈은 셀프, 자식에게 전가하지 말고 나를 위한 꿈을 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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