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나는 할머니의 냄새가 싫지 않았다

영화 <미나리>와 외할머니, 그리고 나의 엄마

등록|2021.04.25 19:54 수정|2021.04.25 20:00
 

▲ 영화 <미나리> 스틸컷 ⓒ 판씨네마(주)


나의 외할머니는 딸만 넷을 낳으셨다. 외할아버지의 이야기는 기억에 없다. 가족관계가 보이기 시작했을 때 할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신 후였다. 외할머니는 막내 이모가 모셨다. 노인을 모시고 산다는 것, 누가 누구를 모시는 것인지 정확히 규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내가 본 외할머니도 그랬다. 이모의 집에 일신을 의탁하셨지만, 이모네 모든 식구들은 외할머니의 수고로 밥을 먹고 학교를 다녔고 일을 했다.

어머니는 맏딸이었고 외할머니를 모신다면 어머니가 모셨어야 했겠지만, 어머니는 시어머니와 시할머니까지 여러 대가 모여 사는 대가족의 맏며느리였다. 어른들이 모두 돌아가시고 더는 간섭할 시어른들이 없을 때쯤, 외할머니는 막내 이모네 세 아이들만의 할머니가 되어 있었다. 어쩌다 딸들 집에 방문하는 것조차도 함께 살아 준 사위가 서운해할지 모른다며 손사래를 치셨다.

딸네 집에 오신 외할머니 

할머니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어머니는 외할머니를 모시지 못한 것을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안타까워하셨다. 외할머니는 딱 한 번 당신의 큰딸의 집인 우리 집에 오셨다. 방 셋, 가족만으로도 충분히 북적거리는 집이었다. 작은 몸이었지만, 편히 쉴 여유 공간은 없었다. 그럼에도 맏이의 집이라는 이유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방문하신 것이었다.

삼일 밤을 주무시고 할머니는 다시 막내 이모의 집으로 돌아가셨다. 그로부터 1년 후 할머니는 세상을 떠나셨다. 살아생전 처음이자 마지막 큰딸네 집 방문에서 할머니가 남긴 말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내가 냄새가 나니 같이 자기 싫은가 봐."

할머니와 나란히 누우면 꽉 차는 방이었다. 건드리면 부서질 것처럼 작고 마른 할머니의 몸이었다. 잠버릇이 고약하지는 않았던 것 같지만, 다리라도 움직이다 할머니를 다치게 할까 싶어 하룻밤을 긴장하며 보냈고, 이틀은 편하게 주무시라고 거실에서 잠을 청했던 것이다. 할머니의 혼자 생각과는 전혀 다른 이유였는데, 그 하룻밤이 오해를 낳았고, 할머니가 댁으로 가신 후에야 어머니는 여러 얘기 끝에 그 말을 툭 던지셨다.

생애 처음 할머니를 모신 엄마의 긴 소회 끝에 무겁지 않게 덧붙인 말이었지만, 어머니가 전한 그 말은 40년이 지나는 시간 동안, 그리고 지금까지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미나리>의 데이비드(앨런 김)처럼 철없는 어린 손자의 입에서나 나올 수 있는 말, 할머니의 냄새. 늦은 고백이지만 나는 할머니의 냄새가 싫지 않았다.

나의 철없음에 대한 변명은 아니다. 그 이틀 밤을 할머니와 한 방에서 보내지 않은 것이 냄새로 인한 것이 아니었음을 해명하는 것도, 오해를 품고 가신 것이 억울하고 속상했다는 말도 아니다. 다만, 할머니의 마음을 세심하게 헤아리지 못한 나의 철없음이 지금도 뾰족한 가시로 남아 가끔 나를 찌른다.

꽃집을 하던 이모네는 집에도 온갖 종류의 꽃이 가득했다. 그곳에서 살며 오래 배인 것 같은 다양한 꽃 냄새와 나이 들면 당연히 나는 나이 듦의 냄새가 할머니 몸에는 섞여 있었다. 어쩌면 나이 들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고장 나고 병든 육신이 다시 자연으로의 복귀를 준비하는 소멸의 냄새가 섞였을 수도 있었겠고.

외할머니가 끝내 이모네 집에서 생을 마감하신 것도, 잠깐 자식들 집을 둘러보는 것에 사위의 눈치를 살폈던 것도 결국 정착에 대한 안정감이 흔들리는 것을 염려하신 때문이었을 것이다. 외할머니에게 단 삼일 밥을 지어드린 어머니는 당신 자신도 큰 아들이 있는 곳에서 생을 마감해야 한다는 생각을 뿌리 깊게 하셨던 것 같다. 돌아가시기 직전 병원에 가셔서도 굳이 집으로 가야 한다고 자식들을 재촉하셨다.

<미나리>와 나의 할머니, 나의 어머니
 

▲ 미국 아카데미 6개 부문 후보에 오른 <미나리> ⓒ 판씨네마


익숙한 환경을 떠나 새로운 환경에 정착하는 것은 노년의 두려움만은 아니다. 나이 젊은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로 힘겨운 일이다. <미나리>의 제이콥(스티븐 연)의 가족이 그렇다. 특히 모니카(한예리)는 아칸소의 황무지 같은 땅, 바퀴 달린 집, 큰 농장을 꿈꾸는 제이콥의 무모한 꿈을 힘들어한다. 제이콥은 오로지 성공한 아버지의 모습을 자식에게 보여주겠다는 일념으로 모니카의 마음을 살피지 못하고, 때문에 둘은 자주 부딪힌다.

불안정한 가족에게 모니카의 엄마가 온다. 엄마는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이름이다. 긴 시간 비행기를 타고 자신의 살림을 모두 정리한 외할머니 순자(윤여정). 비록 할머니 같지 않은 할머니지만, 딸에 대한 그녀의 모정은 자신이 나고 자라 묻힐 땅, 그곳에서의 안정된 삶을 모두 정리하고 떠나올 만큼 눈물겨운 희생을 보여 준다. 그녀의 단출한 가방에는 고춧가루와 멸치, 손자의 병을 위한 한약과 가산을 정리한 돈이 들어 있고, 그 모두를 딸에게 아낌없이 건넨다.

할머니 냄새난다고 싫어하는 손자 데이비드를 특유의 모성으로 끌어안는 것까지, 그녀에게 불가능한 것은 없다. 할머니와 한 방 쓰는 것을 완강하게 거부하던 데이비드는 아버지의 엄한 꾸중으로 할머니와 한 방을 사용하지만 관계는 쉽게 개선되지 않는다. 그러던 중 할머니 순자의 병을 맞게 된다. 딸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병든 육신의 노구, 다행스럽게도 모니카가 짐으로 여기지 않는 것 같아 영화를 보면서도 마음이 놓였다.

영화는 여운이 길게 가는 드라마를 본 듯했다. 엄마 순자와 딸 모니카의 견고한 모녀관계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쿠키를 만들지는 못하지만 미나리를 심을 곳은 한눈에 알아보는 지혜와 그것을 사위가 인정해 주는 것도 반가웠다. 순자의 와병 중의 환각 증상을 모니카가 마치 샤머니즘적으로 해결하려는 어리석어 보이는 시도도 나쁘지 않았다.

어디에 있어도 알아서 잘 자라고,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누구든 건강하게 해준다는 미나리처럼, 딸의 가족이 희망을 놓지 않기를 바라는 순자의 메시지가 딸에게, 사위에게, 어린 손자에게 읽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또한 영화의 마지막에 어린 데이비드가 할머니에게 집으로 가자고 손을 내미는 것처럼, 할머니의 냄새는 어느새 미나리 향처럼 가족에게 자연스럽게 스민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후각은 추억을 깊게 자극한다. 할머니의 냄새, 외할머니와의 단 한 번의 기억이 내게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것도 후각과 관련된 자극 때문은 아니었을까 싶다. 병원에서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이 생생한 것도, 말라 부서지는 가느다란 손과 발, 팔과 다리를 씻길 때마다 나는 어머니의 마지막 냄새가 지금도 공중에 맴돌아서인 듯하다.

몇 해 전부터 외출할 때는 습관적으로 향수를 뿌린다. 개인적으로 바람인 듯 들풀인 듯, 맑은 바다 냄새인 듯한 향을 좋아한다. 오래가는 것보다는 금방 사라지는 오 드 코롱이나 샤워 코롱을 이용한다. 집을 나설 때의 외출의 설렘을 환기하려고 주로 사용하는 편이다.

향수의 베이스 노트는 사용하는 사람의 체취와 온도에 따라 다른 향으로 표현된다고 한다. 여러 가지 꽃향기가 외할머니의 체취와 섞인 외할머니의 냄새처럼. 내 몸이 만들어내는 후각적 정보가 우리 아이들에게는 어떤 기억으로 남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이왕이면 척박한 환경에서 더 진한 향을 낸다는 미나리처럼, 가족에게 깊이 녹아드는 일상의 냄새이고 자연과 하나되는 냄새였으면 좋겠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