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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우네 유타카의 '농본주의를 말한다'를 읽고

등록|2021.04.26 14:42 수정|2021.04.26 15:13

▲ 농본주의를 말한다 ⓒ 녹색평론사


여름철 시골 친환경 논에서는 햇볕을 듬뿍 받아 초록빛 바다를 이룬 벼, 개구리, 고추잠자리, 백로들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농민은 그 논에 가서 물을 대거나 김매는 일 따위를 합니다. 이런 농민들과 농촌을 위한 심오한 철학과 사회사상이 있을까요?

<농본주의를 말한다>의 지은이 우네 유타카(1950~)는 '당연히 있다'고 말합니다. 나아가 "지금의 '근대'와 '자본주의'를 넘어설 대안의 사상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천지자연(天地自然)과 천지유정(天地有情) 공동체를 추구하는 새로운 농본주의가 그것입니다.

우네 유타카는 일본의 '농(農) 사상가'이자 25년 넘게 농사짓는 농부이고 도쿄농업대학 객원교수입니다. 그는 농사를 '농업'으로 여긴 근대화가 진전되면서 왜 자꾸 생명체가 줄고 농민들이 지녔던 '정애'(情愛)가 옅어지는지에 주목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농사의 본질은 근대나 자본주의의 가치체계와는 다름을 역설한 일본의 여러 농본주의자를 찾아냈습니다. 저자는 그들 사상을 바탕으로 오늘날도 여전히 유효한 농본주의를 펼칩니다.

농본주의(農本主義, Agrarianism)는 "농업을 국가 산업의 근본으로 삼고 농민과 농촌이 사회 조직의 바탕이 된다고 생각하는 농업 중심의 사회사상"을 말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정의에 동의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농사를 '돈이 되는 산업의 하나'로 여겨 '농업'으로 분류하는 근대적 발상 자체가 틀렸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가 생각하는 농사는 "생업이자 천지자연의 은혜를 받으면서 마을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농사를 농업에 비해 훨씬 큰 개념으로 봅니다. 농사는 "모두가 타고 있는 큰 배"라면 농업은 그 배에 실려 있는 '보트' 정도라는 겁니다. 하지만 저자도 "농사가 인간 삶의 근본이고 농민과 농촌이 사회 조직의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20세기 일본 농본주의자이자 정치 운동가인 다치바나(1893-1974)는 "자본주의는 농사와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땅에 등을 돌리고 농사의 토대를 파괴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저자는 다치바나의 이 같은 생각에 공감하면서 근대 이후 농사는 다른 산업과 경쟁하게 되었고, 소득이나 이윤 액수로 평가되는 '경영'으로 변질되었음을 지적합니다. 실제로 국내에서도 농사를 지으면 무조건 다 농업인이 되는 게 아닙니다. 정부기관(농산물품질관리원)에 농업 경영체 등록을 해야 농업인 자격을 얻습니다.

저자에 의하면 과거 농부는 '김매기'를 하였는데 오늘날 농업인은 '제초 작업'을 합니다. 이는 언뜻 같은 일처럼 보이지만 전혀 다릅니다. 김매기를 할 때 농부는 "수많은 풀들 이름과 모양새, 특성을 파악하고 생물의 감각을 배우며, 일에 몰두하며 천지자연과 일체감을 체득"합니다.

하지만 제초작업을 하는 농업인은 생산성을 높이고자 풀을 적으로 돌리고 예초기나 제초제를 사용해 풀을 제거하는 데 치중합니다. 이처럼 '농사'와 '농업'은 세계관에서부터 차이가 납니다.

오늘날 흔히 농민들은 "식량위기가 닥치면 식량과 농업의 소중함을 알게 될 것"이라 말합니다. 저자의 생각은 다릅니다. 그는 "너무 당연해서 보이지 않는 가치가 비정상적 상황이 되었을 때"에야 그 가치를 인식하게 될 거라 생각하는 건 일종의 '사상적 퇴폐'라 봅니다.

그 보다는 "매일 바라보고 느끼며 생활하는 실감을 다시금 '가치'로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진정한 가치는 별것 아닌 일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꼭 위기가 닥친 뒤가 아니라 평소 깨달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어 저자는 "오늘날 농사의 진정한 위기는 농사를 인간의 욕망에 맞추고 있다는 것"이라 지적합니다. 농사는 "농지를 통해 천지자연을 갈고 닦아 그 은혜를 누리는 것"인데 그걸 잊고 지나치게 인간 욕망에 맞춰 마치 공장에서 공산품 생산하듯 생산성 위주로 대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다보니 농사에 있어서도 어느덧 '효율'을 당연히 여기고 중시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천지자연을 지탱하는 행위"가 농사다 
 

여수 현천 들녘친환경 단지 여수 현천 들녘(2018) ⓒ 정병진

 
농사를 '산업'의 일종으로 보고 경쟁 위주의 '효율'을 우선에 두니 보다 많은 생산을 위한 기계화, 화학비료와 농약 사용도 당연한 수순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올챙이, 고추잠자리, 제비, 소금쟁이, 무당벌레, 미꾸라지 같은 생명체들이 매년 크게 줄고 급기야 멸종 위기에 내몰릴 지경인데 근대의 습속에 중독되어 생산성과 효율에 눈먼 인간은 그 심각성을 잘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저자는 "농사는 그 고유한 특성상 자본주의와 맞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그가 제시한 네 가지 중요한 특성은 이렇습니다. ① 농사의 상대는 천지자연이다. ② 농민들의 욕망은 비대해지지 않는다. ③ 자본주의는 천지유정의 마을 공동체를 파괴한다. ④ 일하는 방식이 다르다. 저자는 이런 특성 때문에 "농사에는 자본주의가 손댈 수 없는 영역이 아직 존재한다"고 봅니다.

그는 농사는 단지 '식량생산' 기능만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천지자연에 의해 지탱되고 동시에 천지자연을 지탱하는 행위"가 농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의 근대와 자본주의 폐해를 극복할 길은 바로 '천지자연과 천지유정의 마을 공동체'에 기초한 새로운 농본주의에서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19년 12월 기준 국내 농가인구는 224만 5000명(전체 인구 대비 4.3%)이고 농촌 고령화와 출산율 감소 등으로 매년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1975년만 해도 농업인구가 1324만 명(전체 인구의 37.5 %)에 달하였는데 산업화와 도시화 영향으로 크게 줄어든 것입니다.

하지만 근래 들어 도시에서 텃밭을 일구는 농업 참여자가 매년 크게 늘어 작년에는 무려 184만 8000명으로 조사됐습니다(농민신문, 21. 04.12. "도시농업 인구 10년 새 12배로"). 그만큼 농업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여전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젠 농사를 넘어 그 근본 철학사상에 관심 기울여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 책은 단지 농사짓는 기술이 아니라 농사란 무엇이고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가야할 내일의 세계는 어떤 세상이어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일본 독자들을 겨냥해 일본의 주요 농본주의 사상가들의 이론을 소개하고 발전시킨 책이라 일부 한국과 안 맞는 내용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국내에 비해 유기 농법이 앞서 있고 농본주의 사상가들의 탄탄한 이론적 뒷받침도 있어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책에 자극 받아 앞으론 우리나라의 농본주의 사상가들도 발굴해 한국 토양에 맞는 이론을 만들어 낸다면 더욱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여수넷통뉴스>에도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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